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프 수집의 변(辯)

 

 

                                                                                                李泰東

 

언제부터 얻은 것인지 모르지만, 나는 램프를 수집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어느 가게나 찾아가 마음에 드는 램프가 있으면 그것을 구입한다. 그러나 화려한 조명등 가게에 가서 새 것을 사는 일은 드물다. 가격도 가격이려니와 새 것을 사서 등불을 켜는 것보다 망가지거나 헤어지지는 않았지만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중고품 램프를 구입해서 등불을 켜는 것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다소 낡고 먼지가 묻었더라도 그것을 손질하고 잘 닦아서 불을 켜면 새 것에서는 볼 수 없는 은은한 빛을 볼 수가 있다. 중고품 램프는 불이 켜 있지 않을 때는 다소 퇴색되고 낡아 보이지만, 불을 켜고 보면 그것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그래서 낡은 램프에 불을 켜면 램프가 한결 새롭게 느껴진다.

이런 현상은 밝은 불이 등피나 갓에 묻은 얼룩 같은 것을 보이지 않게 지울 수 있다는 사실에 연유한 것이리라.

내가 이렇게 램프를 유난히 좋아하게 된 것은 물론 그것이 어둠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어릴 때의 램프는 어둠을 밝혀주는 빛의 원천이라기보다는 언제나 아름다운 신비의 대상對象이었다. 유년 시절 시골 집 대청마루에서 하얀 조선종이를 발라서 만들어 놓은 등을 보게 되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때 언제나 등불 곁에만 앉아 있곤 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내가 할아버지를 따라 험준한 산 속에 위치한 적천사(積天寺)를 찾았을 때, 법당(法堂) 한 모퉁이에 무리지어 걸려 있던 연등(燃燈)을 보고,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해서 할아버지를 따라 부처님께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면서도 시선은 종이 등燈이 하얗게 걸려 있는 천장으로만 향했다.

또 어릴 때, 십 리 길을 걸어 학교에 갔다가 늦으면 어머니는 항상 등불을 들고 동구(洞口) 앞까지 마중을 나오시곤 하셨다. 칠흑같이 어두운 여름밤이면 더 더욱 그러하셨다. 그래서 멀리 보이는 등불은 언제나 유년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멀리서 가까이서 철길 위로 불을 환하게 켠 열차가 주마등(走馬燈)처럼 달리는 것을 볼 때나 밤차를 타고 고향 길을 갈 때,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외딴 마을의 어느 집 창문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일 때면 내 마음은 반가움과 그리움으로 가득 찼다.

부잣집 대문 앞에 켜져 있는 외등(外燈)이 아니라도 좋다. 비오는 날 어두운 길을 걷다가 기중忌中이라고 쓴 등불을 만날 때도 반갑고 경이롭다. 상가(喪家)를 알리는 등불은 길을 밝히는 불빛만이 아니라, 상복(喪服)을 입고 시신(屍身) 곁에서 밤을 새는 ‘남아 있는 자들의 슬픔’을 함께 하며,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의 길을 밝혀주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아니, 그것은 망자가 어두운 저승길을 갈 수 있도록 비춰주는 등불이 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세월 따라 마음의 감성이 녹슬어 갈 때에도 망자(亡者)의 집 앞에 걸려 있는 호젓한 등불을 볼 때마다, 그 집으로 들어가서 흰옷을 입고 관(棺) 앞에서 고개 숙인 사람들과 함께 곡(哭)을 하고 싶은 마음이 바람처럼 스쳐가곤 했다.

어릴 적, 내 마음에 화인(火印)처럼 찍어 놓은 등불의 이미지는 제단(祭壇)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촛불에서도 발견되었다. 자신을 불태우며, 어두운 주위를 밝히는 촛불이 등불과 무엇이 다르랴.

반백이 된 지금, 아는 아직도 빈 시간만 찾아오면 중고품 가게에 들러 남들이 이미 사용하다 버린 램프가 아직은 쓸 만하고 우아한 품격을 지니고 있으면, 주머니를 털고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그것들을 구입한다. 촛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내가 서재에 홀로 있을 때에는 여러 개의 램프를 연등처럼 밝힌다. 한쪽 벽에는 무쇠로 만든 촛대가 걸려 있고, 책장 주위에는 나무로 된 등잔과 유리로 된 서양 촛대들이 줄지어 서 있다.

책장 옆 때묻은 진열장 속에는 은촛대는 없지만, 백랍으로 된 촛대가 놓여 있다. 그리고 서재 뒤 골방에는 놋쇠로 된 중고품 램프를 비롯해서 도자기로 된 램프들이, 여러 가지 모양의 촛대들과 함께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비록 내가 방에 놓아둔 램프와 촛대들에 불을 밝히지 않는다 할지라도, 장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으면 어두운 골방 속의 공간에 놓여 있는 램프들의 숲에 찬란하게 불이 켜져 있는 꿈을 꾼다. 마치 어두운 세상을 밝히려는 연등의 그것처럼.

램프를 수집해서 불을 켜고자 하는 욕구는 죽음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태어날 때부터의 욕망인가, 아니면 살아 있는 자는 물론 어둠 속에 갇혀 있는 망자(亡者)의 길을 비춰주고자 하는 슬픈 인간의 부질없는 희망인가. 나는 오늘도 빈 시간이 있으면, 누군가에 의해 버려져 불이 꺼져 있는 램프를 찾아 집을 나서고 싶은 마음을 떨치지 못한다.

 

 

이태동

<문학사상>으로 등단(76년). 문학평론가.

현재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부위원장.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