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

                                                                                         윤삼만

 양지 바른 산기슭에 초가가 옹기종기 모였다. 봄에는 복사꽃이 뒷산을 붉게 물들이고, 가을엔 금물결이 앞 들을 누볐다. 느티나무가 마을 어귀를 지킨다. 밑둥치가 삭은 그 느티나무는 속살을 드러냈다. 큰 가지에서 뻗은 여러 갈래의 곁가지가 힘차다.

큰 감나무 옆에 있는 남향 집이 내가 어릴 적 살던 초가다. 이엉을 덮은 바깥 담벽이 빙 둘러섰고 텃밭과 마당 사이엔 싸릿대 울타리가 있다. 싸리울 구멍으론 개, 닭들이 들락거렸다. 손바닥만한 마당에서 동무들과 자치기도 하고 팽이도 쳤다. 앵두꽃이 필 땐 텃밭에 상추랑 쑥갓도 심었고, 한여름에는 장독대를 따라 봉숭아, 채송아, 접시꽃도 피었다. 감나무 잎에 기름기가 마를 때 빨간 고추, 알이 찬 강냉이도 땄다. 가지 끝에 조랑조랑 매달린 홍시가 내 손을 끌기도 했다.

초가삼간에도 장독간이 있었다. 바닥엔 얇은 돌을 깔고 독단지를 놓았다. 맨 앞 줄엔 키 작은 단지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그 뒤엔 입이 큰 작은 항아리, 옆엔 자배기도 있고 물동이도 있다. 맨 뒷 줄 한복판에 배가 부른 장독이 의젓이 자리했다. 왼 새끼에 숯, 고추를 끼운 금줄을 훈장처럼 둘렀다. 내 입대 통지서를 받은 어머니께서 새벽마다 정안수를 떠놓고 두 손 들어 절을 하시던 곳도 장독이다. 그 좌우론 늘씬한 중두리, 키가 작은 바탱이가 서 있다. 함박눈이 울타리에 쌓였다. 어른, 아이 눈사람이 쌩글쌩글 웃는다. 흰 모자를 쓴 독단지가 올망졸망 마치 우리 집 식구 같다.

장독간이 점점 넓어졌다. 옹기는 크기와 철에 따라 제각기 맡은 일을 한다. 장독엔 간장이 익고 된장이 맛이 든다. 무 김치, 배추 김치는 중두리에 있다. 바탱이엔 참게장도 있고 멸치 젓갈도 있다. 장아찌나 고추장은 주둥이가 작은 항아리에 있다. 간식용인 왕감, 고구마도 있다. 어머니의 독단지들은 반들반들 하였다.

옹기가 다 장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의젓하고 가슴이 너른 독이 장독이 된다. 아내는 정월 초순, 말(馬)날을 가려잡아 장을 담는다. 짚불에 장독을 엎어 연기로 소독한다. 양동이에 소금을 푼다. 계란을 띄워본다. 나는 어제 씻어 놓은 메주를 날랐다. 아내가 장독에 메주를 차곡차곡 넣는다. 장독 위에 체를 얹고 소금물을 붓는다. 메주가 뜬다. 내가 엉성하게 얽은 대발로 메주를 누르고, 숯, 깨, 고추를 약간 넣는다. 그리고는 주먹만한 소금 주머니를 발에 매단다.

간장이 싱거워 아내가 혼쭐난 적이 있다. 간장을 달였으나 제 맛을 내지 못했다. 장은 담그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정성을 들인다. 아내는 사흘이 멀다 하고 장독 두껑을 열어본다. 얼음이 얼면 따뜻한 물로 장독을 닦는다. 햇볕이 두터운 날엔 뚜겅을 열어 볕을 쬔다. 비가 오면 장독 전에 한지를 덮어 고무줄로 야무지게 매곤 소래를 덮는다. 황사바람엔 보자기로 씌운다. 이런 잔손질로 맛을 들인다.

메주와 소금물은 사랑을 한다. 뜨거운 가슴으로 다섯 달 동안이나 밀월을 즐긴다. 불타는 사랑이 미소처럼 녹는다. 5월 그믐날에 간장을 떴다. 노르무레하게 맑다. 아내는 새끼손가락으로 맛을 보곤 얼굴이 환해졌다. 메주는 치대어 된장을 만든다. 된장 색깔이 노란 은행잎 같다. 장독엔 간장을, 다른 독에 된장을 넣고는 깨끗이 닦는다. 하루 해가 설핏 기울었다.

중두리, 바탱이, 단지는 자주 옮겨진다. 장독은 항상 제자리에 서 있다. 다리가 아파도 참고 견딘다. 발바닥이 굳어져 비틀어지고 굵은 심줄이 튀어나왔다. 마치 촉석루 기둥뿌리같이. 한 자리에서 한결같이 세월을 지키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퍽, 쨍그랑’ 옆집에서 독단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담부랑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장독이 쩍 벌어졌다. ‘좔좔좔’ 간장이 쏟아진다. 부부가 쌈을 하다가 남편이 홧김에 던진 놋 재떨이가 장독을 때린 모양이다. “저런, 이제 살림은 다 살았다.” 이웃 아줌마가 개탄했다. 입이 무거운 우리 집 장독은 넌지시 바라만 본다.

저녁을 먹는다. 집안식구가 한자리에 모였다. 사위도 왔고 손자도 왔다. 오봇한 시간이다. 솥에 쌀을 안치는 딸은 물을 계량컵으로 되어 붓는다. “어머니 장이 참 다네예.”, “그래, 올해도 장이 잘 익어 달다.” 물기를 꼭 짜서 나물을 무치는 며느리와 아내가 대화를 하며 찬 만들기에 바쁘다. 콩나물, 찐 된장, 솎음무를 살큼 데친 선김치, 쌀, 들깨가루를 넣은 시래기국 등이 상에 그득하다. 게눈 감추듯 밥이 없어진다.

“딸, 며느리 다해도 어머니 손맛을 당해 낼 수 없네예.” 시래기국을 먹던 며느리가 큰딸의 귀에 소곤거렸다. 아내가 씩 웃는다. “음식 맛은 뭐니뭐니 해도 장 맛이니라.”, “아무래도 우리는 어머님이 담근 간장처럼 안 되예…….”

“이것 봐요.” 아내가 부른다. 간장독에 하얀 분粉꽃이 피었다. ‘왜 이럴까?’ 나는 손가락으로 맛을 보았다. 소금이었다. 독이 간장을 뿜어낸 것이다. 속이 삭은 아내를 보았다. 겉보기는 멀쩡해도 장독같이 되었다.

장독은 장독간의 지킴이다. 한평생을 장을 안고 살았다. 소금과 메주를 익혀 간장을 우리고 된장을 만들어 향기와 맛을 일구었다. 해마다 자식들에게 나누어준다. 장을 떠낸 자리엔 즐거움이 고인다. 그러는 사이에 장독은 시나브로 삭았다.

서산 노을이 장독에 그늘진다.

 

 

 

윤삼만

전 사천초등학교 교장. 경남 서예대전 초대작가.

<계간 수필>로 등단(20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