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드르와 벨리 댄스

 

 

                                                                                                주연아

 

봄이 끝나갈 무렵인 며칠 전, 여고 졸업 30주년 기념 동창회가 열렸다. 비록 서른의 잔치는 막을 내렸지만 이제 새로이 쉰의 잔치를 벌이려는 우리들……. 그리운 모습들이 세월의 흔적인지 삶의 훈장인지 모를 것들을 얼굴에 달고서 속속 모여들었다. 푸른 꿈이 은색의 비늘처럼 반짝이던 시절에 만났던 우리들……. 함께 했던 그 소중하고도 공통된 역사가 있기에, 30여 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는 그 긴 시간의 강물을 훌쩍 뛰어 넘을 수 있는 것이리라.

깊어가는 밤의 열기 속에서 동창들은 그 동안 준비했던 장기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단연 압권이었던 것은, LA에서 온 친구가 솔로로 불렀던 ‘바꿔’란 노래와 열두 명의 춤꾼들이 보여주는 뇌살적인 살사 댄스였다.

긴 머리에 빨간 롱 드레스를 입고 양 새끼손가락에는 금빛 깍지를 끼고서 이정현의 ‘바꿔’를 불러대는 친구. 그 능숙한 춤과 노래의 실력, 그리고 종횡무진 무대를 누비며 온몸을 성대삼아 열창하는 그 용기, 무대 밑에서는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지고, 비디오는 돌아가고 있었으며, 800개의 눈동자는 일제히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도 숨을 죽이고 그녀를 바라보며 고스란히 그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어느 참에 나는 무대 위에 친구 대신 서 있는 나를 상상해 보았고, 그 순간 눈앞이 아찔하였다. 음악이 시작되면 춤은커녕 뻣뻣하게 굳어져 흡사 나무토막이 움직이는 것 같을 게다. 쑥스러움이 많고 무안을 잘 타는 나는 무대 공포증이 있다. 아마도 수백 개의 눈들이 나를 주시한다면 목소리도 나오지 않을 게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나도, 어렸을 적엔 겁없이 무대 위에 잘도 섰다는데, 왜 나이가 들면서 그런 일이 점점 부담스러워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혹시 내가 순수했던 동심을 잃은 탓은 아닐까. 있는 나를 그대로 보여주려 하지 않고 더 좋게 보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나를 미화하려는데서 생기는 압박감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부끄러움을 모르던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후 갑자기 수치심을 느끼고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던 것처럼, 동심의 낙원에서 추방된 내가 순수의 옷 대신 과대 포장의 옷으로 갈아 입고자 하는데서 오는 부작용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는 사진도 되도록이면 찍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실물보다 사진이 못 나온 것 같다던가, 구도가 좋지 않다던가 하는 차원의 이유에서가 아니다. 인화된 사진들을 들여다보면 왠지 표정들이 자연스러워 보이지가 않기 때문이다. 스냅 사진의 경우엔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없으니, 결국 한 개의 렌즈라는 객체의 눈, 아니 한 사람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탓일 게다.

타인의 눈길 앞에 마주 보고 선다는 것, 그것이 한 사람이든 수백 사람이든 상관없이 나는 왠지 어색하다. 사람은 자기를 감추고 싶은 심리와 드러내고 싶은 심리가 공존한다고 하는데 나도 예외없이 이 두 가지 심리가 함께 하는 모양이다. 실생활에 있어 타인으로부터 나를 숨기고자 하는 욕구를 나는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또한 노출의 욕구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서 상당 부분 나는 그 욕구를 해소하고 있지 않는가.

언젠가 갔었던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배꼽춤을 본 적이 있었다. 바로 내 코 앞에서 날개같이 엷은 옷으로 최소한의 부분을 가리고, 온몸을 흔들어 대는 무희의 현란한 벨리 댄스를 보면서, 나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간의 양면성을 생각했다. 이 춤은 이곳 이국의 밤을 수놓는 오락의 꽃이며, 여기가 바로 벨리 댄스의 메카라지 않는가. 차드르와 브루카로 얼굴과 온몸을 감싸야 하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너무 벗어 오히려 민망스러운, 게다가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도발적인 벨리 댄스라니… 은폐를 강요하는 문화에서 이 무슨 역설적인 노출의 춤일까.

그러나 나는 그것이 바로 인간의 이중적인 본능을 적나라하게 표출시킨 형태의 문화라 생각했다. 그 본능은 아무리 강한 방파제로 그것을 막으려 하더라도 반드시 물꼬를 찾아 삐져나오고 말 것임으로……. 아마 나도 실생활에 있어서는 차드르를 쓰고 싶고, 정신적 생활에 있어서는 벨리 댄스를 즐기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30주년 동창회에의 장기자랑에서, 타인의 눈보다 자기 내부의 눈길에 충실한 동창들을 바라보며 나도 이제부터는 스스로를 구속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부풀려 보이려는 허영에서부터… 투명하게 비치는 순수란 이름의 옷을 입고, 에덴의 동산 위를 뛰어다니는 알몸의 이브처럼 그렇게 자유롭게…….

10년 후에 있을 40주년 동창회에선 나도 솔로까지는 못 하더라도 12명의 그룹 속에서 살사 댄스 정도는 출 수 있도록 노력해 보려 한다. 무대 밑의 800개의 눈동자는 보지 않고 오직 나 하나만의 눈을 의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