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연습

                                                                                          정진권

 오답(誤答)과 정답(正答)

내가 고등학교 학생 때의 일이다. 언젠가 국어 시험에 ‘전쟁발발’을 한자로 쓰라는 문제가 난 일이 있다. 나는 어렵지 않게 戰爭勃發을 써냈다. 그런데 다음 국어 시간에 선생님께서는 내 친구 한 녀석의 터무니없는 오답을 일품逸品이라고 극찬하시면서 그 한 시간을 위트라는 말씀으로 다 때우셨다. 녀석은 勃發을 몰라 戰爭足足이라고 썼다 한다.

나는 그때 오답을 일품이라고 극찬하신 선생님 말씀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위트 전무全無의 자신의 글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그 말씀에 고개를 숙일 때가 있다. 선생님께서는 戰爭勃發에 동그라미를 치시면서 얼마나 머리가 산뜻하셨을까?

적어도 수필에 있어서는 아둔한 정답보다 산뜻한 오답이 더 정답인 듯하다.

 

약수藥水와 독수毒水

술을 마치 신선神仙의 약수나 되는 것처럼 예찬하는 분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술에 취하여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싸우는 사람들을 나는 많이 보았다. 술이 만일 신선의 약수라면 그들이 왜 그랬겠는가?

술을 마치 악마惡魔의 독수나 되는 것처럼 매도하는 분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조용히 음미하며 흥겨운 이야기로 한때를 보내는 사람들도 나는 많이 보았다. 술이 만일 악마의 독수라면 이것이 가능하겠는가?

술은 그냥 술일 뿐이다. 약수도 독수도 아니다. 그러나 먹는 사람에 따라서는 신선의 약수도 될 수 있고, 악마의 독수도 될 수 있는 좀 이상한 물건이다.

 

베레모(帽)

오래 전의 어느 겨울날, 대문 앞에 쌓인 눈을 치우다가 동정이 하얀 검정 두루마기에 역시 검정 베레모를 쓰고 지나가는 한 중년 신사를 보았다. 혹 시인이었을까? 아니면 화가였을까? 나는 그분이 누구인지 무얼 하는 분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품위 있는 차림새에서 말할 수 없는 온화함을 느꼈다.

“나도 베레모 하나 사 쓰리라.”

그러나 서울에는 그런 베레모가 없었다. 그런데 그 다음 해 여름에 일본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나는 거기서 프랑스제 하나를 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겨울을 기다렸다.

드디어 겨울이 되었다. 어느 날 아침 출근을 할 때 나는 그 베레모를 쓰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이상했다. 아무리 고쳐 써 보아도 온화함이 풍기질 않는 것이다. 온화함이란 베레모에서 풍기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음이 온화한 사람은 전투모戰鬪帽를 써도 온화하게 보일 거야.”

그때 내가 중얼거린 말이다.

 

추월追越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받고 주행 연수를 할 때의 일이다. 그때 나이 지긋한 연수 교사가 한 말이다.

“좁은 길을 갈 때 뒤에서 오는 차가 내 차를 추월하려고 하는 일이 있습니다. 갈 길은 바쁜데 내 차가 가로막고 있으니까 답답해서 그러겠지요. 그럴 땐 전방에 무슨 장애물이나 달려오는 차가 없는지 잘 살피고 아무것도 없으면 바른쪽 깜빡이를 깜빡이면서 길가로 붙습니다. 그러면 뒤 차가 안심을 하고 추월을 합니다. 바른쪽 깜빡이를 켜는 것은 추월을 해도 좋다는 뜻입니다.”

그 얼마 후 좁은 길을 가다가 꼭 그런 상황을 만났다. 나는 연수 교사의 말대로 전방을 살피고 바른쪽 깜빡이를 켜서 프라이드 한 대를 추월시켰다. 그때 그 운전자가 손을 흔들어 고마움을 표시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추월을 당하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그러나 추월을 시키는 것은 다소 섭섭은 하지만 유쾌한 일이다.

“정진권 군, 이제 그대는 그대의 빛나는 후배들을 위하여 바른쪽 깜빡이를 켤 때라네. 알겠는가?”

 

어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에 말했다.

“저 소나무를 보아라. 사시에 푸르지 않니? 사람도 저렇게 변함없이 살아야 한다. 저 대나무를 보아라. 속이 텅 비어 있다. 사람도 저렇게 욕심 없이 살아야 한다. 변함없이, 욕심 없이, 알겠니?”

어린 손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렇게 말하는 그 할아버지와 고개를 끄덕이는 그 어린 손자가 퍽 부러웠다. 내가 그 할아버지처럼 이렇게 말한다면 내 어린 손자들도 그렇게 고개를 끄덕일까? 아닐 것이다. 끄덕이기는커녕 이렇게 되물었을 것이다.

“할아버진 어떻게 살았어? 할아버지도 소나무처럼 대나무처럼 그렇게 변함없이, 욕심 없이 살았어?”

그리고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