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함에 대하여

                                                                                                     이난호

 약속시간에 맞춰 병원에 들어섰을 때 늙은 의사는 푸들의 털을 깎고 있었다. 눈웃음을 띄고 꼭 아기를 어르듯이 개를 달래가며 요리조리 기계를 댔다 뗐다 하는 게 더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그러나 나는 마치 체벌받을 준비를 갖춘 아이처럼 굳은 목소리로 인사는 했지만 뭐든 꼬투리를 잡아 되돌아설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배낭을 내려 입구를 조금 벌리고 안을 들여다보는데 “고양이네!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푸들 주인이 물었다.

“수술해 줄까 하고…….”

나는 푸들 주인을 쳐다보면서 조그만 소리로 대답했다. 그가 수술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흘려주기를, 그걸 핑계잡고 슬그머니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기를 은근히 기대했지만, 그러나 푸들 주인은 “아, 불임 수술? 해주면 서로 편해요” 하고 푸들에게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푸들이 떠나자 의사는 고양이 ‘아나’를 저울에 달았다. 체중을 확인한 의사는 주사기에 약을 담아들고 아나의 궁둥이를 헤치더니 재빨리 약솜을 칠하고 주사기를 찔렀다. 아나는 내 품속으로 후비듯이 파고들었다. 5분쯤 지나자 아나는 사지를 빠르게 바둥거렸다.

“죽는 게 아닐까요?” 내가 말하자, 의사는 미소를 띈 채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나를 꽉 끌어안고 그의 심장에 얼굴을 묻었다. ‘미안해’라고 속삭였다.

20분쯤 후에 한 번 더 주사를 놓았다. 아나는 차츰 사지에서 힘을 풀고 늘어졌다. 빳빳이 세우고 거세게 적의를 드러내던 발톱들도 다소곳이 오그라져 무력해 보였다. 10분쯤 더 지나자 아나는 동공을 반쯤 열어 둔 채 푸르죽죽한 혀를 쭉 빼물었다.

의사는 아나를 수술대에 뉘었다. 닭의 모이그릇 모양의 생철 수술대는 딱 고양이 하나를 담을 만한 크기였다. 의사는 스탠드라이트를 바짝 들이대고 푸들의 털을 깎던 기계를 들고 와 아나의 배를 밀었다. 가로 15센티미터 폭 10센티미터쯤의 분홍색 속살이 드러났다. 여린 살갗이 기계에 물릴까봐 조마조마하던 나는 고맙다고 치하라도 하고 싶었다. 하긴 내가 치하를 했더라도 의사는 더도 덜도 표정의 변화가 없을 것이었다.

그는 돕는 이도 없이 당신 혼자 동물의 털을 깎고 치우고, 전화를 받고 틈틈이 애완용품을 팔고 신문 정리를 하느라 했지만, 좁다란 병원 실내는 지저분했다. 안쪽으로 칸막이가 된 수술실이라 할 어둑한 공간에는 약병이 몇 개 놓여진 선반과 예의 수술대와 갈색 소독액이 묻은 걸레와 장갑과 앞치마가 줄줄이 걸려 있는 게 흡사 칠칠치 못한 아낙의 부엌 꼴이었다. 그런데 그의 부드러운 웃음과 따뜻한 목소리와 별로 잽싸 보이지 않는 손놀림이 그 지저분한 주위와 어울려 오히려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의사는 먼저 아나의 복부에 갈색 소독액을 바르고 그 위에 다시 뽀얀 액체를 덧칠했다. 약물이 칠해진 곳은 흡사 광물질의 표면처럼 섬뜩하게 번득였다. 이윽고 가운데에 주먹만한 구멍이 뚫린 불결해 보이는 헝겊 쪽이 아나의 배에 덮였다. 그때 의사는 아나의 눈을 조금 뒤집어보고, “아주 갔구만” 하고 다소 짓궂게 웃었다.

의사는 아나의 하복부 중간을 칼로 5센티미터쯤 세로로 쨌다. 희붓한 비계층이 나왔다. 그는 이어서 비계층 아래로 드러난 핏빛 살층을 절개했다. 절개되어 벌어진 속으로 누르께한 주머니 같은 게 보였다. 그 주머니 주변에는 관형의 줄들이 몇 가닥 이리저리 이어져 있었는데 의사는 그 줄들 밑으로 검지를 넣고 잠깐 휘저었다. 이윽고 그의 검지가 새빨갛고 좀 도톰한 줄 가닥 하나를 찾아 걸고 나왔다. 그는 그 핏줄의 양 끝을 연한 갈색실로 묶었다. 그 실은 살 속에서 녹아버리는 특수사라고 작은 소리로 설명해 주면서 그는 묶임의 중간을 가르고 뒤적였다. 그리고 아주 조그만 살점, 검지의 한 마디만큼도 못 될 크기의 살점을 들어보였다. 적출된 아나의 난소였다. 주기적으로 찾아와 제어 불능의 그 원초적인 힘으로 아나를 죽살이치게 했던 그의 여성이었다.

나는 또 속으로 ‘미안해’라고 했다. 더 이상 ‘널 위해서야’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의사는 처음과 반대의 순서로 아나의 배를 정리해 갔다. 흩어진 창자들을 제자리에 놓고 자른 곳을 아물려 꿰맸다. 창자들이 감춰졌다. 다시 살 층을 여미고 굽은 바늘로 떠서 매듭을 지어 끊었다. 비계층도 그렇게 바느질했다. 두 번 다 속에서 녹아 없어진다는 연한 갈색실을 썼다. 그리고 맨 마지막 살가죽은 검은실로 우선 듬성듬성 꿰매고 다시 그 사이 사이를 건너뛰면서 한 뜸에 한 번씩 매듭을 지어 끊었다. 이윽고 절개 부분이 틈 없이 맞붙고 가지런히 검은 매듭이 남겨졌다.

아나는 여전히 보일 듯 말 듯 숨통만 오르내릴 뿐 꼼짝 안 했다.

“살아나겠죠?” 나는 기어이 묻고 말았다. 이번에도 의사는 푸들이나 아나에게 보내던 그 부드러운 웃음을 띄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30분쯤 후, “자, 마지막이다” 하고 한 번 더 주사를 놓았다. 그래도 아나의 쭉 빼 문 혀는 늘어진 채였고, 반쯤 벌려 뜬 눈동자에는 빛이 들지 않았다. 나는 그런 아나를 거의 구기듯이 배낭에 담았다.

집에 돌아온 나는 아나의 앙다물린 이빨 사이에 손가락을 넣고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절대로 이 따위 짓을 안 한다! 절대로 애완동물을 기르지 않는다! 아니, 어떤 것에도 사랑을 주지 않고 매이지 않고 눈 멀지 않고 밍밍하게 살리라. 아, 돌처럼 무디어지리라.’

얼마나 지났을까. 이윽고 힘살이 느껴지는 아나의 이빨이 내 손가락을 자그시 물었다. 나는 전류에 닿은 듯 소리쳤다. “살아났구나!” 핑 눈물이 돌았다.

 

아나는 여전히 부드럽게 안겨오기 시작했다. 신뢰하듯이 무구하게, 어쩌면 무력하게. 나는 이제 그를 안으면 문득 가슴 밑 어딘가에 칼끝을 느낀다. 아나의 여성을 자르던 그 칼끝.

 

 

 

이난호

<계간 수필>로 등단(2001년). 계수회 회원.

저서 『붉은 양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