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 이야기

 

                                                                                                                                                                                                                   최순희

 

전에 살던 옆 단지 아파트 경비원 박씨 아저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박씨는 언젠가 이 지면誌面에서 소개한 대로 우리 가족과는 서로의 모습을 말 없이 호감 어린 눈길로 지켜봐 온 사이다. 특히 그와 나 사이엔 제가끔 서로를 위해 마련했으나 끝내 주지 못한 꽃다발이 하나씩 놓인, 조금은 고전적인 공간이 있다. 몇 달 전 이사를 떠나올 때 전화번호를 적어주었고 이따금 산책길에 들러 아직도 그리로 날아오는 우편물을 찾아오지만, 그가 전화를 걸어온 일은 처음이다.

남편과 아이들의 안부를 두루 묻고 난 그는 조심스레 운을 뗐다. 두어 주일 후에 딸아이 혼사를 치르게 되었는데 주례를 부탁해도 되겠느냐는 것이다. 그의 딸이라면 지난 해 내 시상식 때 일껏 아버지를 따라나서서 준비했으나 장소가 어긋나는 바람에 내게 전달하지 못하고 만 고맙고 아쉬운 꽃다발의 주역이다. 두어 번쯤 내가 쓰거나 번역한 책들을 딸 주라며 선물한 적이 있는데, 바로 그 딸이 결혼하는 모양이다. 허나, 주례는 대개 신랑 쪽에서 알아 모시지 않던가?

박씨가 설명하는 사정은 이러했다. 처음에는 신랑이 직장 상사에게 주례를 부탁했다. 그러나 상사는 부득이한 사유로 정중히 사양했다. 신랑 쪽에선 그 밖에는 달리 마땅한 사람이 없다면서 신부측에 주례 문제를 일임했다. 그래 한 지인에게 부탁하여 흔쾌히 승낙도 받았는데, 갑자기 그분이 입원을 하는 돌발 상황을 만나 부랴부랴 다른 분을 구해야 하게 되었다. 다들 난감해 하고 있는데 마침 주인공인 신부가 『딸이 있는 풍경』의 그 아줌마에게 부탁하면 어떨까 하고 제안했고, 박씨도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싶었다는 것이다.

뭐, 주례라면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러잖아도 남편은 이따금 제자들 주례를 서 주곤 했다.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박씨 아저씨의 따님이고, 딱한 사정으로 우리에게까지 건너온 모처럼의 부탁인데 남편도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축하한다고, 남편도 시간만 된다면 분명 기꺼이 맡아드릴 거라고, 저녁에 본인에게 확인하여 다음 날 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흘낏 달력을 보니, 이걸 어쩌나! 결혼식은 하필이면 남편이 해외 출장을 가고 없는 주말이다. 당황하고 미안해 하는 내게 경비원 박씨는 나보다 더 당황스러워하며 말했다.

“저어, 그게 말이지요… 제 말씀은 바깥 교수님이 아니라 근이 어머님에게 드리는 부탁인데요…….”

“네에? 저요? 제게, 주례… 를요?”

“네에. 근이 어머님께요.”

나도 모르게 난 그만 푸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게 주례를 부탁하다니! 전혀 상상도 못한 기발한 발상이었다. 아무 유명인사도 아닌 내게, 더욱이 여자인 이 내게 말이다! 여자가 주례를 서기도 하던가? 하지만 가만, 여자라고 주례를 서지 못할 것은 무언가?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이고, 무난한 결혼생활 이면에는 대개 남편보다 몇 배나 큰 아내 쪽의 희생과 인내가 숨어 있기 일쑤다. 이제껏 결혼식 주례라면 으레 남자만 생각해온 관습이야말로 가부장적인 남성우월주의의 표본이 아니겠는가. 물론 그렇던들 곧 ‘내’가 주례를 설 자격이 있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런 유쾌하고 파격적인 생각을 해 내다니, 과연 W세대들의 신선하고 활짝 열린 사고란 경탄할 만하다. 경비원 박씨는 처음엔 잠깐 갸웃했으나 생각할수록 멋진 아이디어더라고 말했다. 어떤 식으로든 남다른 결혼식을 연출하고 싶은 당사자들 구미에도 꼭 들어맞을 뿐더러, 근이 어머니라면 어느 누구 못지않은 멋진 주례가 될 게 틀림없다는 것이다. 정히 내가 거절한다면 남편이라도 대신 맡아주겠지 싶어 안심했는데, 이제 남편도 출장중인 판에 나마저 거절하면 정말 그것만은 피하고 싶지만 예식장 전속 주례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박씨는 정중하고도 간곡하게 매달렸다.

