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朴木月)의

 

'가로등'

 

    

일 시:2002년 6월 15일

장 소: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 인원 : 문우회 회원 20명

사  회 : 고봉진

정  리 : 최순희

 

 

 

(본문)

 

가로등

 

가로등이 좋아지는 것은 역시 겨울철이다. 함박눈이 쏟아지는 밤에 설레이는 눈발 속에서 우러러보는 등불. 그것은 우리의 눈길이 닿을 수 있는 동경憧憬의 알맞은 위치에 외롭게 켜 있는 꿈의 등불이다. 그 등불이 켜진 가로등 기둥에 호젓이 기대어 가없는 명상에 잠시 잠겨보는 고독한 모습 ─ 그것은 젊은날의 눈물겨운 나의 모습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눈 오는 밤 가로등에 기대보는 그런 ‘고독한 낭만’조차 잊은 지 오래이다. 그것은 내가 나이 든 탓만이 아닐 것이다. 인간이란 나이가 들수록 고독해지는 것이며, 그래서 눈이 오는 밤은 한결 유감有感해질 수도 있는 일이다. 다만 내가 고독한 낭만을 못 가지는 것은 세태의 탓이다. 해방 후로 우리는 밤의 낭만을 잃어버렸다. 그 포근한 밤의 지향없는 소요逍遙를 통행금지라는 법이 막고 있다.

열두 시 사이렌이 불고 나면 이미 밤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시청 앞길의 가로등은 텅 빈 광장을 외롭게 비치는 고독한 등불이 되는 것이다. 통행금지 시간 넘어 거리에 열을 지어 서 있는 가로등의 그 처참한 모습과 쓸쓸한 불빛…… 그렇다, 우리의 생활에는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 밤을 대문 안에서만 즐겨야 하는 것이다.

안데르센 동화에 ‘늙은 가로등’이란 작품이 있다. 밤이면 가로등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이마가 넓은 청년의 이야기로 시작된 작품이다. 가로등은 그 고독한 청년의 허연 이마에 불빛의 쓸쓸한 키스와 쓸쓸한 축복을 부어주었다.

……나는 이 동화를 읽으면서 젊은 청년의 이마에 비쳐주는 가로등의 쓸쓸한 불빛의 키스를 내 이마 위에도 느꼈다. 다만 내게는 그것이 가로등의 쓸쓸한 불빛이기보다 오히려 신神의 너그러운 축복이요, 내 삶이 내게 비쳐주는 빛과 같았다.

나는 길고 아득한 인생 여로의 대목마다 가로등이 켜 있기를 빌었다. 참으로 가로등을 멀리서 바라볼 때, 그것은 미래의 어느 지점에 은은히 비치는 별빛이다. 나는 그것을 목표로 어둔 길을 어느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가게 된다.

가로등 가까이 이르게 되면 길이 환해지고, 때로는 목표한 가로등에 함박눈이 닝닝거리는 벌 떼처럼 설레이기도 하고, 가는 실비가 비단 베일을 씌우며 신비롭게 속삭이기도 하고, 혹은 어둠 속에 등불만 쫑긋이 켜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막상 목표한 가로등을 지나면 나의 그림자가 발에 밟힌다. 그림자가 밟히는 사실을 나는 무어라 표현할까? 눈물겨운 추억의 한 자락이 발에 밟히는 것이라 할까? 나는 이 어둡고 고독한 밤길에 다만 가로등이 비쳐주는 그만큼의 ‘빛의 둘레’ 속에 나의 그림자와 더불어 호젓이 길을 걷는 한갓 영상影像으로 화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을 건너가는 나 자신의 모습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흐뭇한 고독감…….

그것은 나의 삶의 가장 밑바닥에 흐르는 서러움의 물길이다. 이 물길 위에 배를 띄우듯 어줍잖은 몇 편의 시…… 그것이 나의 숨쉬는 시의 세계일 것이다.

가로등이 비쳐주는 이러한 빛의 둘레를 완전히 벗어날 때 앞이 아득한 암흑의 벽을 느끼며 어두운 앞길에 또 하나의 가로등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가로등이 없을 경우 아득한 어둠은 영원한 어둠이 아닐까 보냐. 이것은 나의 마지막이다.

