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와 찔레꽃

                                                                                                   이정호

 좀 떨어진 농대 숲에서 뻐꾸기가 운다. 뻐꾸기 소리를 들으면 찔레꽃이 생각난다. 하얀 찔레꽃이 향기와 함께 뻐꾸기 소리에 실려오는 듯하다. “뻐꾹 뻐꾹 뻑꾹~” 뻐꾸기 소리를 듣고 있으면 고향의 산과 들, 개울가,  미루나무가 아련히 떠오른다. 동구 앞 냇가 언덕에 키 큰 미루나무가 눈부신 초여름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그 너머로 소골 가진개 건넌들이 평화롭게 펼쳐 있는 고향이 보인다. 고향 집이 산을 등지고 앞들과 시내를 바라보고 있어서 활짝 열어놓은 대문 밖으로 이런 것들이 한눈에 들었다.

우리 집 모내기 하는 날엔 어린 나는 하루 온종일 들에서 보내야 했다. 그때는 왜 그리 하루가 길었는지 모른다. 산에서는 뻐꾸기가 긴긴 하루를 울고 또 울었다. 나는 산기슭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찔레 덩굴을 살살 헤집고 뾰족 돋아오른 찔레순을 꺾어 먹곤 했다. 가시에 손도 많이 찔렸다. 통통 살이 오른 파란 새 순을 똑 꺾으면 파란 속살이 맑은 진액을 방울방울 흘린다. 껍질을 벗겨 야들야들한 살을 씹으면 쌉쌀한 듯하면서도 향긋하다. 맛 자체야 무슨 맛일까만 그래도 심심풀이 주전부리거리로는 좋았다. 찔레순을 꺾을 때 찔레꽃 향이 코에 가득 빨려들었다. 이렇게 해서 뻐꾸기와 찔레꽃은 내 어린 시절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십이 년 전 이 집에 이사온 그 해 이른 봄, 농대 숲가 논두렁에서 찔레나무 한 뿌리를 캐다 대문 옆에 심었었다. 그때는 우리 집 앞과 옆은 다 논밭이었다. 몇 년 안에 찔레 덩굴이 대문 지붕에까지 뻗어올라 매년 이때쯤이면 하얀 꽃을 가득 피워주었다. 향기가 집 가득했고, 벌들도 윙윙 많이 날아들었다. 밤에는 박꽃처럼 하얀 꽃잎이 옥양목을 널어놓은 듯했다.

사람들은 꽃이 없을 때는 장미로 알고 별 말 없다가도 꽃이 피면 “찔레네” 하고 한 마디씩 하고 지나갔다. 그 많은 꽃 놔두고 하필 찔레냐는 뜻이다. 그때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그냥 심었어요” 해버리고 말았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집들이 들어찼다. 사람도 많이 지나다니고 차까지 다니면서 매연 때문인지 그렇게 성하던 것이 시름시름 생기를 잃어갔다. 꽃이 피어도 오래 가지 않고 잎도 가을이 오기 전에 누렇게 시들어 우수수 떨어졌다. 그러던 오륙 년 전, 봄이 되어도 새 잎이 나지 않았다. 삐쩍 말라비틀어진 가지를 낫으로 베어낼 때 마음이 아주 좋지 않았다.

창 밖에 저녁빛이 돌기 시작한다. 뻐꾸기가 또 운다. 저녁이면 울기를 그만두는데 운다. 놈에게 무슨 신상의 변화라도 생겼나. 낮에는 맑은 음정으로 한가하고 평화롭게 들리더니 지금은 목에 가래가 걸린 듯 좀 탁하고 지친 소리다. 착 가라앉은 힘겨운 소리다. 찔레꽃은 저녁 나절 흰꽃이 더 선명하고 향기도 진한데.

목련과 살구나무 잎이 저녁빛에 한층 더 검푸르다. 살금살금 밤이 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릴 듯 고요하다. 적막이 소리로 들리는 듯하다. 이런 때는 소리와 영상과 냄새가 헷갈린다. 들리는 것인지 보이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된다. 누군가는 꽃향기를 본다고 했는데 지금, 어둠이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간혹 귀와 눈과 코의 영역이 모호해지는 때가 있다. 몇 해 전 여름에 며칠간 산사에서 수련을 하고 있을 때, 저녁나절 땀에 절은 몸을 계곡에서 씻고 나서 바람을 씌고 있는데 마침 그때 저녁 종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나는 그 종 소리를 듣고 있었던 게 아니라 보고 있었다. 푸른빛 천을 펼친 듯한 산 그림자를 누비며 다가오는 소리의 파장을 너무도 생생하게 보고 있었다. 내 감각이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이었겠지만, 지금도 그 순간 내가 보던 종 소리를 그려낼 수 있을 것 같다.

글쎄, 어쩌면 우리의 몸에 귀와 눈과 코 그 외의 감각기관이 뚜렷하게 생성되기 이전, 그러니까 진화의 아주 초기 단계에서 아직 원시 생명체로 있을 때는 보고 듣고 냄새 맡는 이 모든 감각기능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았었을는지 모른다. 들리는 것이나 보이는 것이나 냄새 맡는 것이나 다 제각각인 것은 이들 감각기관 각자가 제 맡은 기능만 하게 된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들 감각기관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소리, 빛깔, 냄새를 하나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향기를 맡으면서 보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말이다. 인간의 분별심이 여기서 일어나는 것, 선악善惡, 미추美醜, 호불호好不好, 이런 분별심을 벗어나야 비로소 도를 이룰 수 있다는데, 그렇다면 사람으로 하여금 이렇게 분별을 짓게 한 것이 신의 경계를 넘볼 수 없게 하려는 신의 뜻인가.

창 밖 하늘이 갑자기 밝아지고 있다. 아, 저녁놀이다. 밤이 이르기 전, 마지막 빛을 뿜는 놀은 언제 보아도 좋다. 찬란한 듯 차분한 빛깔이다. 평생 흙에서 보낸 순박한 농부의 마음 같은 빛깔이다. 온갖 욕망을 털어버린 무욕無慾 성자聖者의 빛깔이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최후의 장엄함, 영웅의 최후를 생각하게 하는 빛깔이다. 놀은 오래 가지 않는다. 잠깐이다. 놀이 스러지자 이내 밤, 이젠 뻐꾸기 소리도 멎었다. 내일 다시 맑은 목청을 돋기 위해서는 놈도 이젠 쉬어야겠지.

이 저녁, 들을 지나 냇물을 스친 밤바람에 찔레꽃 향기가 한층 짙어질 고향이 선하다. 아무래도 오늘 밤엔 고향이 꿈에 보일 것 같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시절, 꿈에서나마 돌아가 보았으면 좋겠다. 뻐꾸기 울고 하얀 찔레꽃이 피어 있는 그때의 그 고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