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료작-

우산

                                                                                                          문순하

 이른 봄비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니 외출할 일이 걱정이다.

지난번 대청소 때 살이 부러진 우산과 대가 휘어 접히지 않는 우산을 미련 없이 버렸기 때문이다. 내 몫의 우산을 새로 준비하지 못했다. 요즘 건망증이 심해서 날씨 화창한 날 우산 준비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비가 주춤해지자, 머리에 가방을 얹고 뛴다. 버스를 타고 백화점 ‘행복한 세상’으로 간다. 1층 우산 코너에서 요것조것 우산을 고른다. 화사하고 예쁜 우산을 산다. 백화점을 나오며 우산을 펴 빙글빙글 돌리며 흐뭇해 한다.

 

나는 우산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딸애가 제 우산을 잃어버리고 오면 잔소리를 했고, 딸아이 몫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채 비가 오면, 살이 부러졌거나 비가 새거나 접히지 않는 우산을 주곤 했다. 바짝 말려 갈무리 해둔 내 우산이 있어도 주지 않았다.

 

어린 시절엔 제대로 된 우산을 써 보지 못했다. 비료 푸대를 반 접어서 오줌싸개가 머리에 키 쓰고 소금 얻으러 가는 모습으로 학교에 다녔다. 그때엔 비료 푸대를 쓰고 다니는 애들이 더러 있어서 그렇게 부끄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오는 날 농부들이 일할 때 쓰는 커다란 삿갓을 쓰고 학교 가는 것은 정말 싫었다. 삿갓을 쓰고 학교에 다니는 애는 전교에서 나와 옆집 귀례뿐이었다. 한 개의 삿갓에 둘이 머리를 디밀고 어깨동무하고, 다른 손으로는 삿갓을 잡고 5리 길 학교에 다녔다. 학교까지는 그런 대로 가지만 교실에서부터 문제였다. 삿갓 놓을 장소가 마땅치 않은데다가 아이들 놀림감이 되는 게 싫었다. 그래서 학교 뒷동산 솔포기 아래 삿갓을 묶어놓고 공부가 끝날 때까지는 삿갓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번개가 치고 바람이 교실 창문을 흔들어 대면 삿갓이 날아가지 않을까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오후에 햇빛이 쨍 하고 나면 귀례와 나는 삿갓 때문에 티격태격 했다. 몽당연필 하나 주겠다고, 한 살 어린 귀례를 꼬드겨서 삿갓을 들게 했다. 귀례보다는 내가 공부를 조금 더 잘하기 때문에 나를 알아보는 학생이 더 많으니 당연히 내가 더 창피할 것 아니냐고 우기면서…….

 

우리 집엔 지우산이 딱 한 개 있었다. 아버지가 장에 가실 때나 먼 동네 출타하실 때 아껴쓰던 지우산이다. 비가 개면 햇볕 쨍쨍한 마당에 펴 말려 들기름 고루 먹인 뒤에 그늘진 곳에서 서너 시간 말렸다.

다 마르면 주름을 고르게 잡아 묶어서, 작은 방 시렁 위에 얹어 두었다. 비오는 날 우리들이 그 지우산을 쓰자고 졸라도, 그냥 비 맞고 가면 키가 큰다며 어머니는 절대로 주지 않으셨다.

학교 다닐 때 소나기 맞는 것은 예사였다. 온종일 천둥 번개에 장대비가 퍼붓는 날에도 우산 들고 학교로 마중오는 사람이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비맞은 생쥐 꼴이 되어 집에 와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책보에서 책을 꺼내 아랫목에 펴 말리곤 했다. 얼룩지고 우굴우굴 우는 책으로 학년이 끝날 때까지 공부를 했다. 그렇게 비를 많이 맞고 자랐어도 나는 키가 작다.

한 번은 옆집 아저씨가 우산을 빌리러 왔다. 어머니는 마침 그때 집에 없는 식구 이름을 대며 쓰고 나갔다고 둘러대셨다. 작은 방 시렁 위에 얌전히 얹혀 있는 우산을 생각하며 내가 키득거리자, 어머니는 하얗게 눈을 흘기셨다.

“하나밖에 없는 우산, 비오는 날 남에게 빌려주려고 볕 좋은 날 한나절을 공들여 기름 먹이고 통풍시켜 두는 줄 아느냐?”며 구시렁거리셨다.

이렇듯 어머니는 지우산을 아버지의 분신처럼 아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실비 오던 날이었다. 슬그머니 먼지 하얗게 뒤집어 쓴 지우산을 끄집어 내셨다. 지우산을 돌려가며 우산살을 세어 보던 어머니의 눈가엔 그리움이 젖어 있었다.

 

어느 해이던가, 추적추적 봄비 내리던 날 어머니는 아버지의 옆에 나란히 누우셨다.

봉분을 마치고 어머니의 옷가지며 소지품들을 태울 때 그토록 어머니가 아끼시던 지우산도 함께 태웠다.

우산대는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탔다. 불길은 사위어가고 연기가 실오라기처럼 빗속에 너울거렸다.

논두렁 밭두렁에 샛노란 들꽃이 피었고, 들꽃 사이엔 여리디 여린 버섯이 봉긋봉긋 솟아 있었다.

버섯은 들꽃들의 작은 우산이 되어 실비를 맞고 있었다.

 

 

 

천료 소감

 

 

참으로 신기합니다. 제가 글을 썼다는 것이….

실비를 좋아합니다.

조금씩 그리움을 키웠습니다.

가슴으로만 이야기를 보듬어안았습니다.

그런 제게 유경환 교수님은 푸르디 푸른 글밭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잡초도 뽑고 호미질도 하고, 드디어 부드러운 이랑에 씨앗을 심고 물도 주라십니다.

떡잎을 열고 새싹이 나옵니다.

허 교수님과 심사위원님은 제게 새싹을 잘 키워보라 격려와 용기를 주십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새싹을 키우렵니다.

하늘빛이 내려앉아 물든 달개비꽃 같은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나님은 문 집사를 사랑하신다고, 위로해 주신 목사님 당신의 사랑에 목이 메입니다. 꼭 건강하셔야만 해요.

에바다 선교교회의 이천성 목사님께 이 글을 바칩니다.

 

                                                                                              문순하

 

 

전북 김제 출생. 신세계 동인.

화진 코스메틱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