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가족

                                                                                                     장기정

 정말이지, 애초에 난 그들 가족을 내 집에 받아들일 의사가 추호도 없었다. 까다로울 정도로 청결한 걸 좋아하는 남편에 맞추어 살다보니 어느 새 나도 그의 절반 정도는 까다로워져서, 나는 무엇보다도 그 가족 때문에 생길 ‘불결’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다. 집안의 청결을 유지해야 하는 건 어차피 내 몫이니까…….

13층 아파트의 12층에 위치한 우리 집은 베란다 구조가 조금 특이하다. 볕 잘 드는 마당이 없는 아파트에 살지만 된장이나 고추장을 절기에 맞춰 숙성시키기 위해서 햇볕이 필요했고, 또 때때로 수건이나 행주 같은 삶아 낸 빨래를 깨끗하게 건조시키기 위해서도 햇볕이 필요했다. 궁여지책으로 난 베란다 시공을 할 때 반 정도만 페어그라스로 열려 있던 공간을 막고, 반은 원래의 기본 형태대로 페어그라스를 씌우지 않고 그냥 두었던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고추장 항아리를 여닫고 때로 눈부시게 삶아 낸 빨래들을 건조대에 널면서 난 자연 채광을 즐길 수 있는 그 손바닥만한 공간을 사랑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다정해 보이는 한 쌍의 비둘기가 그 곳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베란다를 꽉꽉 막아버려서 잠시나마 쉴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았나 보다. 그러나 그들이 떨어뜨리는 오물이 싫어서 난 당연히 쫓아버리곤 했다. 그런데 한동안 보이지 않던 비둘기 부부가 10여 일 전 어느 날엔 유난히 자주 날아들었다. 쫓아도 잠시뿐 나가 보면 또 와서 앉아 있곤 하기를 여러 차례…….

저녁 무렵이 되어 장 항아리를 닫으러 나갔던 나는 이번에는 쫓아도 미동도 하지 않는 비둘기를 이상하게 여겨 그 앞으로 다가갔다가 버려진 작은 화분의 흙을 의지해 낳아 놓은 비둘기 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알을 보자 왠지 난 더 이상 그 놈들을 쫓을 용기가 없어졌다. 햇빛도 들지 않고, 하늘도 제대로 볼 수 없고, 둥지 틀 곳도 여의치 않은 삭막한 아파트촌으로 어쩌다가 날아들어서 오죽했으면 내 집을 최후의 정착지로 정하고 알을 낳아 놓았을까? 게다가 비록 미끌이긴 해도 알을 품고 있는 어미 비둘기를 쫓는다는 건 인정상 불가능했다. 알에서 어린 새끼가 나오는 경외스러운 자연의 신비를 적극적으로 방해할 수 없어서 난 당분간 주거만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항상 의무에 비해 능력이 부치는 내 형편으론 그나마 큰 결심이었고 양보였다.

주말이 되어 큰아이가 왔을 때 나는 이러저러한 설명을 하며 비둘기를   쫓지 말라고 말했다. 그 아인 비둘기 오물을 싫어하는 내 성미를 잘 아는 데다가 하필이면 비둘기 보금자리인 그 화분은 바로 그의 방 창문 앞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듣고 난 큰아이는 딱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내게 먹이라도 좀 주라고 말했다. 잿빛 아파트의 밀림 속에서 둥지도 없이 화분 위에 앉아 알을 품고 있는 게 여간 딱해 보이지 않았나 보다.

정말, 난 결단코 주거 이상은 허용하지 않을 결심이었는데 그 얘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흔들렸다. 어느 새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강원도 산간 지방엔 얼음이 언다는 기상 예보가 종종 있었다. 난 비바람을 막아 줄 한 뼘의 둥지도 없이 한데서 화분 위에 달랑 올라앉아 알을 품고 있는 가녀린 생명의 안위 때문에 새벽잠을 설치곤 했다. 하는 수 없이 생수병 상자를 가져다가 앞을 크게 뚫어 출입구를 만들어서 가만히 비둘기 화분 위에 씌워주었다. 그리곤 모이 그릇과 물통까지 준비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무단 주거 침입을 한 비둘기 가족과 더불어 한 지붕 아래서 두 살림을 하게 되었고, 크고 작은 내 몫의 일을 챙기기도 바쁜 나는 졸지에 어미 비둘기의 산 바라지까지 떠맡는 신세가 되었다. 상자로 엉성하게 집이라고 만들어 주긴 했으나 그들이 거주할 실제 공간은 작은 화분이기 때문에 앉을 자리조차 마땅찮은 숫비둘기는 어딘가로 날아갔다가는 둥지 근처에 와서 앉아 있곤 했다. 아마도 곧 알을 깨고 나올 제 어린것들과 아내를 위해 먹이를 구하러 다니는 모양이었다. 그러던 숫비둘기가 얼마 후부터 나한테다 제 가족을 몽땅 떠다 맡긴 채, 차츰 나태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아예 늘어붙어서 암놈 몫의 모이를 축내기 시작했다. 난 결국 그들 가족 전부를 책임지게 된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새끼들이 나올 때까지만 봐줄 거라는 내 말에, 새끼가 나오고 나면 더 눌러앉을 거라며 큰아이가 웃는다. 그렇지만 난 당분간만이라고 다시금 굳은 결심을 한다. 그리곤 베란다에 수돗물을 쫙쫙 끼얹어가며 대청소를 할 생각에 벌써부터 속이 개운해진다.

하지만 야박하게 이 가족에게 방을 비워달라는 말을 할 때가 언제쯤일지 한편으론 슬슬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다.

 

 

 

장기정

<책과 인생>으로 등단.

전 추계예술대, 서강대 평생교육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