아들의 이름

                                                                                                   백임현

 어느 날, 혼인을 앞둔 아들이 이름을 바꾸어도 괜찮으냐고 물었다. 새 사돈댁에서 철학관에 가 물으니 기존의 이름이 좋지 않다면서 이제까지 앞에 놓인 길운을 그 이름이 가로막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웃으면서 가볍게 하는 말이었지만 듣는 나로서는 결코 가볍게 들어 넘길 말이 아니었다. 아들이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어려움이 잘못된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니 이름을 지어 준 부모로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의 이름에 얽힌 해묵은 기억이 있어 그 말을 예사롭게 들을 수 없었다.

삼십 여 년 전, 우리 아이들이 대여섯 살 무렵이었다. 골목길에서 놀고 있는데 허름한 행색의 노인 한 분이 아이가 놀고 있는 모습을 한참 동안 유심히 보고 있더니 사주를 보아주겠다고 하였다. 그때는 주택가 골목길을 누비며 사주보라고 외치는 돌팔이 점쟁이가 많던 시절이었다. 지나다가 아무 집이나 문이 열려 있으면 들어가서 운세나 사주를 봐주고 돈 몇 푼씩 받아가곤 하였는데, 사람들은 그저 재미삼아 그들의 사주풀이를 들어주었었다.

그 노인은 우리 아이의 관상을 찬찬히 살펴 본 후 사주를 묻고 이름자를 적더니 고개를 갸웃하면서 난색을 표했다. 관상도 좋고 사주도 잘 타고났는데 이름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름에 들어 있는 웅雄 자가 이름으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며, 뜻이 너무 무거워 아이의 앞길에 부담을 준다고 하였다. 아무리 가볍게 들어 넘길 말이라도 좋지 않다는 말은 두고 두고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그런 식으로 다니며 돈을 버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지나가는 행인의 상투적인 말로 여기고 무심히 흘려버렸다.

아이는 삼십이 가까울 때까지 별 탈없이 무난하였다. 그러나 서른을 넘기면서부터 그의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여러 어려움이 앞을 가로막았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삼십대에 마음먹은 일이 제대로 안 풀린다는 것은 초조하고 우울한 일이었다. 고뇌와 갈등을 겪으면서 잊고 살았던 그 옛날 돌팔이 노인의 이름 풀이가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한때는 자랑스럽기도 했던 아들이 거듭되는 좌절 속에서 점점 미미해져 안타까울 때 혼처가 정해지고 마침내 문제의 이름을 고치기에 이른 것이다.

과연 이름 석 자가 사람의 운명과 얼마나 상관이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들면 나는 이런저런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리며 그들의 행, 불행을 짚어보곤 한다. 그 여러 생각중에 이름을 중시하던 동생 생각이 빠지지 않는다. 그는 이름이 세 가지나 있었다. 어릴 때 부르던 아명이 있었고, 그것이 좋지 않다고 해서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이름을 고쳤다. 그러다가 결혼 후에 다시 한 번 이름을 고쳤는데 그것은 그 방면에 관심이 많은 신랑의 뜻이었다. 그들 부부 두 사람의 이름 속에 쇠 금金 자가 다섯 개나 포함되어 있어 금속성이 서로 부딪쳐 부부 금슬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었다.

성미 급한 동생의 남편은 그 소리를 듣기가 무섭게 아주 좋다는 이름으로 다시 지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다시 고친 좋은 이름은 좋은 운명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비명으로 요절하는 생애가 되어버렸다. 이런 경우를 보면 사람의 운명과 이름은 별개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나쁘다는 이름을 고치지 않고 일을 당했다면 얼마나 후회가 남았을 것인가. 어차피 삶이란 이래도 저래도 후회는 남는 것인가 보다.

우리가 아이의 이름에 웅雄 자를 쓰게 된 것은 남편이 그 자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이름을 지어놓고 집안에 한학을 공부하신 어른에게 여쭈어 보니 괜찮다고 해서 호적에 올렸던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 작명소에 가서 이름을 지어오지만 그때는 집안의 조부모님이나 연세드신 어른이 만들어 주시는 예가 많았다. 그 당시로서는 그런 방법이 최선이어서 그렇게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작명소에 가서 정식으로 지어 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그리고 나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어미로서의 무심함이 두고 두고 마음을 무겁게 한다.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처럼 일이 순조롭지 않으니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인 것만 같다. 사람은 어느 한순간이라도 지극한 정성으로 살아야 뉘우침이 없다는 것을 뒤늦은 나이에 깨닫는다.

이제까지 이성만 믿고 합리적인 것만이 최선이라고 살아온 나의 생활방식이 얼마나 겸손하지 못한 자만이었는가 되돌아보게 된다. 엊그제 이름을 고쳐 준 작명가가 아이의 어릴 때 이야기를 듣더니 무릎을 치면서 초년의 좋은 운을 그래서 다 놓쳤다고 원통해 하더라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합리적인 아들이 이 말을 당연한 것처럼 믿으며 지금이라도 이름을 고쳐보고 싶다는 말을 할 때 인간의 의지나 이성보다 더 강한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극진한 정성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성공한 사람이 모두 이름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한 세상의 모든 불행한 사람이 이름 탓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그래도 지금 내가 괴로운 것은 어미로서 좀더 세심하게 아이의 미래를 살피지 못했던 그 허술한 모성과 무성의에 대한 자책이다.

늦게라도 이름을 고친 아들이 그 무거운 이름에서 벗어나 보다 밝고 새로운 앞날이 열리기를 축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