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얼굴

 

                                                                                                                                                                                                                 이강숙

 

아내는 요즈음 그림 그리기에 정신이 없다. 전문 화가가 되려고 그리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림 그리면서 심심풀이로 노는 일만큼 좋은 일은 없다고 한다. 아내의 말을 말 그대로 믿을 수만은 없다. 무슨 결심을 해도 단단히 한 모양이다. 아내는 미술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평소에 그림을 좋아한 것도 아니다. 그림의 ‘그’ 자와도 상관이 없이 살아온 아내였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지 나로서 알 길이 없다.

아내의 말로는 친구의 권유로 그림을 배우기로 했다고 하는데 그 친구가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내가 보기에는 심심풀이로 아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 같지 않다. 그림 그리는 일에 인생을 새로 걸려고 하는 것 같다. 어떤 날은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한다.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하루 “여보 이거 뭐 같아요?”라고 하면서 그날 그린 그림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참외네”라고 대답을 했다. 내 대답을 듣던 아내는 울상이 되었다.

“뭐라구요. 참외라구요. 아닌데…….”

“그러면 뭔대?”라고 했더니, “모과인데…”라고 했다. 참외도 노랗고 모과도 노랗다. 생김새나 크기도 비슷하다. 그러나 실제의 참외와 모과는 그 생김새, 색깔, 크기 모두가 다르다. 화가의 눈에는 특히 더 다를 것 같다. 모과를 그린 것인데 참외가 되고 마니, 그린 사람으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인지 모를 일이다.

이튿날 아내가 “여보 이거 뭐 같아요?”라고 내게 다시 물었다.

“그건 모관데… 어제는 참외던 것이 오늘은 모과가 됐네” 했더니, 선생님이 손을 좀 보아주었어요. 조금 손을 대니까 참외가 모과가 되데요.”

나는 ‘조금 손을 대니까’라는 말을 듣고 ‘선생 붓과 학생 붓의 차이는 조금이 아니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손 좀 댈 수 있는 능력이 바로 비밀이지. 그 비밀, 무서운 것이지’라는 생각도 했다.

어느 하루 아내가 그림 하나를 또 가지고 와서 같은 질문을 했다.

“여보, 이게 뭐 같아요?”

그림은 퍼런 색깔로 뒤덮여 있었다. 퍼런 천으로 만든 벽에 걸린 커튼 같았다.

“퍼런 천으로 만든 커튼 같은데…….”

내 말을 들은 아내는 기가 막히는 모양이었다.

“그게 어떻게 커튼이에요. 당신 눈 정상 아닌가 봐요. 바다예요, 바다. 바다로 보이지 않아요”라고 했다.

내 대답은 좀 짓궂었다.

“바다는 누워 있어야지. 왜 저렇게 서 있어. 커튼처럼 서 있네…”라고 했다. 자존심이 센 아내는 속이 몹시 상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어느 날이었다. 이튿날 화가 몇 사람과 저녁을 먹게 된 일이 있다. 이런 저런 말을 나누던 끝에 아내가 그린, 서 있는 바다 이야기를 했다. “바다가 왜 서 있어”라는 말을 했더니 아내가 울상을 하더라 라는 말도 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웃었다.

화가 한 사람이 내게 “오늘 집으로 가셔서 사모님에게 서 있는 바다를 눕히려면, 가까이 보이는 파도는 크게, 멀리 보이는 파도는 작게 그려보라고 해보세요. 그러면 바다가 눕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옆에 앉아 있던 또 한 사람의 화가가 “서 있는 것을 눕히려면 돈이 좀 들어갑니다”라고 했다.

좌중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또 왁자지껄하게 웃었다. 무엇이든 공부를 하려면 배워야 된다는 말이고, 배우려면 학비를 좀 내야 된다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듣는 사람은 알아들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돈 들어가는 것은 오히려 쉬울지 모른다. 참외를 모과로 만드는 일, 서 있는 바다를 누워 있는 바다로 만드는 일만이 아니라, 어떤 일의 성공적 수행을 위한 열쇠인 비밀을 캐는 일이 돈 들어가서 되는 일이라면 얼마나 쉬우랴,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보통 사람이 알지 못하는 비밀을 캘 수 있어야 하는데, 비밀은 돈으로 캘 수는 없다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에게 “당신 화가가 되고 싶소. 정직하게 속마음을 내게 한 번 털어 내 보소”라고 했더니, ‘아니’라고만 대답했다. 말이 ‘아니’라는 것이지 속마음은 그 반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내게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그림에 목숨을 바쳐라.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로 안 된다. 모든 일이 그렇다. 그럭저럭 하는 둥 마는 둥 하면 안 된다. 죽음을 각오한 노력을 끊임없이 계속하는 사람에게만 비밀은 자기의 정체를 드러낸다. 늦게 시작하고 빨리 시작하는 것에는 별 차이가 없다. 얼마만큼 노력을 하느냐에 모든 것이 달렸다. 돈이 필요하다면 내가 적극적으로 후원할 테니, ‘당신 그림’이 찾아질 때까지 인생을 한 번 걸어보라”라고 했다.

그날 밤 아내는, 서 있는 바다를 그리든 누워 있는 바다를 그리든 그것은 상관이 없다, 나에 대한 당신의 이해가 내 삶의 전부다, 당신이 나를 이해해 주니 그것으로 나는 행복하다 라고 하면서 오랜만에 편안한 얼굴을 내 앞에 내밀었다.

 

 

 

이강숙

전 한국종합예술학교 총장.

산문집 "술과 아내 그리고 예술"(2001년), 단편 소설 "빈 병 교향곡"(2001년),

중편 소설 "즉흥 연주를 하는 사람들"(2002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