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못

 

 

                                                                                        유경환

 

가끔 아직 어린이인가 싶을 때가 있다. 길을 가다가 반짝이는 것이 눈에 띄면 걸음을 멈추게 된다. 멈춘다기보다 멈춰진다고 해야 옳다.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가까이 가보면 쇠붙이 조각이다. 요즘엔 작은 못이 자주 눈에 띈다. 민못이 아니라 주름못. 돌려서 박는 못. 허리에 뱅뱅 감겨올라간 주름 때문에 주름못이라는 이름을 얻었을 것이다.

예전엔 나사라고 불렀다. 나선형으로 패인 줄이 감겼다 해서 그렇게 불렸다. 물론 한자다. 한자를 잘 안 쓰는 요즘엔 주름못이 어느 새 이름이 되었다.

쬐그만 주름못은 앙증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지나칠까 하다가 집어든다. 후후 입김으로 먼지를 불어내거나 바지자락에 비벼 흙을 털어낸다. 언제 써볼 것이냐 하는 생각에 그냥 버릴까 하는 생각이 아니 드는 것도 아니다.

쓸모 있는 물건이 버려져 있으니, 주워 들 만하다고 이내 고쳐 생각한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고, 편안해진 마음이 미소로 바뀐다. 주머니에 넣는다. 대단한 것을 얻기라도 한 듯 속으로 흡족해 한다.

 

못통이 집에 있다.

주름못도 몇 개 들어 있다. 크고 작은 것들. 쓰다가 남은 것도 있고, 주워온 것도 있다. 오래 된 것은 녹이 슨 채로 섞여 있다.

왜 이런 것을 자꾸 주워오는가. 언제 한번 적재적소로 써본 적이 있는가. 그런 기억이 없다. 다만 언제고 소중히 쓸 때가 있겠지 싶어서이다. 언제부터 이런 기대감을 못통에 두어왔는지 알 수 없다. 이 ‘언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 안에 이런 기대감을 담아온 것이 문제일 수 있다.

버려진 주름못을 주워오는 행위, 이것은 내 성격을 설명하는데 도움 자료가 되지 않겠냐 싶다. 주름못을 놓고 곁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을 적, 기다렸다는듯이 “그게 대장부가 할 일이냐”는 투로 반격을 해댔다.

대못이 망치에 얻어맞는 고통을 견뎌내기에, 못으로서의 역할을 얻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그러기에 힘겨운 무게를 지탱하는 일몫을 해내는 것이라고 민못을 옹호하기도 했다.

이어, 굵직한 대못이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들려주며, “뻘겋게 달아오른 무쇠가 견디기 어려운 압력을 이겨내며 못으로서 다듬어졌기에, 못으로 태어난 기쁨을 지닐 수 있다”고 민못을 예찬까지 했다.

두들겨 맞는 단련으로 비로소 못이 되고 굵직한 쓰임새를 얻는 대못. 목수의 망치질에 의해 또다시 요지부동의 자리를 깊숙히 차지하게 됨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리 차지를 하느라 갖게 되는 상처와 아픔의 자국은 피할 수 없는 고통이다.

이런 까닭인지 대못이건 잔못이건 민못은 점점 그 자리를 주름못에 넘겨주는 형편이 아닌가. 우선 건축 자재에서 목질이 줄고 있으며, 토목 공사의 기초 부분에나 남아 있을 정도이니, 못의 용도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또 벽걸이 용도에서도 자국이 남지 아니 하는 개발품으로서 바뀌었으며, 심지어 구두 수선점에서조차 못의 효용은 그 전과 다를 뿐 아니라 수선점 수가 줄고 있다.

주름못을 들고 요리조리 살피는 내게 답답하고 궁상스럽다고 말하는 곁사람도, “박을 때나 뺄 때 상처를 남기지 않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이냐”는 나의 재반론에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주 오래 된 일이다. 내 못통보다 큰 것을 옛 집 광에서 본 적이 있다. 6·25를 겪고 볼 수 없게 되었으니, 난리 통에 없어진 듯하다. 나와 같은 심사로 선친도 못통을 두었을까. 그렇다고 보면 이런 심사가 상속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연이 아니라면 아들아이 집에서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보게 된다면 3대에 걸친 무형 상속 또는 유전이라고 둘러댈 만하겠다.

 

작은 주름못 한 개. 단단히 조임쇠 노릇을 할 때 주름못은 제 일몫을 한다. 이어지는 것이나 겹쳐지는 것을 결속시키는 기능이 주 기능이다. 한강 철교를 지나다 촘촘히 박힌 주름못 결속 장치를 보고 철교의 안정도를 믿을 수 있었다. 철교뿐이랴. 우리 사회를 체계적으로 연결시키는 기능에서 구성원이 주름못과 똑같은 기능을 맡고 있지 않은가.

만일 주름못이 발명되지 아니 했다면 목질에는 아직 꽝꽝 대못을 칠 것이다. 그 충격과 고통! 목질에 비할 수 없도록 단단한 구조물에 주름못은 잘 들어간다. 같은 크기의 민못보다 주름못을 앙증스럽고 귀엽게 보는 까닭은 그 모양새나 크기에만 있지 아니 하고 그 기능에 있다.

주름못은 민못에 비해 순리順理로 자리를 차지하며, 해체될 경우 집착없이 풀린다. 아무리 단단히 조여 있다가도 어느 결에 조임이 풀어지면 미련 없이 스르르 빠지는 주름못! 이런 사실에 나는 관심을 두는 것이다. 주름못에 대한 선호는 민못에 비해 상처를 최소한으로 줄인다는 면에서 반가운 일이다.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아니 해 길에서 녹슬어 삭아버린다 하더라도 뉘도 마음 써 줄 일이 못 된다. 몰라서 그렇지 얼마나 많은 주름못이 각종 기기에서 풀려 흙에 묻혔으랴.

그러나 내 눈에 띄면 주워든다. 적재적소를 생각한다. 이 기대감은 부끄러워해야 할 심사가 아니라고 우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