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기와 쇼핑백

 

 

                                                                                                최영자

 

청람색 바탕에 분홍 매듭을 곱게 장식한 보에 싸여진 편지를 받았다. 오래 묵은 친구가 쇼핑백에 담은 등단 축하 선물과 함께 준 것이다. 마치 혼인할 때 청홍색 비단보에 싼 사주단자를 보는 것 같았다. 내용을 읽지 않아도 보낸 이의 정성과 멋이 한눈에 드러났다. 친구는 오랜 세월 곰삭은 마음을 옛 멋에 담아 보냈다. 우리네의 옛 것이건만 처음 보는 물건처럼 신선하게 느껴졌다.

얼마 전 프랑스의 보드리야르가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다. 그는 첨단 기술의 발달이 가져다 준 부정적인 반작용의 폐해로부터 벗어나기를 주장하며 세계화, 맥도날드화, 전산화가 인간의 행복과 편리함을 제공하는 지름길이 아님을 역설하였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 주자’나  ‘석학’ 등의 자신에 대한 특별한 칭송보다도 인사동의 한 민속품 가게에서 받은 명주 조각보 선물을 훨씬 기뻐했다고 하였다.

그 이야기는 우리 보자기에 대한 어떤 식의 예찬보다 미감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 같아 반가웠다.

꼬부랑 할머니가 손자에게 주려고 사랑으로 꾸린 선물꾸러미에서 임금님께 바칠 진상 보따리까지 우리 선조들은 무엇이든 보자기에 싸 담았다. 쌀 것을 모아 보듬어 안 듯하던 보자기가 세월이 흐르면서 쇼핑백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이는 아파트 문화가 확대되면서 이부자리가 침대로, 밥상이 식탁으로, 방석이 소파로 자리바꿈을 하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다목적 생활 공간이 단일 목적의 공간으로 바뀌고, 여백의 문화가 실용성이나 편리함을 좇아 펼쳐 늘어놓는 전시의 문화로 변화되면서 보자기가 설 자리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쓸 때마다 펴고 걷어 올리는 이부자리나 방석, 밥상은 좁은 공간에서 얻은 지혜의 소산일 것이다. 그것들은 손이 간 만큼 마음이 실려 정이 가고 언제나 사람이 주체가 되지만, 장승처럼 버티고 있는 침대나 소파, 식탁은 인체 공학적 편리함은 있을지 몰라도 중압감에 눌려 사람이 객이 되기도 한다. 치워버리면 물건이 있었던 자리에 또 다른 공간을 연출하는 우리의 살림살이는 고정되어 있지 않아 변화를 즐길 수 있다.

보자기는 이렇게 쓰면 이것이 되고 저렇게 쓰면 저것이 된다. 접고 접으면 한 줌이 될까말까, 자신을 고집하는 형체가 없다. 물자가 풍족하지 못하던 시절, 책을 싸서 어깨에 둘러메면 책가방이 되고, 늦게 귀가하는 자식을 위하여 밥상을 덮어 놓으면 밥상보가 된다. 머리에 두르면 두건이 되고, 목 또는 어깨에 두르면 보온용도 된다. 지난 월드컵 축구 시합 때 국가의 기념일에나 쓰이는 것으로 여겼던 태극기의 고정관념을 깨고 온몸에 두르고 걸쳐, 새로운 패션으로 변신할 수 있게 했던 것도 보자기의 미학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렇듯 우리의 보자기는 틀이 고정되어 그야말로 물건을 담는 역할만 할 수 있는 쇼핑백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쓸 수 있다. 보자기가 선조들과 어울려 살아온 역사를 더듬어보면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보자기는 자신이 안아 줄 수 있는 만큼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다. 수용할 수 있는 장점이 단점이 되기도 한다. 싸안은 물건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겉모양이 제멋대로이다. 호박 같은 것을 쌌을 때는 부드럽게 흐르는 선이 정스럽지만, 삐죽삐죽한 것을 쌌을 때는 울퉁불퉁 들쭉날쭉 세련된 느낌은 없다. 쇼핑백은 보자기보다 유연성이 적어 본연의 모습을 망가트리지 않을 만큼만 수용하여 스스로의 맵시에 초점을 더 맞추는 듯하다.

보자기는 종이나 대나무, 오동나무 상자 등 단단한 속 포장을 덧싸서 자신의 품위를 한층 돋보이게 하는 조화로운 멋도 있다.

요즈음은 옛 것을 살린다는 취지가 남발되어 고품격의 문화가 상품으로 전락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가치가 격하된다 하여도 옛 것이 보존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모든 사물이 실용화 단계를 거쳐 패션화되는 경향이 있기는 하나, 보자기나 쇼핑백이 본래의 내용물을 겉 부풀리는데 쓰여지기에 이르렀다. 쇼핑백에 브랜드명이 찍히면서 광고용으로 이용되고, 보자기도 내용물의 종류에 따라 품격이 달라져 재질이나 모양새가 더욱 고급화되어 가고 있다. 종이로 대체되는 보자기, 포장지는 수입을 해서 써야 될 만큼 화려해졌다.

보자기는 융통성이 많아서 내용물에 자신을 맞춰주는 너그러움이 있다. 하지만 꼭 매서 여며진 매무새는 누구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단호함이 보인다. 싸매주고, 가려주고, 덮어주는 보자기는 넉넉한 품이 여유가 있는 한복과 항상 입을 벌려 속내를 드러내는 쇼핑백은 꼭 맞아 입은 이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양장과의 차이라고나 할까.

보자기의 속성과 아름다움을 아무리 좋게 이야기 해도 끝없이 실용과 편리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기는 어려우리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예부터 우리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정서가 잊혀질 리 있겠는가. 알게 모르게 우리네의 마음 안에 녹아 있는 보자기의 오밀조밀한 정을 쉽게 쇼핑백에게 다 내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보자기는 언제까지라도 우리 삶 속에 한자리를 차지하지만, 자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외유내강형의 생활용품이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 주위를 정리한다. 나는 여름내 햇볕에 시달린 커튼을 바꿔 달면서 커다란 보자기를 연상하고, 유행이 지난 한복 치마의 치마허리를 튿어내니 또한 보자기가 된다. 어디에 이용할까 궁리를 하다가 창 밖을 본다. 하늘이 창문만한 보자기가 되어 가슴으로 밀려온다.

보자기가 된 하늘에 편지를 쓴다.

“친구야, 고맙다. 한없이 펼쳐 보일 수 있는 보자기를 닮은 마음을 가진 친구야.”

 

최영자

전 한국과학기술연구소 근무.

<사계> 동인. <계간 수필>로 천료(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