나의 일생은 언제나 적당한 거리에 가로등이 켜 있는 길이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지나온 길 위에 그것은 열을 지어서 스크린의 어느 한 장면처럼 끝없이 뻗쳐 있다. 또한 나의 미래도 설사 아무리 절망하기로니 늘 가로등이 대목마다 켜 있는 길일 것이다. 내가 마음 속에 신을 잃지 않는 한, 혹은 시詩를 놓치지 않는 한, 그래서 나는 창백한 이마에 가로등의 그 쓸쓸한 불빛의 키스와 축복을 받으며 외롭게 흐뭇한 밤길을 가게 될 것이다.

 

 

 

 

 

사회 : 안녕하십니까? <계간 수필> 제29호, 2002년 가을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합평 대상 작품은 목월 박영종 선생의 수필 ‘가로등’이 되겠습니다. 지정 토론자로는 김시헌, 강호형, 유혜자, 정선모, 이렇게 네 분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박목월 선생은 1910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1978년에 작고하셨습니다. 생전에 좋은 시를 많이 남긴 우리 나라의 대표적 시인이지만 수필집도 꽤 여러 권 내셨고, ‘이별의 노래’ 등 노래말도 참 많이 지으셨습니다. 오늘은 작품 토론에 들어가기 전에 인간 목월에 대해 먼저 얘기를 나눠 보았으면 합니다. 인접 지역은 아니지만 김시헌 선생님도 같은 경북 출신이신데, 목월 시인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시헌 : 별다른 것은 없고 경주에 목월 시비詩碑가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아마 다른 분들도 다 아실 테지요.

 

사회 : 제 말씀을 잠깐 드리자면, 제가 박영종 선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48년 발간된 <소년>이라는 어린이 잡지를 통해서였습니다. 그런 장르가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선생께선 당시 ‘소년시’라는 것을 많이 쓰셨습니다. 그때는 목월이라는 호를 안 쓰고 그냥 박영종이란 본명으로 발표하셨는데, 매우 절제된 언어를 구사하셔서 저도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한 시인입니다. 그분의 수필이 지금까지 우리 합평 대상 작품이 안된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인데, 오늘 이 자리가 짧지만 음미할 부분이 많은 그분의 작품을 살펴볼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먼저 정선모 선생께서 박목월의 시대적 배경과 문학세계에 대해 좀 소개해 주시지요.

정선모 : 박목월 선생님은 우리 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청록파 시인들 중 한 분으로, 저희도 고등학교 때 자세히 배웠습니다.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일제의 식민 지배가 더욱 악랄해져 가는 1939년 순수 문예지 <문장>이 창간되어 침체된 문단에 활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특히 <문장>은 신인 추천제를 통해 박목월·박두진·조지훈·이한직·김상옥 등의 유망한 시인들을 배출하지요. 그러나 이런 신인들이 미처 작품 활동을 전개하기도 전인 1941년에 두 잡지는 폐간되고, 문예지는 <국민문학> 하나로 통합되기에 이릅니다. 일제의 국민 문화정책은 더욱 노골화되어, 1943년에는 조선문인협회를 비롯한 여러 문학 단체가 하나로 합쳐져 ‘조선문인보국회’가 결성됩니다. 이러한 민족적 암흑기에 미당이나 이광수·최남선 등의 저명한 문인들이 일제의 강요나 사상 전향으로 대부분 친일 문학을 할 수밖에 없었을 때, 청록파 시인들은 붓을 꺾고 낙향하였다가 해방 직후에 시집 『청록집』을 통해 한국적 자연과 정서를 녹여낸 것이지요.

청록파 시인들의 문학세계를 일괄적으로 ‘자연파’로 분류하고는 있지만, 박목월의 향토적 서정과 조지훈의 전통적 아취 그리고 박두진의 기독교적 자연은 분명히 다릅니다. 특히 박목월의 향토적 서정에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의 의식이 살아 있고, 이를 통해 일제 말기 한국인의 정신적 동질성을 통합하려고 한 가치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목월은 1939년 ‘가을 어스름’과 ‘연륜年輪’으로 등단한 이후 1978년 타계할 때까지 사십 년간 430여 편의 시를 썼습니다. 그래 당연히 시가 더 많으리라 생각했으나, 이번에 보니 타계하기 두어 해 전 삼중당에서 펴낸 자선집 열 권 중 여덟 권이 산문집일 정도로 산문도 많이 쓰셨더군요.

