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료작-

 

흔적

                                                                                              이경수

 유백색 다기茶器 한 벌을 갖고 있다. 실 금마다 차茶색이 물들어 언뜻 갈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물든 차색 농도로 오랜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다기는 다도茶道를 즐기는 심우 것이다.

 

서예를 함께 하던 심우는 작업실 한쪽에 다실을 꾸몄다. 그 곳에선 으레 차와 담소의 시간을 가졌다. 귀대접에서 탕수가 식을 동안 그리고 다관에서 차가 우러날 동안, 또 이런 식으로 두 번째, 세 번째 차를 우려 마시는 동안 나누는 담소도 차 맛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커피만 마시던 내가 녹차 맛을 익혀갈 즈음 심우는 하던 일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갔다. 한동안 허전했다. 함께 한 시간이 꽤 되었던가 보다.

삶이란 만나고 헤어지는 것의 연속. 그래도 헤어진다는 것이 가슴에 구멍을 낸다.

 

심우가 시골로 내려갈 때 “보고싶어 질 텐데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 동안 보냈던 좋은 시간을 차 우려내듯 우려내면 되지요.”

심우는 그렇게 말하며 다기 한 벌을 남겼다. 그 유백색 다기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수미차’라는 것이 있으니, 그 차를 꼭 마셔 보라고 했다. 수미차가 어떤 차냐고 물으니, 녹차를 마시다 보면 언젠가 알게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5년이 지나도록 수미차가 어떤 차인지 알 수 없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꼭 알려고 하지 않은 탓이다. 다만 다기에 눈길이 닿을 때마다 무언가 가슴에 그림자 같은 것이 어른거렸다. 지워지지 않은 흔적일 것이다. 누군가 내 안에 아직 흔적으로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누군가에게 흔적으로 있고 싶은 것일까.

 

우연히 어느 암자에서 차 대접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그 곳에서 ‘수미차’ 얘기를 듣게 되었다.

옛 사람들은 차 살 돈이 없으면 찻물이 밴 빈 다기로 맹물을 마셨다. 가난해서 맹물을 마셨다지만, 거기엔 놓쳐선 안 될 뜻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빈 다기에서 우러나는 차의 맛과 향을 음미할 줄 아는 사람들의 풍류다. 그리고 스님은 낮은 목소리로, 수미차의 향을 맡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차를 마실 줄 아는 것이라고 했다.

‘수미차’란 물 수水, 맛 미味, 차 차茶. 글자 그대로 맹물이다. 그러나 정말로 수미차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세월이다.

사람의 정情도 수미차와 같다. 그래서 우려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것이다.

 

수수께끼처럼 남겼던 말이 비로소 풀렸다.

아직은 수미차를 음미한다고 하진 못하겠다. 허나 심우가 남기고 간 다기에서 물 속 그림처럼 일렁이는 흔적을 가끔 느끼곤 한다.

 

빈 녹차 잔에 물을 붓는다. 그리고 향을 우려내려고 두 손으로 다기를 감싸 쥔다. 다기에 체온이 옮겨지길 바라면서.

이 묵은 다기에 어찌 다향만 배어 있을까.

 

 

 

천료 소감

 

 

지금도 가슴이 떨립니다.

부족한 글을 보내 놓고, 염치없이 천료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자랑거리가 없었던 내게, 이것은 큰 자랑거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젠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록을 써 달라고 했습니다. 난 정말 그 사람의 어록을 써 주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뒤늦게 글쓰기 공부를 했습니다. 천료 소식을 접하니, 그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초등학생을 가르치듯 끊임없는 매질로 제게 수필이란 낯선 길을 엿보도록 해주신 분이 계십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경수

 

 

안양여자고등학교 졸업.

현재 전업 주부로 고헌당古軒堂 한주閑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