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鄭)나라의 사명(辭命)

 

 

                                                                                             李應百

 

『논어論語』에 보면 우리가 글을 쓸 때 참고할 만한 대목이 많이 눈에 뜨인다.

가령 공자(孔子)는 ‘그림을 그리는 일은 그 바탕이 마련된 뒤라야 한다(繪事後素)’고 했다. 종이나 헝겊 같은 바탕에 흰색으로 칠한 뒤에 채색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 것이 맛의 조화를 받아들이듯(甘愛和), 흰색이 채색을 받아들인다(白愛采)고 그 글의 주註에서 말했다. 이것은 사람의 바탕이 돼 있어야 글도 잘 쓴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가 글을 쓴다는 것은 말을 문자文字로 기록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글에 앞서 말이 어떠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자는 ‘말은 의사意思를 잘 전달하면 그만이다(辭達而己矣)’라고 했다. 그러면서 공자는 ‘말을 잘하고 낯빛을 좋게 하는 이가 어진 사람이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고 했다. 그러기에 공자는 예전에 함부로 말을 내지 않는 것은 ‘몸이 미치지 못할까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라(恥躬之不逮也)’고 했다.

그러면서 공자는 ‘시(詩) 삼백(三百) 편을 한 마디로 덮어 말하면 생각에 사(邪)됨이 없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思無邪)’고 했다. 공자가 주(周)의 각 국의 시(詩) 3천 편에서 3백 10편(지금 전해 오는 것은 3백 5편)을 골랐으므로 개략잡아 3백 편이라 한 것이다. 그 3백 편에 깃들어 있는 생각은 하나같이 청순(淸純)하고 조그만큼의 사특(邪慝)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글을 쓰는 이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인품(人品)이며 덕(德)이다. 글 쓰는 이는 각기 지닌 문재(文才)의 더하고 덜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갖추어야 할 마음씀, 곧 덕은 하나같이 소중한 것이다.

글 쓰는 이는 문재(文才)보다도 그 덕(德)을 더 존숭(尊崇)히 여겨야 한다는 공자의 생각은 그의 다음 글로 짐작이 된다. ‘기(驥)는 그 힘을 칭찬하지 아니하고, 그 덕(德)을 칭찬한다(驥不稱其力, 稱其德也).’ 기(驥)는 하루에 천(千) 리를 달리는 명마(名馬)이나 조련(調練)하는 주인의 말에 순종(順從)하는 덕(德)이 있다. 비록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힘이 있다손 치더라도 주인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고 벗나가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들은 기(驥)의 힘보다 그 덕(德)을 칭송하는 것이다. 글을 아무리 재치 있게 잘 쓴다 하더라도 필요로 하는 이의 뜻에 어긋나면 그 글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공자 생존시의 주(周)의 제후국(諸侯國)의 하나인 정(鄭)나라에서 임금의 외교 문서인 사명(辭命)을 네 사람의 대부(大夫-장관)가 분담해 닦았다.

비침(裨諶)이 처음에 초고를 잡고(草創之), 세숙(世叔)이 검토와 논의를 했다(討論之). 가령 초고가 기(起)·승(承)·전()·결(結)의 짜임새일 때 기(起)에서 상대편의 안부(安否)와 이 편의 인사를 담은 다음, 글의 주지(主旨)를 밝히고, 승(承)에서 그렇게 하는 까닭을 부연 설명하고, 전(轉)에서 그렇게 하는 데 따르는 여러 요점(要點)을 들어 각각 그 해결책을 곁들이고, 결(結)에서는 기(起)에서 제기한 취지가 효과적으로 달성되도록 협조할 것의 당부(當付)와 끝인사로 마무리하는, 그 모든 절차와 문맥(文脈)이 조리(條理) 정연하게 무리 없이 전개되었는가 여부를 돌아보는 것이다.

다음에 사신(使臣) 갈 벼슬아치를 관장(管掌)하는 행인(行人)인 자우(子羽)가 더(增)할 것을 더하고 덜(損) 것을 덜었다(修飾之). 이것은 첨삭(添削)으로 글 쓰는 이에게는 꼭 거쳐야 할 매우 소중한 단계다. 그런데 이 단계를 왜 수식(修飾)한다고 했을까. 일반적으로 수식(修飾)이라 하면 단어나 구절(句節) 위에 형용사나 부사를 더해 내용이 분명하고, 강약(强弱)을 조절하는 절차라 생각하기 쉽다. 그런 뜻에서는 증(增)의 개념은 걸맞는데, 손(損)이 어찌 수식(修飾)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글을 쓸 때 어떻게 하면 자기의 생각이나 느낌이 분명하고 감동적으로 상대방에게 전달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군살이 많이 낄 수가 있다. 그러므로 글을 다듬어 세련(洗練)시키려면 군살 빼기, 곧 불필요한 표현을 덜어버려야 한다. 그렇게 군살을 빼면 글이 한결 날씬해져서 새로 곱게 꾸민, 곧 수식(修飾)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손(損)도 수식(修飾)의 단계에 넣은 것이다.

그 다음 마무리 단계로 네 번째 동리(東里)라는 곳에 거처(居處)하는 자산(子産)이 문채(文采)를 더해 윤색을 했다(潤色之). 윤색이란 말은 지금도 그대로 쓰는데, 글을 매끈하게 다듬어 운치(韻致) 있게 하는 과정이다.

정국(鄭國)의 사명(辭命)은 이 네 사람이 각자의 장점을 아울러 자세히 살피고 정밀하게 다듬었기 때문에, 이웃 나라와 사귈 때 외교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공자는 그것을 좋게 여겨 그 사실이 『논어論語』에 실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