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

 

주요한朱耀翰의

 

평양과 나

 

 

일 시:2002년 9월 28일

장 소: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 인원:문우회 회원 19명

사 회:유경환

정 리:최순희

 

  

사회`:`안녕하십니까? <계간 수필> 제30호, 2002년 겨울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합평 작품은 주요한 선생(1900~1979)의 수필 ‘평양과 나’입니다. 선생은 문인, 언론인, 경영인, 정치인으로서 장관을 두 번 지낸 분입니다. 사람이 남긴 향기가 글이 남긴 향기와 일치하는가 어떤가 하는 점을 한번 함께 생각해 보고자 이 글을 합평 작품으로 골라 보았습니다.

주요한 선생은 목사의 아들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는 명작을 남긴 주요섭 선생의 동생 되는 분입니다. 우리 근대 문학의 효시라는 문예지 <창조>의 창간 동인으로 우리 근대 문학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이지요. <창조> 창간호(1919)에 이분의 ‘불놀이’라는 시가 실렸는데, 3·1운동을 암시한 작품입니다.

선생은 1931년부터 1941년까지엔 배일排日 운동의 기수였고, 1941년부터 1945년까지는 친일 행적이 이분을 그림자로 따라다니게 됩니다. 우리가 옛 사람의 글을 지금 다시 평하는 것은 당시 상황을 무시한 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글에서 어떤 것이든, 무엇이든 배워보고자 텍스트로 택하는 것입니다.

합평회에 앞서 저는 회원 여러분께 주요한 선생의 연보를 보내드렸습니다. 그분 생애의 면면과 그분이 남긴 글을 대비 평가하는 기준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또한 합평할 내용 문항으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미리 생각해 오시도록 부탁드렸습니다.

첫째, ‘평양과 나’는 문학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둘째, 이 작품은 작가를 대변할 수 있는가? 셋째, 이 작품은 작품으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가? 넷째, 이 작품은 어떤 의의를 담고 있다고 하겠는가? 다섯째, 각자 이 작품과 작가의 상관성에 대해 하고 싶은 말씀은?

이상과 같은 문항들에 초점을 두면서 오늘은 오경자, 이병남, 정목일, 정진권 이렇게 네 분 선생님께 지정 토론을 부탁드렸습니다. 종전과는 방법을 달리 하여 지정 토론자들께서는 객석에서 발언을 마친 다음에 맨 마지막에 정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평양과 나’를 낭독하겠습니다.

 

 

<본문>

 

평양과 나

 

 

  

평양이 내 고향이지마는 나는 성 밖에서 자라났다. 그래서 정말 平壤城人의 산뜻하고도 억센 性情을 잘 알지 못한다. 나야말로 성 밖에 토박이에 불과하다.

평양이라 장별지에

실비가 내린다

이러한 平壤情調도 나로서는 생활권 밖의 일이다. 이쁘게 닦은 속 얼굴 그대로에 흰 수건 제켜 쓴 평양의 비교적 부유한 계급의 女人情調 ─ 그것도 언제나 남의 일보고 알 듯이 관찰하는 것뿐이다.

나의 요람은 ‘엿전골’, ‘닥전골’도 아니오, ‘상압’, ‘관뒤’도 아니오, ‘적은 동산’, ‘큰동산’ 심지어 大洞江 綾羅島도 아니다.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은 대동강의 조그만 支流인 普通江으로 가고 보통강 언덕의 수수밭, 조밭뜰로 간다. 거기에 종달새가 뜨고 ‘솔매’, ‘서장대’에 진달래꽃 피고 토성 밑에 헤엄치는 곳 ─ 이것들이 나의 思鄕心의 대상이 된다. 나는 고향을 그리는 노래를 써 본 일이 있거니와 그 題材는 다 이런 기억에서 나왔다. 그것들을 보신 이가 있으면 너무도 田園的임에 의아를 不禁하셨을 것이다.

나는 11세 때에 평양을 떠났다. 그때부터 夏期에 잠깐 집에 다녀간 때를 제하고는 15년 동안을 평양서 살아보지 못했다. 1928년에 약 3년간 평양살림을 할 기회를 가졌었다. 그때에 평양에 관하여 많이 배우는 것이 있었다. 사정이 더 머무는 것을 허락치 않은 것은 유감이다.

