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내릴 때

 

 

                                                                                            이진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연극의 새로운 막이 닫히고 열리는 느낌을 받는다. 암전 속에서 닫혔던 막이 다시 열리면 어느덧 새로운 배경과 조명이 무대를 채우고 배우들은 의상을 갈아 입고 맡은 역할을 해내야 한다.

여러 해 전, 선배 문인들과 함께 연극 공연을 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각본을 읽는 것으로 시작을 해서 차츰 대사를 익히고 나면 감정을 넣고 그에 맞는 몸짓을 하나씩 만들어간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씩 하던 연습의 횟수는 공연이 가까워지면서 점점 늘어나 매일 합숙하다시피 하며 한 솥밥을 먹는 식구가 된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맡은 배역에 따라 점점 각자의 성격이 내면에 배어들 무렵이 되어야 비로소 막이 오른다.

아무리 단역을 맡았다 해도 연습에 빠지면 안 되고 여하한 개인적 이유에서도 공연을 중단할 수는 없다. 집안에 아무리 어렵고 힘겨운 일이 있어도 맡은 역할이 희극적이면 희극적인 연기를 해야만 한다. 집안에 우환이 있어 고통스러웠지만 분장실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분장을 하던 장면과 그때의 절박한 심정이 여간해서 잊혀지지를 않는다.

 

시어머니는 깊은 병환으로 생의 마감을 앞두고 계시다. 일 년도 채 살지 못한 결혼생활과 유복자 아들 하나가 스물둘의 나이에 그분에게 주어진 배역이었다. 지나치게 반듯한 생활과 삶에 대한 순응은 50여 년 동안 다른 역할의 가능성을 모두 닫아버렸다.

긴 세월 홀로 살아오면서 사람들과의 친밀하고 살가운 관계를 애써 외면하고 냉정하게 살아오신 분이 근래에 들어서는 자꾸 누군가 꼭 곁에 있으라고 붙들고 아기처럼 안아달라고 하신다. 밤에도 홀로 있기가 무섭다며 밤새도록 자는 식구들을 모두 불러 깨운다. 그렇게 속이 시리고 외로우신 걸 왜 그렇게 오랜 세월 안으로만 삭이고 누르며 살아오셨나. 안아달라는 그 정직한 감정의 표현이 마음을 찡하게 하고 앙상하게 마른 작은 어깨를 주무르고 껴안을 때마다 연민의 정이 소리 없이 녹아내린다.

가족 치료에서는 지나치게 경직된 역할의 가면을 고집하는 사람의 삶의 태도를 우려한다. 밖에서 권위적이고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 중에 특히 그런 사람이 많은데 마치 양복을 입고 잠을 자듯, 낮 동안 자기가 맡은 역할의 가면을 자나깨나 벗지 못해 한순간도 자연인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을 심리적으로 취약하다고 본다. 그러한 틀이 굳어져 내면의 참된 자기의 모습이 계속해서 억눌릴 때 마음의 병을 얻게 되고 주변 사람들과의 상호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만이 변화와 성장의 가능성이 있으며, 생장점이 굳어지기 전에만 생명은 자라게 되어 있다.

 

오랜만에 무대에 서서 대중 앞에서 인사를 해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생각과는 달리 앞에서 비추어지는 조명 때문에 준비한 원고가 전혀 보이지를 않는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윤곽의 관객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당혹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의례적인 인사가 아닌 마음에 담긴 간단하고 진솔한 인사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객석에서 가장 높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목소리를 띄워 멀리 쏘아 올려라.’

발성에 익숙하지 않은 아마추어 배우들에게 연출자가 누차 하던 말이 떠올랐다. 분명히 대사는 정해져 있지만 배우는 그것을 자기의 몸을 통해 재창조하는 것이다. 개인에게 주어진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드라마를 쓰는 방송작가의 말을 들어 보니 처음에는 단역이었던 배우가 연기를 잘하고 창의성이 돋보일 때 그 배역의 비중을 크게 해서 키우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기대를 했으나 개성이 없는 배우는 배역 자체를 없애고 중도 하차시켜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인생 드라마의 작가 또는 연출자도 그와같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한 개인의 삶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사의한 외부의 힘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모든 사람은 자기 삶을 써내려가는 작가이다. 부조리하거나 낭만적이거나 비극적이거나 희극적이거나 자기만의 음조와 색깔을 갖기 마련인데, 강요된 삶을 읊어가는 경우도 많다.

스스로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사실조차 깨우치지 못한 채 끌려가는 삶은 ‘참 자기’와 ‘만들어진 자기’와의 싸움에 의해 언젠가는 내면의 힘이 소진되어버리고 만다. 주어진 조건을 극복해 내며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대를 이어 내 안에 쌓여온 부정적인 신화와 인지체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첫걸음이다.

나를 바라보는 시어머니의 엄격하고 이지적이던 눈빛이 뇌세포의 병변과 함께 아이처럼 단순하고 천진스럽게 바뀌어간다. 집에 있으면서도, “에미야, 집에 가자” 하는 투정은 마치 ‘엄마, 집에 가자’ 하고 조르는 아이와 같다. 치유가 불가능한 어려운 병과의 싸움으로 대단원의 막이 서서히 내려지고 있다는 불안감이 있지만, 마음의 키가 낮아져야 비로소 들어갈 수 있다는 천국의 문에 한 발자국씩 가까이 다가가는 시어머니의 작디 작은 모습이 장엄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언젠가 모든 연극의 막은 내리고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그 막 뒤로 돌아가야 한다. 계절은 깊은 가을이고, 내게 주어진 작품은 4막 중에서 세 번째 막이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극의 마지막 막이 내려질 때 당당히 막 뒤로 돌아가기 위해 목소리와 자세를 가다듬어 보는 늦가을 아침이다.

 

 

이진화

<한국수필>로 등단(88년). 이화대학 동창 문인 회원.

고양시 문협 회장. 경기도 문학상 수상(20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