 

사회 : ‘가로등’이 발표된 건 언제입니까?

정선모 : 1970년에 나온 『불이 꺼진 창에도』라는 산문집에 처음 수록되어 있고, 그 다음에 나온 다른 산문집들에 많이 고쳐서 재수록된 것이 오늘 우리가 합평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사회 :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면 먼저 ‘가로등’의 주제를 살펴본 다음, 원고지 10장 분량의 작품을 합평하는 이번 기회를 빌어 수필의 길이에 대해 한번 얘기하고 넘어갔으면 싶습니다. 또 본문에 인용된 안데르센 동화에 대해서도 좀 살펴봤으면 합니다.

그럼, 주제에 대해 강호형 선생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강호형 : 수필 한편의 주제를 한마디로 명료히 정리한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지요. 여러 가지 상념을 더듬으면서 가로등에 빗대어 자신의 인생을 반추해 보려 한 것이 아닐까 정도로 해두겠습니다.

 

사회 : 사실 우리가 주제라는 말을 많이 쓰긴 합니다만, 세계문학사전 등에도 보면 이젠 테마라는 말을 잘 안 쓰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수필을 공부하는 우리로선 글쓴이가 이 글에서 하고자 한 중요한 얘기는 무엇인가를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지요.

유혜자 : 다소 비약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려운 세태에서 외롭고 고단하게 어둠을 헤쳐나가려는 문학인으로서의 자화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분의 ‘문학에 뜻을 둔 젊은이에게’라는 글을 보면, ‘직설적이거나 정치적이기보다 유연하고 상징적인 언어와 문자로 빚은 예술의 초상이라야 돋보이는 문학작품’이다고 하셨는데, 바로 ‘가로등’ 같은 게 아닐까 싶어지거든요. 이 작가에게 가로등은 어두운 길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영혼을 밝히는 마음의 등불이 아니었는가 하고 말이지요. 또한 가로등은 앞날에 대한 그 어떤 희망도 없던 암흑과 절망의 일제 강점기에, 이분에게 꿈의 등불로 고독한 명상을 하게 했고 위로와 낭만을 가져다 준 시의 상징으로도 읽혔습니다.

김시헌 :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이 글만 두고 볼 때 박목월이라는 시인의 내적 감정 세계, 즉 고독과 애수와 어두움과 낭만이 한데 합쳐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모두를 가로등에 부쳐서 자신의 심상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가로등이 없어 어두울 때는 어떻게 하나? 다음 번 가로등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이 글 속엔 낭만과 밝은 요소도 있지만 어두움도 상당 부분 깔려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계속 늘어 서 있는 가로등이 끝나면 시인 자신도 끝난다는 말까지 하고 있는데, 어두움 위에 있는 시인의 낭만·고독·애수를 산문으로 쓴 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정선모 : 등단하여 타계하기까지 박목월 시인의 작품 세계는 몇 단계 변화를 거치고 있습니다. 초기 시에서는 자연과의 교감을 많이 노래했다면 중기 시에서는 생활·인간사를 제재로 하면서 현실 생활에 밀착되어 있습니다. 생활인으로서,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개인적인 고뇌에 휩싸이지요. 반면, 후기 시에서는 차츰차츰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 귀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로등은 인생 여로에 켜져 있는 꿈의 등불, 곧 희망을 상징하며, 시와 신은 그의 삶의 등불이요 구원이었으리라 봅니다. 그 스스로도 “시는 내 삶을 밝혀온 작은 등불이었다”라고 토로한 적이 있어요.