그러나 나는 평양을 사랑한다. 부모 친지가 있는 까닭도 있겠지만 그 밖에 나의 성격에 평양적인 점은 물론 있는 까닭일 것이다. 나에게 평양어의 숙어와 습관음은 다 잊어버렸지마는 그 ‘악센트’와 ‘音調’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아 아무리 평양에서 떠나 있드라도 胎生한 기질은 버릴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지방주의가 전국주의와 충돌되는 것이 아닌 이상 평양읍·평양기질을 벗어버려야 할 아무 이유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참 평양인이 됨으로 비로소 참 조선인이 되고 또 유용한 조선인이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참 세계인이 되고 유용한 세계인이 되려니 먼저 참 조선인이 되어야 하는 것과 같다.

평양인의 장점은 새 것을 취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것이다. 그 단점은 따라서 낡은 것은 持久하지 못하는 것이다. 양반문명의 구전통이 희박한 소이일 것이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특수한 기질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나 여기 토론코자 아니한다.

평양사람은 ‘우리 조선이’ 하고 나서기보다도 먼저 ‘우리 평양이’ 하고 나서기를 즐긴다. 이것은 地方都會人의 필연으로 빠지는 길이다. 지방적으로 비교적 完美하게 일을 치르는 장점인 동시에 전국적 眼界를 가리는 短慮도 된다. 정치나 교육은 몰라도 적어도 상공업으로는 우리 ‘조선이’ 하고 眼界를 넓힐 필요가 있는 듯하다.

나는 평양의 자연을 사랑한다. 牧丹臺, 淸流壁의 遊客本位의 그것보다도 평양시민과 밀접한 생활을 하는 고기잡이터, 헤엄터, 어죽자리, 모래찜자리 그것들을 사랑한다. 평양부에서 萬金을 들여 닦아놓은 高句麗道보다도 얼음 구멍 뚫고 낚시질하는 광경을 더욱 사랑한다. 그런 것이 평양으로 하여금 근로하는 도회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든 것이다. 평양이라 하면 기생부터 먼저 연상하는 이들에게 평민의 도시로서의 그로테스크한 모던성을 보라고 권한다. 또한 최근의 고무직공 파업으로서 나타난 새 평양이 너무도 현실적인 형태를 관찰하기를 바란다.

 

 

 

사회`:`먼저 첫번째 문항에 대해 객석에서 말씀해 주시지요.

고봉진`:`문학작품입니다. 좋은 수필에는 골격이 있어야 하는데, 다소 산만하게 전개되긴 했으나 작가의 생각이 들어 있는 글이기 때문에 문학작품이며, 이만하면 좋은 수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시헌`:`평양이라는 지방의 특성, 평양인의 강한 기질에 대해 서술한 글입니다. 평양이라는 지리적 성장 배경이 이분의 기질에 반영된 듯, 연보를 보더라도 주체성과 주관을 가지고 상당히 강한 일생을 살아온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문학인으로서의 정서의 강도도 상당히 높습니다. 일견 산만한 듯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평양이라는 지방색과 자신의 주관이 어우러져 문학적 요소가 있다고 보겠습니다.

변해명`:`문학성보다 문화사적인 면으로 평양이라는 도시를 소개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양 악센트와 음조를 지닌 평양 지역 출신으로서, 향수 자체보다는 ‘평민의 도시’ 평양을 애정을 갖고 소개한, 문화사적인 혹은 사회사적인 글로 읽었습니다.

 

사회`:`문화사적인 사회성이 들어가 있다, 네, 알겠습니다.  

정부영`:`동감입니다. 말미에 ‘평민의 도시로서의 그로테스크한 모던성을 보라’고 한 부분을 보더라도 문학적인 면보다 도시로서의 평양의 기능을 중시한 글입니다.

