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사람

 

                                                                                                                                                                                                               윤모촌

 

신체가 점점 자유롭지가 못해지고 시력마저 장애가 와 책이 멀어진다. 별수 없이 라디오나 TV로 무료함을 메꾸려 하나, 눈, 귀 거슬리는 방송은 별 다를 게 없다. 저마다 나와서 말하는 말씨에도 심정이 뒤집히기가 일쑤여서, 하는 수 없이 내 탓으로 돌리고 마는데, 그럴 때면 선인들의 글이나 읽으며 인품을 더듬어 보았으면 하는 것이나 그것이 되지 않으니 답답하다. 세상 인심 돌아가는 것이 예측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염치(廉恥)도 예양(禮讓)도 없어져 가는 세속이니, 그리워지는 것이 만나보고 싶은 인품일 뿐이다. 얼굴 두꺼운 줄도 모르고 제가 제 글을 명문이라 자랑하고, 제 비석을 제 손으로 세우는 시절이니, 선인들의 글과 인품의 멋이 그리워질밖에.

인품의 멋이 어떤 것이냐 하겠지만, 한 마디로 말하기가 쉽지 않다. 신분이나 학식이야 어떻든, 속물(俗物)적인 데가 없고, 예양 바른 자존(自尊)의 기품(氣稟)을 지닌 것이라고나 할는지, 아니면 기개(氣槪)가 대인(大人)다운 것이라고나 할까. 여기에 문장가의 명성이 붙는다면 말할 나위가 더 없겠지만, 이런 멋을 속된 자에게서 바랄 수는 없다. 알량한 글줄로 세간(世間)을 흐리는 일을 서슴지 않아, 이런 일이 고사(故事)로까지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 모양새가 개구리처럼 소란스럽고 매미처럼 시끄럽다 하여 와명선조(蛙鳴蟬조)라 빗대었다. 이런 것으로 보면 옛 사람들도 사람의 멋을 대하기가 쉽지 않았던 듯한데, 제 머리 못 깎는 것이 중이듯이, 문필의 평가가 소인(小人)이나 잡인(雜人)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고사가 말한다.

더러 ‘다시 읽는 명작’이니 ‘내가 좋아하는 명문’이니 하는 것을 보는데`─`그것이 현존 인물을 내세우는 것인데, 이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글을 보는 눈은 보는 자의 안목대로 일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낯간지러워서 하는 소리이고, 살아 있는 자에게 세워주는 비문(碑文) 격인 까닭이다. 차주환 교수가 말한 바 있지만, 비문이란 원래 허위와 과장이 끼어드는 글이라 하였다. 아무튼 명문이란 아무데나 붙이는 말이 아닐 뿐더러, 속된 자에 의해 붙을 수도 없는 말이다. 인품과 문필은 사회적 검증에 의해서만이 받아들여지는 까닭으로 해서, 근원(近園)의 글도 좋아들 하는 것이지만, 그의 글에는 탈속(脫俗)의 경지를 보이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런 글의 멋을 흉내내 보았으면 하는 것이나, 그것이 어찌 흉내로 될 일인가. 연작(燕雀)이 홍곡(鴻鵠)의 뜻을 모르는 것과 같다고나 할 일이다.

사람의 멋은 인품과 교양을 바탕으로 한 취향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이겠으나, 그 중에도 상허(尙虛)의 멋은 남다르다. 이런 상허를 감히 흉내내 보자고 한 것은 아니지만, 아파트로 옮기기 전 거실 앞 손바닥만한 공지(空地)에 상허의 무서록(無序錄)의 ‘파초’처럼 나도 파초를 심은 일이 있다. 어느 이른 봄날 난정(蘭丁)이 들렀다가 월탄(月灘) 선생 댁 계보(系譜)라면서, 자택에서 기른 새끼 파초 하나를 떼어다가 심어주었다. 나는 월탄 댁 계보라기에 의미를 붙여, 상허의 ‘파초’에서처럼 ‘요게 언제 자란담…’ 하면서, 아침마다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바라보곤 하였다. 상허도 새끼 파초를 심어놓고 초조해 하는 자신이 한심스럽다고까지 했지만, 그의 ‘파초’에 보면 열매가 달리면 죽는다는 말이 나온다.

어쨌든 상허처럼 나도 거름을 주어가면서 3년인가 길렀더니, 우러러보게 자라 꽃이 피고 새끼 바나나가 달렸다. 비를 피할 만큼 웅장하게 퍼진 잎이 거실에서 내다보여 시야를 시원케 해주고, 한여름이면 거대한 잎이 너울대는 운치에 푹 빠져들곤 하였다. 무엇보다도 비가 오면 잎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가슴을 적시어, 염량(炎凉) 세태와 영고성쇠(榮枯盛衰)를 그 빗소리로 듣곤 하였다. 이래서 사람들이 파초를 심었을 터이지만, 가난을 걱정하거나 작은 일에 매어사는 것과는 무관한 듯한 것이 대인풍(大人風)의 파초다.

여하간에 새끼 파초를 사다 심어놓은 상허는 그 일념(一念)이 기어코 이웃집의 파초를 사오고야 말았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의 이런 글에서 내가 멋을 느끼는 것은, 앞집 사람이 와서 그 파초를 팔라고 하는 대목의 수작이다. 그 사람은 상허가 서재를 짓고도 챙을 해 달지 않는다고 성화를 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꽃이 피면 죽는다며 마침 사겠다는 자가 나섰으니(당시로는 거금인) 5원에 팔라고 조른다. 하지만 그런 그가 상허의 멋을 알 리가 없고, 이래서 글의 멋이 드러나는데, 꽃이 피면 죽는다는데도 상허는, 죽을 때 죽더라도 보는 날까진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응수를 한다. 낙망한 사나이는 그 돈으로 챙이나 해 달지 하고 딱하다고 하는 것이어서, 그 말이 글의 멋을 한층 돋운다.

나는 이들의 대담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숨결을 느끼면서, 파초의 빗소리를 위해 해 달아야 할 서재의 챙을 마다하는 상허의 멋에 매료(魅了)된다. 그는 조선백자 칠첩반상기에 밥을 받아먹었다 하는데, 내가 상허의 이런 멋을 얘기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 멋이 정작 어떤 것인지 알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긴 하나 서울 성북동 골짜구니에서 날아갈 듯한 전통 한옥에 살던 면모를 더듬어보면, 그의 글과 사람의 멋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귀족 취향이기는 하지만, 가진 자의 속물적 세계와 다른 까닭이다.

다 아는 얘기로, 이규보(李奎報)의 시론(詩論)에 아홉까지 마땅치 않은 체(體)가 있다고 한 것이 있다. 그 중에, 거칠은 표현을 쳐내지 않으면 밭에 독풀과 가라지가 가득한 것과 같다고 한 것이 보인다. 내가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조밭을 서투르게 메는 자가 잡초인 가라지를 가꾼다는 것을 이르고자 해서 하는 얘기인데, 조를 몰라보고 가라지를 가꾼다는 것을 생각하면, 고사 속의 와명선조가 환청(幻聽)이 돼, 현실에 내 귓전이 소란스러워진다. 하지만 문장의 길은 쉽지가 않으니, 명 문장가의 문장론을 알았다고 한들, 연작의 소견으로 어찌 홍곡 같은 글의 멋과 사람의 멋을 안다 할 수가 있겠는가.                                                                                   (200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