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이 따뜻한 나라

                                                                                                  신용일

 주름진 내자內子의 눈가에 꽃물이 스민다. 마음이 여린 수수한 아낙, 꼬옥 잡은 거친 손등이 따스하다. 부부로 인연한 지 어언 서른네 해, 알콩달콩 갑회甲回를 맞는 감회가 어찌 없으랴. 이따금 뒤돌아보면 굽이굽이 애틋한 사연들이 강물로 흐른다.

아이들이 환한 미소를 담아 준비한 해외여행권, 불감청不敢請이나 고소원固所願이라 했던가. 소풍날을 기다리는 아이가 되어 잔잔한 설레임에 밤잠을 설쳤다. 그도 그럴 것이 한겨울에 떠나는 여름 나라라 반바지에 반소매 수영복에 선글라스까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대한大寒의 기세가 맹위를 떨치던 임오壬午년 정월 십팔일, 한 쌍의 철새가 되어 남녘 하늘을 날았다. 어디쯤 가는가. 한밤을 꼬박 날아 이른 아침 호주의 시드니에 닿았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내려 다시 버스로 몇 시간, 로토루아라는 호수에 이르러 날이 저문다.

경상도 사투리가 구수한 한국 식당에 둘러앉은 일행 열여섯, 나와 같은 연배가 세 부부, 강원도 원주에서 왔다는 초등학교 여교사가 두 분, 자녀들을 동반한 두 가족에 대학생이 한 명이다. 소주잔을 기울여 정을 나누고 파김치가 되어 여장을 풀었다.

한 당이 모자라 구백구십구 당이 되었다는 나라, 우리보다 더 넓은 국토에 인구 겨우 삼백오십 여 만이라는 말이 생경生硬하다. 푸르른 초원에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 떼가 끝간 데를 모르는 목축의 낙원, 비바람을 막아주는 우사牛舍 하나 없이도 저절로 자란다는 안내자의 장광설이 기이할 정도다.

소와 양의 무리가 사람의 스무 배가 넘는다는 동화 같은 세상, 누가 주인인지 분간이 쉽지 않으나 천당에서 한 당이 모자란다는 말이 허사는 아닌가 보다. 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고 그 흔한 텔레비전 하나 만들지 못하면서도 선진국을 자랑하는 별난 동네, 잠 못 이루는 이국의 밤이 깊어만 간다.

레드우드라는 거목의 숲을 우러르다가, 새와 물고기와 짐승이 어우러진 파라다이스의 정경情景에 취하다가, 사슴을 벗하고 양 떼와 어울려 아이가 된다. 가마솥에 팥죽 끓듯 부글거리는 진흙 열탕, 뜨거운 유황천이 용솟음치는 간헐천, 오색의 인종이 반나半裸로 어우러진 노천 온천, 원주민 마오리족들이 부르는 아리랑, 희열과 감동에 길다는 여름 해가 반나절이다.

고향을 떠나야 고향이 보이고 조국을 떠나야 조국을 안다고 했던가. 내 조국 내 동포가 새롭게 다가온다. 좁은 땅에서 아등바등 비벼 살던 살붙이들이 지천으로 걸린다. 이 어인 일인가. 서울 한 구석을 옮겨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달라진 조국, 넘치는 힘이 남극의 섬나라까지 넘실거린다.

“조국은 우리의 친정입니다. 친정이 반듯해야 시집살이도 가볍듯, 조국이 든든해야 우리가 대접을 받습니다.”

양모羊毛 제품 가게를 운영하는 한 교포의 푸념 같은 이 말이 명치 끝에 걸린다.

조국은 나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숨을 쉬고 살면서도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 듯, 조국 안에서 조국을 알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라 없는 백성의 설움,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길이 없다.

이리 밀리고 저리 쫓기며 죽지 못해 살아온 러시아 연해주 우리 동포들의 그 피어린 애환을, 안에 있는 우리들이 짐작이나 하겠는가. 외적의 종이 되어 성姓까지 빼앗기고 남부여대男負女戴, 북간도를 떠돌던 그 날이 먼 얘기가 아니다.

일본인들은 어디를 가나 대접(?)을 받는다. 그만큼 그들의 배경이 든든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십 여 년 전 구라파 여행길에 느꼈던 일이다. 가는 곳마다 일본어 안내문이 준비되어 있고, 이름난 쇼핑센터는 으레 일본인 안내원이 웃음으로 맞는다. 인솔자의 깃발 아래 병아리 떼처럼 몰려다니는 그 기세에 주눅이 들기도 했다.

우리는 기껏해야 경주나 설악산이 수학여행의 단골 코스인데, 그들은 이미 로마나 파리에 몰려다니고 있었다. 지금이라고 다를 바 있으리요만, 이제는 우리도 그 한 축을 담당할 정도가 된 듯도 하다. 중국은 물론이요 동남아시아나 대양주는 우리의 발걸음이 단연 돋보인다는 말에 한 가락 자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간혹 우리말 간판이 보일 때마다 흐뭇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다음 날,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 남섬의 크리이스트처치로 옮겼다. 인구 사십 여 만의 조용한 도시, 영국 런던의 거리를 연상케 한다. 남녘이 더 추운 지방, 추위에 강하다는 양 떼가 지평선이다. 밀밭과 초원이 그림처럼 교차되기 대여섯 시간, 해발 3,764미터 마운틴 쿡 준봉의 만년설이 잠겨 있는 부카키 호수에서 갈증을 달랬다.

햇빛 따라 달라진다는 빙하의 물색이 가경佳景이다. 회색 언덕에 비취빛 하늘이 장막을 두르고 옥색 물 속에 하얀 설산이 신비롭다. 일어나기 싫다는 내자와 나란히 카메라에 담고, 호반의 고을 퀸스타운에 이르렀다.

야생 오리가 손끝에 놀고 송어와 뱀장어가 발끝에 걸린다. 땅의 흐름 따라 굽이굽이 길이 나고 다리나 교차로는 기브 웨이, 즉 양보하는 길이라며 느긋하게 기다리는 기사의 굼뜬 미소가 천진스럽다.

남극의 늦여름, 생소한 꽃들이 풀섶에 널렸다. 피요르랜드 국립공원의 절경絶景을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곁눈질하다가, 밀포드사운드 유람선에 올랐다. 설산雪山이 가로막아 사람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던 별유천지別有天地를, 5도 각도의 터널을 뚫어 그 비경의 문을 열어놓았다.

휘감아도는 검푸른 바다, 하늘에 닿은 절벽에 만년설이 녹아내려 크고 작은 폭포들이 비단 폭이다. 은은한 물안개를 헤집고 쏟아져내리는 하얀 햇살에 말문이 막힌다.

천인千j의 비단 폭에 한 가락 마음을 걸어놓고 실어증을 앓는다. 기가 막힌다. 할 말이 없다. 벙어리 냉가슴인들 이에 더하랴.

 

 

 

신용일

<한국수필> 신인상으로 등단(92년).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 청파문학 편집장.

수필집 "눈이 아프면 하늘을 보고", "진실과 허위가 미역감은 이야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