박재식`:`이 글은 평양인의 기질과 결부하여 작가의 선진적인 사상을 나타낸 칼럼성 수필이라고 보겠습니다. 결이 좀 거칠기는 하지만 얼개는 매우 단단한 작품입니다. 우선 자신이 타고난 기질, 즉 평양인의 기질을 표출하는 완곡한 수법이 돋보입니다. 평양과 자신의 성장 내력에 대한 관계를 서정적인 요소까지 곁들여 간결하게 잘 엮었습니다. 그 평양 기질의 장단점과 지방색을 말하면서 지방주의가 갖는 글로벌리즘적인 의미와 나아가 평양인의 진취적인 면모를 소개하는 순서로 차근차근 짜 나간 문단 구성이 역시 대가다운 솜씨라고 할 만합니다. 무엇보다 평가할 사실은,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지방주의와 글로벌리즘에 대한 선견지명을 60년 전에 시사한 선생의 깨인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덕룡`:`만일 주요한이라는 이름을 덮어두면 이 작품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지 않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작가 이름부터 앞세워 그 이름에 대한 기존 평가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도 덩달아 높고 낮아지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현대적 비평 기준으로 볼 때 이 글은 수필 작품으로는 별로 대단치 않다고 저는 봅니다. 우리 나라 재사들 중에는 다방면으로 뛰어난 분이 많은데, 대단한 천재로 알려졌던 주요한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구 선생님은 생각을 조금 달리 하실 것도 같은데, 어떠십니까?

구양근`:`10장 정도의 짧은 글로서 부족한 점은 많으나, 굳이 문학작품이냐 아니냐를 놓고 택일한다면 ‘아니다’라고 대답해야겠지요. 이 글을 읽으면서 저는 노신의 잡문을 생각해 봤습니다. 노신은 중국 현대문학에서 잡문의 대가인데, 문화적·시사적이며 짧으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글로 유명하지요. 주요한의 이 글은 기승전결이 없고 서론·본론도 맞지 않는 잡문 정도라고 봅니다.

유혜자`:`저는 이 글을 평양이라는 주제에 대한 문학적인 칼럼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최병호`:`문장은 매끄러우나 구성과 논리가 미흡하여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보기엔 좀 어떨까 싶습니다.

강호형`:`양자 택일하라면 물론 ‘문학작품이다’입니다. 그러나 무슨 목적으로 쓴 글인지 의아합니다. 평양의 풍광이나 풍물은 물론 평양인의 기질을 명료히 보여준 것도 아니고, 능라도니 보통강 언덕이니 등등에 대한 언급도 스케치에 그쳐서 가보지 못한 사람은 눈앞에 떠올릴 수도 없습니다. 문학작품으로선 실패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국자`:`제 주제에 이 글을 감히 문학작품이다, 아니다 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으나, ‘이쁘게 닦은 속 얼굴’이란 표현이나 ‘참 평양인이 됨으로써 비로소 참 조선인이 되고, 참 조선인이 되어야 참 세계인이 될 것’이라고 한 대목에서는  놀라게 됩니다. 그러나 선생은 삶의 폭이 넓고 깊고 대단한 분인데, 이 작품은 별로 고심하지 않고 일필휘지로 써서 발표한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허세욱`:`단적으로 말해 문학작품이라고 봅니다. 다만 구성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분은 많은 재능을 지닌 분으로 여러 가지 직업을 겸했던 분이라 인간적·사회적·민족적 시선으로 평양을 투시했기 때문입니다. 제 의견은 여기까지이고, 이제 1번 문항에 대해 오늘 불참하신 김태길 선생님의 의견을 읽겠습니다. ─ “‘문학작품’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대답이 달라질 것이다. 문학작품으로 인정하더라도 그리 높은 수준의 작품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 이상입니다.

 

사회`:`자, 객석 회원의 말씀을 잘 들어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지정 토론자로 위촉된 네 분이 배심원이라 생각하시고 정리를 좀 해주십시요.

정목일`:`최근 저는 별 생각 없이 쓴 글이 독자에겐 전혀 엉뚱한 각도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고,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반응 간의 괴리 문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 일이 있어서 작품을 평하기가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이 글은 평양이라는 지방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지만 지방색의 편협성에 빠지지 말고 안계를 넓혀야 한다는, 당시 지식인으로선 상당히 깨어 있는 사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방적인 사고의 장단점을 보완하여 전국적으로, 나아가 민족적·세계적인 사고로 넓혀가야 한다는 얘기는 지금 읽어도 놀랍습니다.

