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으로의 산책

 

                                

                                                                                                                                                                                                            鄭木日

 

산책로는 숲길도 호숫길도 좋지만, 울적하거나 외로울 적에는 바닷가로 가고 싶었네. 외톨이가 되어 고요의 한가운데로 걸어가는 것이지. 고요의 숨결을 느끼며 걷고 있으면 혼자만이 아니라는 걸 알곤 했지. 바람이 간지럼을 먹이면서 귀엣말을 속삭이곤 하는 거야.

“어이, 어디로 가는 거야?”

나는 대답하곤 하지.

“어딜 가긴? 그냥 걷는 거야. 발길 닿는 대로…….”

바람의 감촉은 부드러우면서 맨몸에 찰랑찰랑 닿아오는 파도 같았어. 그런데도 나는 시치미를 떼고 묵묵히 걸어갔지. 생전 보지 못했던, 낯설기만 한 풀꽃들이 반갑다고 빙그레 웃음을 보내곤 했지.

“뭐야, 인사하자는 거야?”

나도 미소를 띄웠지. 어디로 가는가, 이런 물음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어. 바람 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걷고 싶었을 뿐이야. 마음 속에서 대금 가락이 흘러오고 있었어. 그 음계를 밟으며 가 보았지.

혼자 걷는 것은 적적하지만 문득 바위, 산, 강물이 침묵의 문을 열고 말을 하곤 했어. 평생을 바위를 만지며 살아온 한 석공石工의 말을 들어보면, 몇억 년 침묵을 안은 바윗돌들을 정으로 두드리면 영혼에서 울리는 소리가 다르다고 하더군. 저마다 침묵의 깊이와 삶의 질이 다르다는 거야. 계곡 옆에 집을 짓고 평생을 살아온 한 할머니는 계곡 물도 한밤중이면, 한순간 잠을 자면서 흘러간다고 했어. 산도 꼼짝달싹 하지 않는 듯하지만 이따금 손짓으로 강물을 부르고 있어. 강물의 시원지(始原地)가 산이었으니, 어디쯤 가는지 가끔씩 안부라도 알고 싶지 않을지 몰라.

모두 가고 있어. 어디로 가는가, 물으면 아무도 답해 주지 않아. 목적지도 모른 채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을 뿐…….

어느 날 새벽에 제주도 일출봉에 올라갔지. 해 뜨기를 기다렸으나 구름이 끼여 일출 광경을 보지 못하였지. 섭섭했으나 바다를 바라보며 산 능선을 걸어서 내려오는 것이 좋았어. 바닷바람이 들이닥쳐 내 머리카락을 산산이 휘날리며 물었어.

“어디 가느냐?”

“집에 간다.”

무심결에 응답했지.

“집이 어디에 있느냐?”

“에이, 바보! 말하지 않겠어.”

바람에게 바보라 했지만, 집이 없는 바람이 알 턱도 없고, 나 역시 바보라는 생각이 들더군. 새벽의 바닷바람은 천진난만했어. 내 몸의 혈관과 세포마다에 스며들어 바닷속으로 떠미는 거야. 바람에 맡겨버렸어. 어떤 무엇이 내 몸을 이처럼 온전히 받아줄 수 있을까.

나는 바닷속으로 들어갔지. 좌우의 바닷물을 보면서 앞쪽으로 수평선을 향해 걸어갔어. 외로울 적에는 홀로 오고 싶었던 방파제였어.

바다 가운데로 바람 가운데로 수평선을 바라보며 걸어갔지. 바람은 한사코 나를 바닷속으로 떠밀듯이 달려들고, 파도는 어르릉거리며 집어삼킬 듯했어. 갈매기는 머리 위로 날으고, 나는 바닷속으로 거닐었지. 바람이 사납고 파도가 드세어도 고통과 외로움의 길이 돼주고 있는 방파제가 있다는 걸 알았지. 그러나 이 세상 누구도 방파제가 돼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

중학교 3학년 때였지. 아버지는 1년째 자리에 누워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몰랐어. 어린 동생들을 셋이나 거느린 장남인 나는 아버지가 머리띠를 두르고 자리에 누울 때부터 태풍 경보 속의 바다가 되었지. 머지않아 무서운 파도가 밀려올 것을 예감했어. 그것은 이미 운명으로 예보된 것임을 느꼈어.

‘어떻게 되는 거야?’

나에게 물었어.

‘글쎄, 어떻게 될까?’

막막한 안개가 덮쳐오곤 했지. 길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어. 안개 속에서 가느다란 소리로 묻곤 했어.

“나는 누구인가?”

엉뚱한 생각이 쉴 새 없이 떠오르다 사라지곤 했지.

마음이 갑갑할 때면 삼천포에 가곤 했어. 방파제에 가보고 싶었던 거야. 파도를 보면서 수없이 말하곤 했어.

“태풍아, 올 테면 언제든지 오라!”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바다를 노려보았어. 바다 가운데로 길을 만들어 인도해 주는 방파제는 더없이 고마운 산책로였어. 그러나 더 가고 싶어도 끊어진 길에 불과했지.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어. 그때 나는 알게 되었어. 방파제 끝에는 등대가 있다는 것을! 그냥 끝남이 아니라 난파 직전에 있거나 길을 찾는 배에게 생명을 여는 구원의 길이 돼주고 있음을…….

방파제는 운명의 외길처럼 보였어. 바람과 파도는 언제라도 덮쳐버릴 것 같은 기세였지. 수평선을 바라보며 바닷속으로 놓인 그 길을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져 옴을 느꼈어. 나에겐 절실히 길이 필요했던 거야.

사춘기의 소년은 어느 새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네. 어느 길로 걸어온 것일까. 지나온 길을 떠올려보며 방파제를 걸었어. 바닷속으로 들어갔지. 소년기에 보았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어. 일출봉 아래에 있는 방파제에서 다시 보았어. 배를 대고, 출범하기 위해선 파도를 막아줄 방파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방파제는 끝난 길이 아니라 가슴을 출렁거리게 하는 푸른 출발선이었어. 문득 잊었던 말이 떠올랐어.

‘방파제 끝엔 등대가 있다!’

바닷속으로 걸으면서 하늘을 보았지.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어. 나는 아직도 길을 몰라 헤매고 있어. 인생이 ‘뜬구름’에 비유되곤 하지만, 차라리 나는 구름이면 좋겠어. 어디든 두둥실 떠올라 정처 없이 흘러가는 구름 말이야. 하늘에 맡긴 채 바람 따라 흐르면 길을 잃을 리 없지. 어떤 형상으로 변해도 좋고, 어디든지 가는 거야. 구름에겐 애당초 길이란 게 없었던 거지. 사라지는 것조차 관심을 갖지 않아. 존재라는 무게를 버려야 한없이 가벼워져 하늘에 떠 흐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이제 길조차 버리고 자유로운 구름이었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