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형

 날씨는 후텁지근한데다가 특별히 할 일도 없어 건성으로 책장을 뒤적이고 있을 때 전화 벨이 울렸다. 뜻밖에 허선생이었다.

“강선생, 오늘 뭐 바쁜 일 없소?”

“별 할일 없는데요.”

“마침 잘 됐구먼. 광교산 가 봤겠지?”

이건 질문이 아니라 단정이다. 하기야 수원에 살면서 광교산엘 안 가봤다면 문화 수준의 문제다.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솔직하기만 하다고 상 받을 일도 아닐 성싶었다.

“그러믄요”

“그럼, 두 시에 형제봉에서 만납시다.”

거짓말 한 벌이 이렇게 당장 발등을 찍을 줄은 몰랐다. 사실 나는 저쪽에 보이는 산이 광교산이려니 만했지, 형제봉이란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허구 많은 찻집·술집 다 놔두고 광교산, 아니 형제봉으로 오랄 건 뭐람!’

“전, 입구까지만 가봤지 올라가 보진 못했는데요?”

혹시 약속 장소가 변경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는 단박에 박살이 났다.

“아, 거 입구에서 물어보면 다 알아. 입구에서 한 사십 분이면 올 거야. 난 여기서 가자면 두어 시간 걸려. 그런데 핸드폰은 있소?”

“없는데요.”

“아직도 촌놈 못 면했구먼. 오다가 못 찾겠거든 지나가는 사람 핸드폰 좀 빌려서 전화를 걸라구!”

갈수록 태산이었다. 최근 들어 나는 그 정도 높이의 산에도 올라본 적이 없어 겁부터 났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니 걱정이 형제봉보다 컸다.

나라고 산을 아주 멀리하고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수원으로 이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산악회를 따라다녔고, 그 이전에는 정상을 밟지 못하면 등산이 아니라고까지 오만을 떤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꾀가 나서 그 즈음에는 산 중턱쯤에 주저앉아 토속주나 마시며 제법 신선 흉내를 내다가 돌아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상을 돌아 내려오던 친구가 힐난하듯 한 마디 던졌다.

“아, 산에 왔으면 산에 올라가야지, 여기서 뭣들 하고 있는 거야?”

말씀이야 옳았다. 그렇다고 그 친구가 부럽거나 대견해 보일 것도 없었다. 떫은 입맛을 다시며 바라보니 마침 친구 뒤쪽으로 개미 떼 같은 하산 행렬이 이어져 있었다.

“봐라! 다들 내려오고 있지? 저렇게 도로 내려올 걸 뭣하러 기를 쓰고 올라가?”

옆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려주지 않았다면 썰렁한 ‘개그’가 되고 말았을 이 말이 그 모임의 유행어가 된 적도 있었다.

이렇듯 ‘심오한 등산 철학’을 일찍이 터득한 바 있는 터에 새삼 형제봉이라니, 이건 숫제 퇴역병에게 내려진 돌격 명령이 아닐 수 없었다.

40분이면 올 거라던 말이 믿기지 않아 80분 여유를 두고 등산로 입구로 들어서다가 형제봉 가는 길을 물으니 절터쪽으로 가는 길이 있고 토끼재쪽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토끼재쪽이 지름길이란다. 지름길을 두고 굳이 돌아갈 까닭이 없었다.

토끼재는 과연 이름에 걸맞았다. 우거진 잡목 숲을 뚫고 꾸불꾸불 이어진 길이 나선형 사다리 같았다. 뒷다리 힘이 산토끼쯤이나 돼야 무리가 없을 만큼 가파랐다. 거기서 직립보행 영장류의 자존심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두꺼비처럼 엉금엉금 기어오르는데도 심장 박동은 한계치를 넘나들고 등줄기로는 땀이 도랑물처럼 흘렀다. 역시 지름길에는 영장류를 골탕먹이려는 함정이 숨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돌아가는 길에는 돌아갈 이유가 있고, 그것이 정도일 듯도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숨을 등으로 몰아쉬며 등성이에 오르니 오른편 꼭대기에 정자가 보였다. 다행히 경사는 완만했다. 제법 직립보행의 체통을 차려 정자에 올랐으나 거기는 비로봉, 형제봉까지는 이제 겨우 반을 왔을 뿐이었다. 잔뜩 찌푸렸던 하늘에서는 기어이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우장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약속을 일방적으로 깰 수도 없는 노릇. 말뚝에 걸린 ‘형제봉’ 화살표를 따라 또 걷는다. 그런데 관성의 법칙이 거꾸로 작용하고 있었다. 내리막길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힘이 안 들어 좋았다. 그러나 그것이 또 유혹이었다. 봉峰에 오르는 길이 내리막일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머지않아 내려간 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올라가야 할 것이 분명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내리막은 이제 내리막이 아니었다. 유혹인 줄 알면서도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이라니!

예단은 적중했다. 토끼재에 버금갈 오르막을 기어오르며 허선생을 원망했다. 그래도 허선생 모시고 가서 거품 속에 코를 박고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려면 어서 가야 한다.

형제봉 정수리에는 너럭바위가 있었는데 바위 위에 허선생은 안 보이고 등산복 차림의 청년 둘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고 있었다. 내가 먼저 왔나 싶어 안도하며 사위를 조망하고 있을 때 낯익은 소리가 들렸다.

“강선생!”

허선생이 형제봉 신령님처럼 솔밭 사이로 그 훤칠한 위용을 드러냈다. 벌써 와서 내 거동을 감상하고 있었으리라. 이산가족으로 상봉한 형제처럼 형제봉에 나란히 섰다. 그러나 우리가 정수리에 선 이상 형제봉은 이제 산이 아니라 인생 역정의 한 지점일 뿐이었다.

산은 멀리서 바라볼 때만 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