더욱이 시대가 변하고 있다면서 예로 든 고무공장 얘기는 오늘날도 유효한 것이지요. 그러나 문학작품으로선 성공작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싶습니다.

‘나는 고향을 그리는 노래를 써본 일이 있거니와…’ 이 부분에서도 보듯이, 독자를 생각지 않고 혼자만 아는 추상적인 스케치에 머물러 전달력이 부족합니다. 또한 자연에 대한 서정성으로 시작해서 그 다음엔 사회성으로 흐르더니, 끝에는 파업 문제 등의 시사성으로 흐르는 등 전체적인 문장 흐름에 통일성이 부족합니다.

이병남`:`유혜자 선생이 앞서 ‘문학적 칼럼’이라고 하신 말씀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상으로도 앞부분은 문학적인데 끝부분은  신문 칼럼 같습니다. 서정성이 있고 평양인의 기질이나 자신과 평양과의 관계도 나타나 있으나, 당시 시대 풍조가 계몽적이다 보니 결미의 문투가 이렇게 흐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경자`:`문학작품이란 점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별로 다듬어지지 않은 글입니다. 첫 쪽 아랫부분의 지방주의에 대한 단락에 둘째 쪽의 “평양 사람은 ‘우리 조선이’ 하고 나서기보다…” 이 부분이 곧바로 이어졌으면 연결이 자연스럽고 좀더 편안하게 읽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 뒷부분에선 문학성이 떨어집니다.

정진권`:`‘평양과 나’는 문학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마치 국문과 석사 과정 입학 시험 문항 같습니다.(웃음) 이 물음에 답하려면 먼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선행되어야겠지요. 인상적으로만 본다면 지역적 정서도 있고 개성도 있으니 문학작품이긴 하되 좋은 작품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선 어휘가 불확실하고 세련되지 못했고, 감동을 주고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하며, 그렇다고 미소를 자아내지도 않지요. 공 안 들이고 쓴 글로 읽힙니다.

 

사회`:`우리는 삼원색만 가지고는 사물을 조명할 수가 없고, 삼원색을 겹쳐볼 때 7가지 이상의 스펙트럼이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어떤 것만이 정의라고 할 수 없고, 어떤 것만이 옳은 결론이다 라고도 말하기가 어려운 거지요. 그 중간 중간에 낀 색깔을 보면서 여러분도 마음 속으로 나름대로 정리를 하셨을 줄 압니다.  

주요한 선생은 일제 당시 대단한 천재로 일컬어진 분입니다. <천재시단>에 작품이 실렸고, 제9고보·제10고보만 들어가도 원이 없겠다고 하던 시절에 제1고보에 들어간 분이지요. 동아일보 기자로 8년간 재직했고, 마지막엔 논설위원까지 지냈는데, 1941년까지는 배일 운동의 선구자였으나 그 뒤 문인보국대가 생기고 동아·조선일보가 폐간되며 일제에 협력을 강요당함으로써 상황 윤리라는 문제에 부딪칩니다. 붓을 꺾어버리느냐 아니면 상황 윤리에 따라 거기 따르느냐 하는 분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이 글은 1941년 <삼천리> 지에 쓴 작품인데, 그 이후 화신산업의 전무로 발탁되어 일본의 태평양전쟁에 쓰일 비행기를 제작하는데 관여함으로써 1945년 해방까지 아니 써도 되는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겁니다.

이제 다음 문항으로 옮겨가서 이 글이 주요한이라는 인물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을 대변할 수 있겠는지, 앞에서 이미 답변 내용이 마구 뒤섞여 나왔으므로 2번, 3번 문항에 구애 없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봉진`:`문항을 만드시느라고 사회자께서 애는 쓰셨는데, 5번의 ‘위의 작품과 작가의 상관성에 대해 하고픈 말씀은?’이라는 항목과도 겹쳐지는 등, 여러 항목으로 나눈 것은 매끄러운 토론 진행을 위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봅니다. 아무튼 있다 없다로 대답하자면 저는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수재로 알려졌던 분의 작품답게 그 천재다운 번득거림을 잘 보여주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분은 일평생에 걸쳐 무슨 일이든 맡기면 다 해낸 분입니다. 경제인·언론인·문인으로서 다채로운 면모라고 할까…….

