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르는 바다

                                                                                                박장원

 완도 보길도에서 해남 땅끝마을로 가는 배.

깊은 석양은 물결에 부서지고 세찬 바람에 섬은 차츰 멀어져 간다. 떠나온 섬의 동백이 아롱거리고 배 밑에는 봄이 넘실거린다. ‘동호를 도라보고 서호로 가쟈스라’던 어부의 노래가 가물거린다. 막차에는 수많은 사연이 실린다지만, 한산한 배가 뿜어내는 거친 숨소리와 바람만이 귓전을 때린다. 며칠간 혼자만의 남도 여로. 이제 목포를 거쳐 진도로 갈 터이지만, 몸이 지치니 공연히 외롭다. 바다는 한없이 넓어 보인다. 다정해 보이는 젊은 모녀가 머리채를 감싸 안으며 뱃전에 서 있는데, 눈길만 주고 말은 못 붙인다.

 

이름 모르는 바다에는 인생이 모여 있다.

땅이 뭍으로 뭍이 땅으로 변하고 부딪쳐왔지만, 옥신각신 삶의 바다에는 영원한 설렘과 회한이 숨가쁜 공방을 벌인다. 삶은 흐름이다. 바다는 강을 거부하지 않듯이, 우리는 흘러흘러 옹기종기 바다에서 만난다.

무더운 여름.

버스를 타고 가다가 서울역 앞에서 이유도 모르고 꼼짝없이 서 있는데, 별안간 옆 도로로 경찰 사이드카 몇 대가 벼락처럼 내지르고, 곧 수십 대의 까만 세단들이 점멸등을 번쩍거리며 쏜살같이 빠져나간다. 순식간의 일이지만 장관이었다. 마치 검푸른 파도가 순식간에 갈라지는 성스러운 역사 같다. 격류 같은 행차가 사라지고서야 내가 탄 버스도 옴실거리기 시작한다.

도리 없이 우리는 모이고 그리고 부딪친다.

나라고 하는 하나의 타인은 이리 쏠리고 저리 밀리고, 인파를 헤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또 하루를 보낸다. 잔잔한 물결에서는 얼결에 모든 것이 손바닥처럼 보이다가, 파고에 좌절하여 떨어지기도 하지만, 세상의 바다를 건너는 그대의 배를 비울 수만 있다면 아무도 맞서지 않을 것이라는 상념이 우주의 혼을 실은 빈 배처럼 어른거린다.

 

집을 나서기 전 늘 정리정돈을 꼼꼼히 한다.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해야 되는 줄 알았지만, 이제는 외출할 때 말끔한 내 방을 보면서 우울한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나는 나를 알지도 못하면서 공연히 남만을 알려고 하였나. 바다야 마르면 밑이나 볼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죽어도 모른다던 민요 한 자락. 가족 외에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다고 새삼 다짐한다.

이름 모르는 바다에서 오늘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모르면야 그냥 지나치겠지만, 모진 세파를 만나면 비로소 예사로운 물결이 아님을 깨닫고, 알 수 없는 그 곳에서 처음과 끝을 가늠치 못하다가 끝내 사라져간다. 그래 거대한 침묵은 항상 우리에게 그것을 암시하고, 땅 한복판에다 그렇게 커다란 공간을 만들었나 보다.

 

 

박장원

<수필문학>과 <계간 수필>로 등단(2001년). 수필평론가.

수필집 『양수리』, 수필평론집 『코끼리 이야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