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혼의 상징 光化門

                                                                                             허근욱

 아! 광화문!

젊은 시절, 광화문을 바라볼 때면 나는 하나의 신념을 마음 속에 다지곤 했다.

‘역사는 진리를 밝혀준다.’

북악산 기슭 삼청동에서 태어나 자라난 나는 지금도 광화문 거리를 거닐 때면 고향의 푸근한 가슴 속에 안긴 듯 마음이 따스해진다. 비록 부모님과 형제들은 서울 떠나 평양에 살고 있지만……. 어떤 때에는 광화문 거리와 북악산이 한 눈에 바라보이는 시청 앞 프라자 호텔 20층 커피숍으로 가서 혼자 커피를 마시며 북악산 아래 의연히 서 있는 광화문을 바라보곤 한다. 광화문을 둘러싼 주변의 건물과 풍경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많이 달라졌지만 광화문만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민족의 역사를 증언하듯 묵묵히 서 있다.

언제나 광화문 거리를 지나칠 때면 나는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한다. 약소민족의 슬픔과 한이 아직도 가슴에 맺혀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구한말 시대, 청나라, 러시아, 일본 등 열강의 각축 속에 벼랑으로 내몰리었던 우리 민족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침탈에 의해 1905년 11월 18일 새벽 2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치욕의 을사늑약乙巳勒約에 훔쳐 내온 국새國璽로 강제 조인을 당했다. 그리고는 경복궁 앞에 있는 옛 외부 청사에 통감부를 설치했다.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는 사실상의 한국의 주권자로 막강한 권한을 장악한 식민지 총독이었다.

이어 1910년 8월 22일, 그 망국亡國의 한·일합방조약이 조인되어 일제는 광화문 뒤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짓고 36년간 우리 나라를 침탈 통치했다. 그리고 제2차대전이 끝나면서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된 우리 민족은 열강에 의해 또다시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총독부 자리엔 미 군정청이 들어서게 된다.

일제 시대부터 삼청동 언덕에 있는 이층 양옥집 베란다에서 조선총독부 건물을 바라보며 민족의식을 굳혀왔던 나는 8·15 해방이 되자 미 군정청이 된 조선총독부 건물을 바라보며 남북 분단의 비극을 통탄했다.

이제 그 격동적인 비극의 시대 20세기가 지나고 21세기가 다가오면서 세월의 잔흔 속에 만년을 맞이하고 보니 아직도 이루지 못한 우리 민족의 완전 자주독립인 통일에 대한 한을 세상 한 켠에 서서 마음을 가다듬고 있을 뿐이다.

지난 6월 10일 그리고 6월 18일, 나는 세종문화회관 앞을 지나다가 붉은 티셔츠를 판매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고 티셔츠를 하나 샀다. 내 자신이 20대 젊은이였다면 틀림없이 나도 젊은이들 틈에 끼어 ‘대~한민국!’을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TV 앞에 앉아서 서울 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 거리를 가득 메운 젊은이들의 열정과 함성 그리고 힘차게 출렁이는 붉은 물결 위에 솟구치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가슴이 메어 눈물지었다.

‘아! 우리 민족의 저력은 살아 있다!’

1919년 3월 1일. 전국 방방곡곡에서 횃불처럼 일어났던 3·1 독립운동의 함성, 그리고 1926년 6월 10일에 일어났던 6·10 만세운동의 함성, 그리고 8·15 해방 후 이승만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젊은이들이 광화문 통에서부터 경무대를 향해 밀려가며 피흘리고 쓰러지면서 외치던 민주화의 함성, 그리고 1978년 6월 26일 박정희 유신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젊은이들의 광화문 연합 시위, 그리고 1987년 6월 10일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전개하여 ‘6·29 선언’을 이끌어낸 젊은이들의 함성…….

아아 광화문! 구한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주권 회복과 민주주의를 외치며 항거하던 그 자리 광화문 거리에서 2002년 6월 10일과 6월 18일에 우리 민족의 긍지를 불사르는 ‘월드컵의 신화’가 창출된 것이다.

아, 장하고 기개 넘치는 우리 나라 축구대표팀 젊은이들에게 내 영혼의 뜨거운 갈채를 폭포수처럼 뿌려주고 싶다!

 

그 동안 눈살 찌푸리게 하는 정쟁政爭으로 온통 사회적인 균열의 바람을 일으켰던 우리 나라의 심장부 광화문 거리에서 노도처럼 출렁이던 붉은 물결 위의 태극기 물살은 정쟁으로 갈라진 균열을 봉합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단순히 4강으로 승리를 거두는 데 그치지 말고 월드컵 신화를 계기로 하여 우리 민족의 화합을 창출하여 우리 정치의 변화와 개혁을 완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나는 오랜만에 광화문 앞에서 경복궁 돌담길을 걸으며 역사의 잔흔이 새겨진 광화문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내가 태어나 자라난 삼청동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 지금도 옛날 그대로 남아 있는 한옥집과 양옥집 대문 앞에 오랫동안 서서 광화문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숱한 역사의 격동 속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우리 나라 심장부에 우뚝 서 있는 광화문은 바로 우리 민족혼의 상징인 것이다. 우리 민족은 살아 있다! 천지를 진동하는 험난한 고통이 우리의 육신을 갈기갈기 찢는다 해도 우리 민족의 기개와 민족혼은 살아 있다.

‘역사는 진리를 밝혀주는 법이다.’

나는 마음 속으로 크게 외치며 하염없이 광화문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영원의 세계에서 잠들고 계신 아버님, 어머님의 영전에 우리 민족의 신화인 월드컵 승리의 기쁨과 긍지를 전하면서…….

 

 

 

허근욱

소설가. 대한민국 문학상 수상.

작품으로 『내가 설 땅은 어디냐』, 『흰 벽 검은 벽』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