가로등의 이미지는 어둠을 밝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가로등은 태양처럼 온 세상을 밝히는 게 아니라 고작 그 둘레만 밝히지요. 다만 위안이 되는 것은 가로등이 계속 뻗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은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다시 말해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것이 인생 여로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회 : 지정 토론자들께서 준비해 주신 내용들을 들어보았습니다. 유경환 선생께선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유경환 : 내 인생 도정에는 적당한 거리에 저녁마다 위안을 주는 등불이, 밝은 빛이 있었다, 그건 시다, 등불이 마련한 빛의 둘레에서 나는 내 존재를 확인하고 흐뭇한 밤을 맞이할 수 있었다, 거기를 벗어나면 그림자가 소멸되어 자기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다, 저는 대략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이 짧은 10장짜리 산문 속에 쓸쓸하다, 고독하다 라는 형용사가 각각 다섯 번씩 무려 열 번이나 나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한 가지 가능한 해석은 인생은 본질적으로 고독하고 쓸쓸하지만 시가 이에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으로 읽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호젓한’, ‘눈물겨운’, ‘처참한’ 등의 감상적인 어휘로 볼 때, 앞서 정선생은 70년대에 나온 글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에서와는 달리 미처 발효되지 않은, 정신적으로 청년기에 썼던 글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이런 감상적인 형용사를 이토록 중복해서 쓸 수는 없었을 텐데 하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문학청년 시대의 날 것 그대로가 반영된 게 아닐까 하는, 깊지 않은 물을 배를 타고 건너갈 때의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정진권 : 나이가 들어서 쓴 글인데요?

 

사회 : ‘열두 시 사이렌이 불고 나면 이미 밤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라는 시청 앞 가로등 얘기는 비록 해방 이후 죽 통금이 있었다고는 하나 우리가 가장 통금을 절실하게 느낀 것이 박정희 시대였음을 생각할 때 역시 60년대 후반, 길게는 70년대 초의 글이 아닐까 추측하게 합니다. 다만 ‘이별의 노래’의 소재가 된 여인을 끝내 못 잊어 한 점 등, 그분에겐 만년 소년 같은 면모가 있었지요.

정진권 : 자기 인생의 어두운 길에 표지로서 가로등이 나타난다, 그것이 끊어질 때 나는 끝이다, 그러나 신 혹은 시가 있는 한 나의 미래도 상당히 희망적이다, 이렇게 글의 뒷부분은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문학 소년같이 감상적인 글이며 비산문적이고 설명 부족이라고 여겨집니다.

허세욱 : 저도 젊었을 때 쓴 글이라고 봅니다. ‘불 꺼진 창’을 쓸 때가 삼십대였는데, 이분의 정서 상태는 사십대, 오십대가 되어서도 소년적이었습니다. 하물며 삼십 중반 이전에 쓴 글이면 오죽하겠습니까. 어쨌든 ‘가로등’은 다원적인 글입니다. 자신이 있는 곳은 어둡고, 보이는 등은 밝고, 즉 이쪽은 어둡고 저쪽은 밝고 등등, 자기·현재, 밝은 것·어두운 것, 보이는 것·보이지 않는 것을 끊임없는 양분화 구도로 놓고 썼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젊은이나 가질 수 있는 격정이 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수필집을 분석해 볼 때 말년까지도 감정의 농도가 짙고 격정이 많았던 분임은 분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미성숙한 젊은이의 순도가 있을 때 쓴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더 짙게 듭니다. 그런데 아까 정선모 선생 조사에 의하면 1970년에 나온 수필집에 실린 글이라면서요?

정선모 : 1970년에 나온 수필집에서만 보였습니다. 거기 실린 산문 대다수가 별, 사랑 혹은 사랑의 쓸쓸함 등을 얘기한 여성적 감수성이 농후한 것들이었어요.

허세욱 : 혹시 산문 분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아십니까?

정선모 : 전집 한 권에 대략 60편 정도인데, 모두 여덟 권이니 총 500편 가까이 된다는 계산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시도 읽어 보면 후반기에 쓰신 작품들도 허선생님 말씀과 같이 거개가 소년적·정태적이고 여성적인 느낌이 농후했습니다.