이 글의 알맹이는 ‘가장 조선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이 한 구절로 압축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 회원들께선 이 구절을 보고 이분의 사고가 굉장히 선진적·독창적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은데, 저는 그렇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당시 세계적인 사조로 한창 유행했던 말입니다. 러시아의 국민음악파를 예로 들면, ‘지방적인 것·러시아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으로 통한다’고들 했고, 일본 작가들도 그런 얘기들을 자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보편적으로 통하던 이 얘기를 시의적절하게 취해서 평양 얘기에 딱 접목시킨 것은, 선생이 독창적이기보다는 번뜩이는 두뇌의 소유자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지요.

김시헌`:`‘위의 작품은 작가를 대변할 수 있는가?’ 이렇게 물었거든요? 작가적인 요소, 그것을 찾아내야 답이 될 것 같아요.

고봉진`:`제 말씀은 여러 가지 상황에 그때그때 적응해 가지고 이것저것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음이 작가로서도 잘 나타난다, 이런 이야기지요.

 

사회`:`사실, 이분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하려면 그가 남긴 저작들을 다 읽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주요한 전집 『새벽 I』과 『새벽 II』 두 권을 다 읽었는데,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가치중립적이며 문학에 가까운 작품이 ‘평양과 나’였습니다. 나머지는 거의 경영철학이라든가 생활철학에 관한 글이었고요. 고 선생님 말씀처럼 이분은 해방 이후 국회의원, 부흥부장관, 상공부장관을 두루 역임하는 등 할 수 있는 건 다한 능력자였습니다. 문인, 경영인, 정치인 이 모두를 다 포용·포괄한 능력자였던 그를 우리는 그 중 어떤 위치에 자리매김해야 하겠는가 하는 것이 제 질문입니다.

다시 연역하자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주어진 기회를 다 활용해서 봉사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선비로서는 안 되겠다, 하는 지조론을 생각할 것인가 하는 것이 바로 제가 묻는 문항의 저의인 것입니다.

허세욱`:`이 작가의 주제적인 사고가 무엇이냐, 이렇게도 물을 수 있는 거겠지요. 이 작품은 작가를 대변할 수 있는가 하고 물었는데, 물론 작가를 대변할 수 있는 거지요. ‘대변’한다는 건 ‘표현’한다는 것 아닙니까? 매우 애매한 질문입니다. 또한 2번 문항은 5번 문항과 중복되고, 1번은 또 3번과 중복됩니다. 즉 1, 2, 4번 속에 다 포괄되는 물음인 거지요. 일단 2번 문항에 대해선 물론 이 작품이 작가를 대변할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선생은 자신의 태생적인 바탕 위에서 이 글을 썼습니다. 즉 평양에서도 성 밖에서 태어난 평양인이며, 평안 도민이며, 조선인이며, 그것도 일제에 의한 피압박 민족인 조선인으로서, 이 모두를 포괄한 정치적·사회적 변화 속에 있는 작가의 위치가 대변된 글이라고 봅니다.

 

사회`:`등화관제가 실시되고, 일제의 만주 침공이 시작되고 하는 상황에서 이분이 쓸 수 있었던 유일한 테마는 이것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후 친일적 글을 씀으로써 그러한 노력이 다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러함에도 계속 시인으로 봐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짚어보자는 것입니다. 구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구양근`:`주요한은 친일한 문인들 중 한 명입니다. 우리 모임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의 사상성 문제를 간과한 채 그의 문학적 성과를 논의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최병호`:`이분은 비상한 두뇌와 능력의 소유자로, 연보를 보면 배일이든 친일이든 가리지 않고 어떤 자리에 무슨 일을 맡기든 죄다 척척 해낸, 어찌 보면 상황에 능수능란한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해방이 되자 재빨리 도산 기념사업회를 조직할 수가 있었겠지요. 역시 문인으로서의 정체성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사회`:`1941년 이전까지의 이분은 배일의 기수로서 수양동우회 사건 때를 비롯하여 수차례 옥고를 치뤘으나, 그 후 해방까지의 5년 간은 바람직스럽지 못한 행적으로 얼룩진 기간입니다. 이분의 생애를 논할 때 두 시기 중 어디에 더 비중을 둬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심각해지니까 이쯤에서 멈추기로 하지요.