순간적으로 솔깃한 마음이 들긴 했다. 비록 예기치 못한 사정으로 인한 대타代打라곤 해도, 주례를 부탁한다는 것은 적어도 신부와 그 아버지의 눈에 비친 나의 살아가는 모습이 일생 단 한 번밖에 없을 그들의 소중한 의식(儀式)에 청하여 별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는 증거일 테다. 내가 언제 또다시 이런 영광스런 부탁을 받아보겠는가. 또한 설사 제 1호는 아닐지라도 아직은 몇 안 되는 여성 주례들 중 하나임엔 분명할 거라는 허영심도 단숨에 거절해 버리기엔 아쉽게 했다. 게다가 오죽 다급하면 내게까지 이런 부탁이 건너왔겠는가. 정말로 어느 결혼식에서 본 약장수 같은 예식장 ‘주례쟁이’에게 가야 할 상황이 되면 어쩌나.

그러나 뒤이어 떠오른 또 다른 생각에 나는 마음을 정했다.

나는 진심으로 영광이라고, 그러나 나는 도무지 그런 자리에 설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아저씨도 내가 얼마나 얼치기 아내요, 엄마요, 주부인지를 가까이에서 7년씩이나 지켜보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박씨는 물론 펄쩍 뛰며 사정했지만, 내 안의 무엇인가가 깍듯하면서도 더 이상 부쩔 수 없도록 단호한 거절의 말을 입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내 안의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내가 일부일처제의 신화를 믿지 않는다는 간단 명료한 사실이다. 나는 내심 현재와 같은 구도의 일 대 일 성 관계를 바탕으로 한 일부일처 혹은 일처일부제는 진화생물학적 자연의 법칙은 물론 사회인류학적 현실과도 맞지 않는 불합리한 결혼제도라는 관측에 도달한 지 오래였다.

동물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버래스 부부의 『일부일처제의 신화』(해냄 刊)는 사회적 일부일처제와 성적 일부일처제 간의 괴리를 인정함으로써 대안적 일부일처제를 유지해 나가자고 권유하고 있다. 오늘 결혼하는 세 쌍 중 한 쌍이 이혼한다는 통계를 보면서, 나 역시도 일종의 열린 결혼이 그나마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보던 차였다. 그 ‘열린’의 형태가 어떤 것일지는 두 사람 간에 협의하고 합의할 사항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고지식한 만큼은 양심적인 나는 온통 장밋빛 꿈으로 행복한 신랑 신부 앞에 멀쩡한 얼굴로 서서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오직 아내·남편만 사랑하며…’, 혹은 이의 좀더 현대적이고 세련된 변주를 늘어놓을 만큼 능청스럽지 못한 것뿐이다.

그래도 귀가하여 내 얘기를 들은 남편이 승낙하지 그랬느냐고 아쉬워하는 것을 보자 얼마간 후회스럽기도 했다. 내가 너무 고지식했나? 끝내 다른 주례를 구하지 못하면 어쩌나? 그는 혹시 한 번 더 전화를 걸어오진 않을까?

결혼식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오늘 저녁, 나는 축의금 봉투를 들고 경비실로 박씨를 찾아갔다. 괜한 폐만 끼친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그는 별 도리 없이 예식장 전속 주례에게 부탁했다고, 마음은 간절했지만 내게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한 건가 조심스러워 다시 전화해 볼 용기를 내지 못 했노라고, 딸에겐 그저 다른 사정이 겹쳤더란다 라고만 해뒀노라고 말했다. 과연 점잖은 사람이었다. 그리곤 다음 달로 경비원 일을 그만두고 전부터 준비해 오던 부동산 사무실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아들과 연계하여 시작한다고, 그 동안 고마웠고, 헤어지게 되어 무척 섭섭하다고.

돌아오는 길엔 아까는 삽상하던 가을 저녁 바람이 낙엽을 이리저리 스산하게 불어가고 있었다. 나는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일 주례 청탁을 거절한 것이 애초 내가 생각한 것처럼 잘한 일인지 되짚어보았다. 잘 알 수가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서로 존중하고 삼가하며 고즈넉한 눈길로 바라보던 박씨와의 공간에 또 하나의 ‘하지 않은 일’이 더해졌다는 것, 그리고 그 공간엔 한 일보다는 하지 않은 일이 더 잘 어울린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