변해명 : 제가 보기엔 현재성이 없는 글입니다. 자신의 체험이나 구체적 삶의 흔적이 들어 있는 글이 아니라, 시인의 감상 혹은 상상의 세계 속에 가로등이란 것을 하나 설정해 놓고 그 숫자만큼 삶의 과정을 가로등으로 보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가로등 앞에 서서 희망이라든지 밝음 같은 것을 보고 있다가 그 앞을 지나가면 그림자가 길게 이어지고, 그 그림자를 밟고 어두운 데로 가면 다시 또 다른 가로등이 나타나고,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우리 삶이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현주소가 아닌, 불안한 현주소를 넘어서서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곧, 시와 신과 빛과 가로등을 하나로 묶어놓은, 이분의 정신적 상념을 이야기한 글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사회 : 이야기를 조금 다른 측면으로 진행시켜 보도록 하지요. 이 글은 원고지 10장 분량으로, 당시 수필치곤 상당히 짧습니다. 박목월 시는 상징적이고 절제된 언어 미학이 뛰어났는데, 원고료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산문은 길게 늘여 쓴 감이 있지요. 대부분의 수필이 매체의 기준에 맞춰 쓰여지기 마련인데, 요즘은 종래의 15장기준에서 12, 13장으로 조금씩 짧아지더니 아예 10장을 요구하는 데도 있습니다. 짧은 만큼 진하고 상큼한 효과를 지향하는 것이지요. 저는 읽기에 적당한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들 보시는지요?

강호형 : 저도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길이가  짧다, 길다 하는 것보다 질이 문제겠지요. 길게 쓰면서 재미도 있고 잘 읽히면 좋겠으나, 일부러 수필을 찾아 읽는 독자도 드문 현실이니 이 정도면 상큼하게 읽힐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김태길 : 이왕 길이 얘기가 나왔으니 저도 한 말씀 하겠습니다. 저도 요즘은 가급적 짧게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금아 선생 글도 다 짧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실은 짧은 글만 쓸 줄 아는 사람은 한계가 있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몽테뉴나 베이컨의 글도 모두 길지 않습니까. 긴 글도 쓸 수 있고 짧은 글도 쓸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바람직한 수필가가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매체와의 관계가 문제가 되고 우리 <계간 수필>도 한정된 지면상 짧은 글을 선호하기는 합니다만, 그 둘 다를 읽고 쓰고 수용할 수 있는 독자와 필자와 매체가 있는 수필계가 바람직하겠지요.

허세욱 : 그 장단은 품격에 따라 결정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론 수필은 자연히 길 수밖에 없겠고, 목월처럼 시적이고 압축된 글을 쓴다면 짧아질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가로등’도 지우면 상당히 많은 부분이 지워질 수 있다고 봅니다. 한 절반 길이로도 압축 가능할 것 같은데요?

정진권 : 수필의 길이는 쓰는 사람 입장에서 그 내용에 따라 정해져야지 10장이니 15장이니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사회 : 이 작품 중에 쓸쓸함, 고독 등의 낱말이 남발되었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김시헌 선생은 산문으로 쓴 시다, 라고도 하셨는데 문장에 대해 좀더 살펴보도록 하지요.

김시헌 : 밤과 가로등과 자신의 감정을 한데 엮어서 입체감 있게 영상적으로 표현한 문장이었습니다. 내면의 정서를 꾸밈없이 그대로 표현하려는 노력이 엿보였습니다.

유혜자 : 멋스러운 표현도 있고, 시적인 함축성이 있긴 하나 모호한 부분도 많고, 별로 깔끔한 문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강호형 : 거부감 주는 표현도 없고 평이한 문장이라 읽기는 편합니다. 시인이라 그런지 분위기를 전달하는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은유적이면서도 아리송하지는 않은 표현도 맛이 있고요. 다만 소녀 취향적인 유치한 정서는 좀 걸립니다.

