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玉南

 등에 불을 켰다.

낙엽 쌓인 길에 발자국 소리가 뜸해지고 서리를 재촉하는 바람에 끝가지에 겨우 매어 달렸던 가랑잎들이 창 유리에 툭툭 부딪치며 스치는 소리를 내는 깊은 가을 밤은 아니다. 사락사락 귀 기울여야 들리는 눈 쌓이는 소리에 덧창을 열어제치고 안창의 맑은 유리 너머로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는 겨울 밤도 아니다. 떠나가버린 누군가를 생각하며 따뜻한 이 등불에 그리움을 잠재우려는 것도 아니다.

금년엔 일시에 초 봄부터 피어난 꽃들이 다투어 지고 있어 왠지 성큼 계절이 다가선 듯하여 초여름에야 하던 등 옮겨놓기를 미리 한 것이다. 책상 위에서 늦가을부터 겨울과 봄을 함께 난 등을 손질하여 거실 좌측 장식장 위로 내어놓았다. 크지도 않은 책상 위에 컴퓨터며 프린터가 놓이면서 바른편 구석에 얌전히 서서 평시 작업을 위한 밝은 럭스(lux)의 형광등을 제치고 나와의 많은 즐거운 시간을 함께 나누는 등이다. 일단 거실로 옮겨진 등은 다시 내 책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여간 특별한 일 없이는 켜지 않는다.

조심스레 닦아내고 기름질도 하고 구석구석 손질하여 거실에 옮겨놓고 여름잠을 재우기 전 어둠이 깃들였기에 잠시 등에 불을 댕긴 것이다. 등은 환하게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불이 켜질 때마다 새삼스러움이 일곤 한다. 오늘도 그에 매료된다.

이 등은 파키스탄이 고향이다. 20년 전 일본 관동關東의 동해안 항구 도시 요코하마橫浜의 명물인 차이나타운에 있는 고가구점에서 찾아냈다. 천천히 그 거리를 즐기고 있던 중 한 가게 앞에서 신기하게 눈을 끄는 등의 갓이 있어 다가갔다. 분명 동양의 색이었다. 그러나 생김새며 꾸밈에 서양의 감각이 녹아들어 있었다. 청색과 빨강, 황색, 얼른 보면 가장 촌스럽게 느껴지는 삼원색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 어우러짐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고, 구도와 그림은 직접 손으로 그린 작품이었다. 갓의 바탕 또한 종이도 아니고 가죽도 아니었다. 파는 이에게서 낙타의 내장이라고 듣고 들어올려 바닥에서 파키스탄 산임을 확인했다.

파키스탄에 낙타를 타고 사막을 넘나들었을 동서의 카라반을 떠올리며 그 색과 모양에 납득이 갔다. 이슬람 미술품인 것이다. 우리 나라처럼 제2차대전 후 영국에서 벗어나 인도로부터 분리 독립되면서 수도 카라치에서 마루카라 구릉 기슭에 이슬람공화국에 어울리는 수도 이슬라마바드(Islamabad)를 건설하고 이런 미술품을 생산했을 것이다. 그들의 긴 역사 속에서 동서의 색과 향이 녹아들었음은 당연하다고 느껴졌다. 왠지 친근감이 갔고 색에 매료되어 점화를 부탁했다.

파는 이는 친절히 “불이 켜지면 놀라지 마세요” 했다.

불이 켜졌다. 정말 놀라웠다. 샤르트르 블루(chartres-blue)라 여겨졌던 청색은 환상적인 그린으로, 빨강은 깊은 중황색(orange)으로, 황토색으로 보이던 색은 맑은 부드러운 노랑으로, 색깔들은 물론이고 찍어낸 그림이 아닌 하나 하나 그린 꽃이며 잎이며 도안들이 빛을 통해 각기 다른 변화 속에 오묘한 조화를 이루어 환생되고 있었다. 그때 그 감흥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자리에서 사기로 결심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두 파키스탄을 내려다보던 시절이라 값도 생각보다 싼 편이었다. 마침 두 개가 있어 함께 간 우리 두 사람은 여로에서의 쇼핑임을 무릅쓰고 힘드는 줄도 모르고 그 등을 가슴에 안고 그 날의 예정을 모두 접어야 했다. 귀국할 때까지 애기 다루듯 소중히 안고 돌아왔다.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었으나 지금도 그 등은 나를 매료시킨다.