잠깐 다른 얘기를 하자면, 이 전집을 통독하면서 당시 대단한 문인으로 통했던 이분의 수필 길이가 왜 죄다 이렇게 짧은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는데, 올해 78세이신 어효선 선생님 말씀이 당시엔 이태준의 <문장강화>에 따라 수필의 길이는 원고지 10장을 넘지 않는게 하나의 불문율로 통했다는군요. 그러다가 6·25 전쟁 이후 궁핍하던 시절에 원고료 때문에 조금씩 길어진 거란 얘기지요.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지정 토론자께서 발언해 주십시요.

이병남`:`주요한은 화학을 전공했는데 일찍부터 문학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게 된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의 스승인 가와지류꼬川路柳虹도 일본에서 신시의 시조로 꼽히는데, 주요한의 ‘불놀이’ 또한 우리 신시의 시작으로 평가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이 작품은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 나와 쓴 글인 것 같은데, 그만큼 심경이 착잡할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고봉진`:`화학은 상해에서 대학 다닐 때 전공이고, 일본서 문필 활동할 당시는 고교생이었습니다.

정진권`:`친일 관련 문헌들에 보면 선생은 1941년이 아니라 이미 1938년부터 친일을 시작한 걸로 나오는 것은 어찌 된 것이지요? 창씨개명도 했죠. 안타까운 것은 이런 수재들이 몇 년만 참아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입니다.(웃음)

남기수`:`사회자가 제시한 문항들에 어휘나 표현이 모호하여 독자의 비평적 독법에 길라잡이가 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저는 또 역으로 이 작품이 과연 이 문항들에 답할 가치가 있는지, 만일 주요한이란 사람을 모른다면 이 작품을 놓고서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는지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병남`:`반드시 좋은 작품만이 합평 대상 작품이 되는 건 아니지요. 부족한 작품을 놓고 그 작가의 생애와의 상관 관계를 통해 무언가 생각하고 배울 기회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고, 바로 그 점에서 이 작품도 합평 대상 작품으로 고른 이유라고 앞서 사회자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늦게 오셨죠?

정목일`:`왜 주요한의 이 작품인가에 대해 의문이 있었는데, 저도 아까 사회자의 설명을 듣고 납득이 갔습니다. 3, 4, 5항에 대한 종합 평가를 해보자면, 지식인으로서의 번득임은 있으나 전체적으로 주제가 선명하지 못하며 논리성과 구체성이 부족합니다. 성공적 문학작품은 못 된다고 봅니다.

허세욱`:`3번 문항에 답하자면, 전체적으로 서정성·비평성 주제를 갖고 있어 산만한 대로 작품으로서의 요건은 갖추고 있습니다. 저는 4번 문항의 답을 놓고 고심했는데, 순수한 전원적인 애향 의식을 표현한 점에 의의를 두고 싶고, 작가는 이를 위해 지방도 민족도 초월했다고 봅니다. 여기서 김태길 회장의 의견서를 다시 소개하면, ─ ‘주요한은 이 작품을 쓸 때 자신이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문인임을 자부하고 있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력 투구한 글이 아니다.’ ─ 이상입니다.

김시헌`:`수필을 광의로 볼 수도 있고 협의로 볼 수도 있는데, 저는 아까 광의에서 이 글을 문학작품으로 분류했습니다.

정진권`:`옛날 작품이라도 오늘의 관점에서 비평해야 합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봐서 좋은 작품이라야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사회`:`원래 제 의도는 각 문항 별로 나누어 토론을 진행시켜 보고자 한 것이었으나, 여러분의 말씀대로 미흡한 점이 있으며, 제 의도가 제대로 전달 안 된 것을 인정합니다.

오늘 우리가 선생의 연보를 곁들여 작품을 토론한 것은 당시의 시간적·공간적 압력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그 시대의 상황 윤리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가, 만일 똑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문학을 하는 사람들로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배워보자고 시도해 본 토론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든 그리고 무엇이 되었든 오늘 이 합평회를 통해 제각금 마음 속에 작은 화두 하나씩을 건져갈 수 있다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