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막에서 사과나무 밭으로

                                                                                                          유혜자

 ‘누이동생은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주의 깊게 딸의 두 손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그레고르는 바이올린 소리에 마음이 끌려서 자기도 모르게 약간 앞으로 나아가서 머리를 거실 속에 내밀고 있었다.’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대목이다. 세일즈맨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보니 자신이 한 마리의 징그러운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부모와 여동생이 모두 그를 기피하고 자신도 누가 볼까봐 잠긴 방안에만 있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게 한 것이 바이올린 소리였다.

 

어느 해 여름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과수원에 어른들을 따라갔었다. 기대어놓은 사닥다리로 올라 원두막에 앉으니 사방이 탁 트여 시원했다. 바람에 실려오던 달콤한 내음이 가슴 설레게 했고, 그보다도 높은 원두막에 오른 것만으로도 뭔가 오랜 소망을 이뤄낸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복숭아의 껍질을 벗기려는데 까만 양복의 멋쟁이 신사가 찾아들었다. 첫눈에 예술가로 짐작되는 그의 손에는 바이올린 케이스가 들려 있었다. 어른들의 권유에 못 이겨 그가 잠깐 단 두 줄로 이뤄내던 현란한 소리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손님의 정체가 궁금했다. 며칠 후 노을이 물든 과수원 쪽에서 울려오는 멋있는 바이올린 음악을 단 한 번 들을 수가 있었다.

같은 음악도 듣는 형편에 따라 다르다. 기쁠 때 들으면 즐겁고 슬플 때 들으면 왠지 청승맞게 들리고, 더 나쁜 상황이면 아예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어렸을 때 과수원 쪽에서 울려나오던 그 바이올린 소리는 꿈과 환상이 담긴 경이로운 것이었다.

원래 바이올린은 사람의 목소리를 모델로 삼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 표현에 따라 호소력이 짙고 친근한 느낌으로 울린다. 음악사에서 전설적인 인물인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는 ‘어떤 프리마돈나가 부르는 오페라 아리아보다 더 감동적인 노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바이올린을 켜면 귀신들이 나와서 춤을 추었다고 할 만큼 그의 작품에는 환상의 세계가 그려져 있어 바이올린 음악의 새 경지를 개척해 놓았다. 그래서 당시 작곡가들이나 다른 악기를 다루던 음악가들도 파가니니에게서 자극받아 뛰어난 작곡을 하거나 훌륭한 연주자가 되려고 했다.

작은 악기 하나만으로 낭만과 감미로움은 물론 파도처럼 휘몰아치거나 비상과 좌절을 표현하는 연주회에서 그 동안 많은 희열을 맛보았으나 어렸을 때 과수원 쪽에서 울려오던 것처럼 경이롭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도 내가 즐겨 듣는 것은 바이올린 연주이다. 어깨에 난짝 얹어놓은 작은 몸통의 두 줄 위에 활을 내리긋고 절묘한 운지법을 구사하는 외형상의 긴장도 나는 즐긴다. 연주자들이 저마다 작곡가가 의도한 진실을 파악하여 격조 높고 향취 있는 연주를 하려는 노력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귀가 번쩍 뜨이는 짤막한 연주를 듣고 어렸을 때 과수원집에서 들려오던 경이로운 음악을 떠올렸다. 친구 집에서 FM 방송의 음악에 도취되어 대화는 건성건성 듣고 대답도 하는 둥 마는 둥하여 친구를 불쾌하게 했다. 그것은 긴 협주곡이나 소나타가 아닌 소품인데 파가니니의 기교를 닮았다는 알렉산더 마르코프(Alexander Markov, 1963~ )의 연주 ‘파가니니의 칸타빌레 D장조’였다. ‘노래하듯이’라는 칸타빌레의 여유 있고 유려한 선율이었다.

19세 때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알렉산더 마르코프는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다. “전설적인 파가니니는 항상 나를 연주자로서 분발시켜 줬다”고 한 그는 완벽한 테크닉의 소유자이면서 서정적인 연주로 명성이 높다. 이미 10여 년 전에 24개의 파가니니 카프리치오 CD 연주 음반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는 오늘날 정상 음악가들의 연주가 누가 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보편적인 해석을 하는 것에 반대한다. 강력하고 독특한 해석의 연주를 고집하며 현란함보다도 잔잔하고 깊은 감동을 주는 연주를 지향한다고 한다.

영혼이 담긴 바이올리니스트의 음악을 잠시 듣는 것으로 우리는 행복한 순간을 누릴 수 있다. 연주가들의 연습은 기교를 익히는 것도 있지만 새로운 깨달음을 위해서 끊임없이 구도하는 자세가 아닐까. 내부에 숨겨진 혼을 탐구하며 평범한 듯하면서도 비범하게, 생명감 있고 사랑이 있는 연주. 아무리 재능이 뛰어났다 해도 고뇌와 진통 끝에 자기만의 새로운 길을 찾는 이는 많지 않으리라.

감동적인 연주를 들으며 흐뭇한 감동의 실제적인 열매들이 저마다의 가슴에 맺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불꽃놀이처럼 먼저 피어난 불꽃이 다른 불꽃들을 터뜨리는 묘미가 우리 가슴에도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레고르가 처참한 절망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무거운 몸을 움직여 나오게 했던 바이올린 소리. 이것은 소설 속의 얘기만이 아닐 것이다. 아그논은 『추방자』에서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소리는 마치 자정에 사과나무 밭에서 잠이 깬 새들의 노랫소리 같았다’고 했다.

바이올린 같은 새로운 복음이 아쉬울 때마다 나는 알렉산더 마르코프의 바이올린 연주를 플레이어에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