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우산

                                                                                                     박용화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여니 “짠” 하며 딸아이가 뒤에 감추고 있던 카네이션 한 다발을 내민다. 뜻밖의 풍경에 흠칫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이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오랜 전, 내가 딸아이 나이였을 무렵에는 어버이날이 되면 카네이션을 만들었다. 적당한 크기로 자른 철사로 꽃잎 모양을 만들어 용액에 담궜다가 꺼내면 막이 생긴다. 잘 마를 때까지 스티로폴에 꽂아 뒀다 한 잎 한 잎 모아서 테이프로 고정시키면 카네이션이 완성된다. 웅크리고 앉아 카네이션을 만들고 있으면 부모님이 받을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오는 듯했다. 부모님의 보호막 안에서 언제까지나 어린 딸로 남아 있을 것 같았는데 어느 새 딸아이가 숙녀가 다 되었다.

중학교 2학년쯤이었나 보다. 학교가 끝날 무렵 소나기가 왔다. 친구들과 복도를 걸어가다 무심코 앞을 보니 아버지가 보였다. 유난히 큰 키에 급히 나오셨는지 집에서 입던 옷차림의 아버지 손에는 우산이 쥐어져 있었다. 순간 뛰어가서 우산을 나꿔채다시피 하곤 인사도 하지 않은 채 교실로 되돌아왔다. 당시 시청에 근무하셨던 아버지는 수용할 수 없는 사건 때문에 사표를 던지셨다. 우산을 갖고 오신 아버지의 모습에서 일을 놓은 초췌함을 본 순간, 반사적으로 그 자리를 도망쳐 달아났던 것이다.

난 그 날의 일을 아이의 엄마가 되도록 까맣게 잊고 있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비오던 날, 우산을 들고 아이 마중가는 길에서 우연히 그 날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하교 후 내내 편치 못한 마음으로 아버지의 눈치만 살피며 꾸중을 기다렸었다. 하지만 끝끝내 학교에서의 일은 침묵을 지키며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온화한 표정이셨다. 차라리 꾸중이라도 하셨더라면 그토록 마음이 아프진 않았으리라. 잔잔한 성품이라 행동에 앞서 아버지의 뗌습(?) 먼저 헤아리곤 하던 딸이 처음으로 일으킨 반란이었다.

당시 학생이던 남편과의 결혼을 만류하시긴커녕 다른 채널을 갖지 못하는 딸을 헤아리시곤 내내 가슴앓이 하셨던 아버지. 남편이 군복무를 마치고 첫 직장을 갖게 되던 날, 제일 먼저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지금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기뻐하시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들리는 듯하다.

남편의 지방 발령으로 분가를 해야 할 때였다. 시댁에선 미처 집을 얻어 줄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보증금을 조금 걸고 월세를 내는 방 한 칸을 얻었다. 장롱과 경대를 한쪽에 놓고 맞은편에 침대를 놓으니 장롱 문이 겨우 열릴 정도로 공간이 좁았다.

나는 결혼과 동시에 시작된 시집살이에서 벗어나서인지 겉으로 보여지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망 좋고 평수도 큰 시댁에서의 생활이 보기엔 좋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 있어 작은 부엌이 딸린 방 한 칸은 소꿉놀이를 하는 것처럼 마냥 꿈 같은 나날이었다.

이사한 피로가 채 풀리지 않은 어느 날 아버지가 찾아오셨다. 출가한 딸의 집을 그토록 와 보고 싶어하시던 아버지는 사전 연락도 없이 집을 아는 동생을 앞세우고 오신 것이다. 한동안 침대에 묵묵히 걸터앉아 계시던 아버진 그만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셨다. 유독 침울했던 표정이 걸리기는 했지만 평소 감정 표현을 아끼던 분이라 그 당시엔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때 아버지의 침묵은 두고두고 가슴에 휙하니 바람을 그어댄다. 문을 들어서면 바로 부엌이며 방이었던 단칸방에서 사는 딸의 모습이 아버지의 시각에선 아픔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아버지가 가시던 날엔 휑하니 초겨울 바람이 불었다. 영안실에서 묘지로 모시기 위해 부산하던 움직임 너머로 희뿌연 안개에 젖어 있던 아침의 느낌을 난 차마 지울 수가 없다. 그 차가운 땅에 아버지를 묻고, 내 눈물을 묻고, 돌아서는 길목부터 한으로 새겨졌던 숱한 기억들. 지금도 차오르는 감정이 버거운 순간이면 다소 침울하고 적막한 어조로 ‘아버지’라고 부르기만 하면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물기 머금은 눈으로 농축된 그리움을 쫓다 보니 불현듯 차를 몰아 아버지 산소엘 가고 싶다. 얼키설키 엮어져 있는 일상으로부터 잠시 떠나 아버지의 우산 속으로 뛰어들고픈 까닭일까. 깡그리 잊고 있었던 기억이, 휘날리며 우산을 갖고 딸의 학교를 찾으셨던 아버지의 발걸음이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박용화

<계간 수필>로 등단. 시문회 회원.

공저 『시와 수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