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와 젓가락

 

 

                                                                                      이명선

 

서울에 올라온 지 삼 년만에 전에 살았던 곳으로 다시 이사를 한다. 요즘은 이삿짐 회사에서 모든 과정을 맡아서 해 주니까 성가실 일이 없다. 버릴 물건을 챙겨놓으면 그만이다.

남편은 유난히 짐을 잘 묶는다. 야무지게 묶어서 차곡차곡 쌓아놓은 짐을 보면 들어내기가 아까울 정도이다. 내가 손을 본 짐들은 책이 들어 있으면 와르르 쏟아져 내리고, 그릇일 경우에는 깨지기 일쑤인데 남편이 묶으면 아무 탈이 없다. 이런 형편이니 이삿짐 가지고 남편에게 불평할 처지가 아니다. 물론 문제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짐을 싸 주는 것으로 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남편은 짐을 옮기고 나면 깨끗이 손을 턴다. 이제 짐을 풀어 정리하는 일일랑은 전적으로 내 몫인 셈이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슬그머니 불평을 하면 이는 아내의 참된 도리가 아니다. 아무 탈없이 이사를 온 건 오로지 남편 덕택이니까.

사실 우리 집에는 값나가는 물건이 없으니 남편이 이처럼 빈틈없이 짐을 쌀 필요가 없다. 언젠가는 남편의 빼어난 솜씨 덕에 이불 대신 옷을 덮고 잔 적도 있다. 이불 보자기에는 네 귀퉁이에 가는 끈이 달려 있는데 남편은 보따리를 마구 굴려도 먼지 하나 들어가지 않게 어찌나 옭아매 놓았는지 내 손가락으로는 이불 보따리를 풀 수가 없었다. 마음은 바쁜데 지나치게 완강히 묶인 짐, 풀려고 기를 쓸수록 안 풀리는 짐이 있다면 스스로 아내의 도리를 들먹이는 나라고 해도 잔뜩 약이 올라서,

“어휴, 이런 주변머리 없고 고지식한데다 전근대적이고 고집불통인 끈 같으니, 이 끈을 그냥…….”

터진 수도관에서 솟구치는 물처럼 불평을 쏟아내고 만다.

이불 보자기 사건 이후로는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아랑곳없어 묶여지는 끈을 탓하지 않는다. 냉면집에 가면 간혹 무뚝뚝한 표정으로 ‘잘라드려요?’ 눈짓으로만 그런 신호를 보내고선 손님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싹둑싹둑 면을 잘라버리는 단호한 아주머니들이 있다. 그렇듯 나 역시 가위를 치켜들고 끈이나 보자기 고를 낸 부분이 엉켜져 상투처럼 올라와 있는 부분을 가차없이 단발(斷髮)시킨다. 전근대적이고 고집불통인 그것을.

 

귀퉁이가 잘려나간 보자기를 찾아놓으니 사과 상자 하나 분량이 넘는다. 가위로 잘라낸 부분이 삐뚤빼뚤 보기에 흉하다. 성하기라도 하면 어디 필요한 곳에 줄 텐데 그럴 수도 없다. 재게 놀려댄 손짓이 좀 부끄러워진다.

생전에 할머니는 풀기 어려운 보자기나 끈을 풀 때면 젓가락을 사용하셨다. 젓가락을 이리저리 찔러가며 어찌어찌 틈을 만들어 찬찬히 풀어나갔다. 그러나 쭈그리고 앉아 보자기를 푸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친척들이 모이면 할머니가 유난히 근천을 떤다고 말들이 많은데, 내 눈에도 그런 할머니가 궁상맞아 보였다.

 

남편과 결혼한 지 스무 해가 훌쩍 넘었다. 결혼생활 군데군데가 동강난 채 틈이 벌어져 있다. 나를 보면 ‘가위질 잘하는 여자는 얻지 말라’는 옛말이 틀린 말이 아님을 알겠다. 빠른 것을 받들며 휘둘러대더니 가위질 흔적만 요란하게 펼쳐져 있다. 소리 없이 풀고 다듬어도 볼 일이지…….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그런 듯싶다. 서로 오랜 세월을 알고 지내다 보면 365일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어제나 한결 같으면 좋으련만 오래 된 음식처럼 변하기도 한다.

섭섭함이 괘씸함으로, 괘씸한 마음이 자칫 미움으로 치달으면 묘하게 사이가 엉키고 만다. 때로는 이런 얽힌 타래를 풀어보려고 다가서 보지만 서투른 언변과 어설픈 자존심 때문에 아주 갈라서는 경우도 왕왕 있기 마련이다.

나이 들수록 만나는 사람 수가 적어진다. 아무 자리에나 낄 수 없으니 행동 반경이 좁아지고 자연 새로운 사람을 사귈 기회는 줄어든다. 이제껏 시간을 함께 하며 정을 나눈 이들을 소중히 간직해도 외로워질 시기에, 나처럼 아쉬울 것이 전혀 없다는 태도로 엉킨 즉시 번번이 잘라버린다면 깊어지는 건 외로움뿐이다.

어떻게든 보자기를 풀어보려고 한데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보기 싫게 잘려진 보자기를 서울 한복판에 미련 없이 던져버리고 여수로 이사를 했다.

 

 

이명선

월간 <에세이>로 등단(91년).

작품집"북쪽이 아니라 위쪽으로", "우리 집 마당에는 연못이 두 개 있다"(공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