20년을 함께 한 그 등과의 역사를 생각해 본다. 그를 만나면서 파키스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파키스탄을 이해하려 했다. 긴 그들의 고달픈 역사 위에 힌두교의 인도도 아니고 이슬람교인 서아시아의 세계도 아닌 그들의 국가를 구축하기 위해 마치 요술상자 속에 있는 것 같은 파키스탄에는 바람이 거세게 사방에서 몰아쳐 들고 있다. 그 곳을 다녀온 사람은 우리들이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린 따뜻한 인간의 마음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며,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로 발전해 온 그 곳은 현재도 중동으로, 중앙아시아제국으로의 접점으로서 그 중요성은 변화가 없다고 한다. 유럽에서 온 여행자와 동남아에서 온 여행자들이 마주 할 수 있는 곳이란다. 아프카니스탄, 이란, 구소련, 중국, 방글라데시 등 여러 나라와 접하고 있어 많은 곳을 참으로 쉬 드나들 수 있으나, 그 바람 또한 거센 것이어서 어려움도 많은 곳이다. 내 등은 그런 곳에서 꽃핀 미술품이다.

등을 켜는 시간엔 내 영혼은 부유한다. 역마직성을 달래거나 그리움을, 슬픔을, 고독을, 희열까지도 거기에 태워 가고 싶은 곳엘 간다. 요코하마 차이나타운 속의 그 작은 고가구점에도 갔고, 그 가까이에 설치해 놓은 도원결의를 한 무릉도원에도 갔다. 이 등의 고향인 길 기트(Gil Git) 계곡 기슭의 녹색 초원의 융단 위에도, 빨려들 듯 높은 파란 하늘에 높이 솟은 새하얀 길 산봉우리의 빙하와 첫여름의 풋풋한 녹색 속의 무리 지은 분홍색 살구꽃들을 보는 듯 다녀오기도 한다. 그리움도 잠재워주고 가을 밤 적막도 함께 즐겨주며 기나긴 겨울 밤 한껏 별을 헤이게도 하며,

 눈도 맞고 따뜻한 어머님의 옛 품속으로 들게도 하며, 그리도 아껴주시던 아버지께 생전 부려보지 못한 응석과 애교를 부려보게 한다.

한 등이 이렇게 영혼마저 흔들어 놓는다. 우리에게도 얼마나 값진 문화 유산이 많은가? 우리의 넋이 깃든 문화 소산을 만들어 세계인의 가슴에 인각시키며 즐거움을 나누어야지……. 지난 어느 해 프랑스의 경제학자가 우리에게 준 말이 문득 뼈아프게 다가온다.

“한국의 얼이 담긴 상품을, 문화상품을 시장에 내놓으시오. 그래야 세계 속에 살아 남습니다. 남이 한 것을 얼마나 그대로 만들어 내놓느냐가 결코 아닙니다. 손끝으로 모조하는 게 아니고 한국의 얼이 담긴 독특한 창작 상품이어야 합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소리에 얼마나 얼굴 뜨거웠던가. 작은 섬나라 구석에서 찾아낸 아직은 후진국으로 알았던 파키스탄의 등도 사람의 가슴에 이렇게 불을 지피고 있다. 나는 간략한 파키스탄의 역사와 이 등과의 만남을 적어 곁들여서 원형을 보존하기에 노력을 끊이지 않다가 다음 어느 누군가에게 고이 넘길 것이다. 하긴 돈이 아닌 금덩이가 아닌 이런 내 마음을 담은 소장품, 남들이 보면 웃을지 모를 것들이 너무도 소중하게 내겐 몇 가지 소장되어 있다.

이번 파키스탄 등이 내 책상에 옮겨지는 날에는 이런 어린애 같은 작업을 함께 즐겨 줄 문우 몇 사람과 함께 등들을 바라보며 식사라도 하고 싶다.

 

[사족] 실은 학교에도 가기 전 조르고 졸라 전기 없는 곳에 처음 집 떠나 머문 바닷가 친척 댁에서 그 댁 할머니가 꼬마 손님을 위해 남포등의 등피燈皮를 맑게 닦아서 불을 켜주시던 기억이 아름답게 남아 있어 그 등의 심지를 올려보고 조정해 본 게 잊혀지지 않아, 모든 등에 이렇게 애착을 느끼게 되었나 보다.

막내가 나의 마음을 읽어 등을 좋아하는 에미에게 선사한 등을 몇 해 전 시카고에서 가져오느라 혼이 났고, 자신이 오면서도 들고 와 우리 집엔 우선 내 방 작업실 구석구석 놓인 3개의 등과 거실의 5개의 등, 안방의 3개의 등, 남편 서재의 2개 등, 식탁 위의 구리등하여 평시 쓰는 가구로서의 등 외에 14개의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파키스탄 등, 구리등, 책장에 놓인 우리 옛 남포등과 같이 손으로 심지를 조정하고 기름을 넣는, 그러나 서양풍의 남포등 등피와 기름단지에 예쁜 꽃 그림이 있는 작은 등, 이렇게 3개를 나는 편애하고 있다.

 

김옥남

<책과 인생>으로 등단.

에세이집 "시간의 향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