정선모 : 초고에서부터 무려 25군데가 고쳐진 글이더군요. 본인이 상당히 애정을 갖고 있는 글이라는 반증이겠지요. 그러나 어휘의 중복이라든지, ‘흐뭇한 밤길’, ‘처참한 가로등’ 등의 표현은 아무래도 어색합니다. 대신 ‘함박눈이 닝닝거리는 벌 떼처럼 설레인다’라든지, ‘비단 베일 같은 가는 비’, ‘나의 그림자가 밟힌다’라는 표현은 신선했고요. 한편 안데르센의 ‘늙은 가로등’은 철거된 가로등 입장에서 쓴 동화로, 박목월이 차용한 뜻과는 전연 다른 글이었습니다. 생의 불빛이란 의미의 가로등과는 정확하게 연결되지 않는, 부적절한 인용이었다고 봅니다.

김시헌 : 안데르센의 ‘늙은 가로등’이란 작품에 실제로 이마 넓은 청년의 얘기가 있습니까?

 

사회 : 없습니다. ‘낡은 가로등’이란 작품에 가로등 밑에 서서 사랑의 편지를 읽고 행복해 하는 청년 얘기 등이 잠깐 나오기는 하지만 맥락이 안 맞을 뿐더러, 안데르센이 다루고자 한 것은 일종의 윤회 사상 얘기였습니다. 즉, 낡아 쓸모 없어진 가로등이 용광로에서 녹여져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길 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내가 촛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좋으나, 과거 내가 가로등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을까? 제 아무리 다시 태어난들 기억을 통해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면 단지 일회적인 삶이 아닐까?’ 하는 의문 말입니다.

허세욱 : 이미지도 연결이 안 되던가요?

 

사회 : 전혀 안 됩니다. 그저 하나의 컷을 딱 따와서 쓴 셈인데, 바로 이런 점이 우리가 수필 쓰는 사람으로서 매우 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말하려는 주제와 정확히 들어맞는 인용을 해야 한다는 거지요.

유혜자 : 마지막 문장 첫머리에 ‘나의 일생’이란 표현은 ‘반생’ 혹은 ‘과반생’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고, 뒤이어 나오는 ‘또한 나의 미래도 설사 아무리 절망하기로니…’ 이 부분도 어색합니다.

강호형 : 첫 문단에서 ‘우리의 눈길이 닿을 수 있는 동경의 알맞은 위치…’ 이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윤소영 : 저는 이 수필을 인간의 존재론적인 문제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읽었습니다. 시라는 절대적 미의 세계가 빛이라면 인간은 절대로부터 괴리된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그분의 성찰과 고독이 드러나는 것이, 좀 연세 들어 쓴 글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또한 해방 후의 통행금지라는 말 때문에 시적 이미지가 분산된 감이 있으므로 둘째, 셋째 단락은 빼고 중복되는 어휘나 말줄임표를 없애면 한결 깔끔한 글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사회 : 동감입니다. 다만 통금 얘기는 발표 당시엔 상당한 공감을 얻었을 겁니다.

이경은 : 시적 표현이 애매 모호하고, 전체 문장 구성에 있어서 산문적 논리성이 부족하고 허술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짜임새가 빈약하달까요. 모든 게 다 구체적일 수는 없겠으나, 좀 아쉬웠습니다.

 

사회 : 시에서도 그랬듯, 반복 어휘를 쓴 것은 좀더 잘 읽히기 위한 의도적인 측면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이병남 : ‘늙은 가로등’이란 나이가 들어서도 나는 다시 글을, 시를 쓸 수 있다는 희망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져서 저는 나이가 들어서 쓴 글이라고 보았습니다.

한형주 : 저는 박목월 선생이 무슨 대단한 주제를 설정하고 그를 논하기 위해 쓴 글이라고는 보지 않았고, 내용에 비해 어휘가 너무 거창하게 여겨졌습니다. 꿈보다는 역시 우리 회원들의 해몽이 더 좋습니다(웃음).

 

사회 : 아쉬운대로 이상과 같이 목월 박영종 선생의 ‘가로등’을 살펴보았습니다.

시적 표현이 아름답긴 하나 문장 정리가 덜 되었고, 글에 흐르는 정서도 감상적이고 유치하다는 부정적 견해도 나왔습니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 시인이 남긴 수필집 첫머리의 표제 수필인데 이 자리에선 썩 좋은 평가는 못 받은 듯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결함이 있는 합평 대상 작품일수록 우리가 수필을 쓰는 데에 반면교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오늘 합평회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