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자리

 

 

                                                                                                  최소원

 

나는 구석자리를 좋아한다.

별로 내성적인 편도 아니고 사람들 틈에 잘 끼이지 못하는 편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단연코 구석이 편하다. 가끔은 구석자리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도 하고, 다음에는 구석이 비어 있더라도 다른 자리에 앉아야지… 하는 생각도 하지만 언제나 그쪽부터 눈이 간다. 가운데에 있게 되면 왠지 불안정한 생각이 들어서인지 어디에서든 나는 어째 자꾸 구석으로만 가게 된다.

구석에 있으면 ‘주목받는다’는 느낌은 그다지 가질 수가 없지만 나는 그래서 그 자리가 편한 것 같다. 사람들은 내가 잘 안 보이지만 나는 사람들이 잘 보이는 것.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지만 나는 마음대로 이 사람 저 사람을 주목할 수 있는 것. 주목받지 않는 것이 뭐가 좋으냐고 하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편하고 좋은데 어찌하랴.

 

생각해 보면 조금 철이 들고나서는 내내 그런 자리, 그런 위치를 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또, 다섯 형제 중의 셋째로 어중간하게 태어나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하고 성장한 것도 그런 자리를 더 편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데에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언제나 앞자리보다는 뒷자리, 중간보다는 옆이 편했다.

중학교 때 국어 책에 나오는 무슨 오케스트라 연주자의 이야기를 읽고는, 나도 크면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공감을 했었는데, 그 내용도 바로 눈에 띄지 않는 구석자리에 연주를 하고 있어 전혀 두드러지지 않지만 함께 합주를 하고 화음을 낼 수 있는 점이 기쁘다는 이야기였다.

고등학교 때도 자주 친구와 자리를 바꿔 구석에 앉았고, 대학생이 되어 자리를 마음대로 골라 앉을 수 있게 된 후에는 늘 구석자리를 택해 앉았다. 대학교 때 어떤 교수님은 앞자리에 앉은 학생부터 질문을 하셨기 때문에 그 수업 시간에는 내가 좋아하는 구석자리가 너무 경쟁이 치열해서 할 수 없이 앞자리에 앉아야 했던 적도 있긴 했었다. 도서관에 자리를 잡을 때도 뒤와 옆이 모두 벽인 자리를 좋아했는데 그 자리가 아니면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고 불안하고 집중이 안 되어, 다른 자리에 앉았다가 공부하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간 적도 있었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보고 ‘음침한 성격’이라고 놀렸지만 내가 늘 구석자리를 고집했기 때문에 그네들도 나를 따라 구석자리에 앉아 주곤 했다. 나는 때때로 ‘내가 정말 음침하고 그늘진 걸까, 어째서 구석자리가 좋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결혼하기 전에 남편과 사귈 때도 찻집에서 만날 약속을 하면 나는 늘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어쩌다 남편이 먼저 와 있는 날도 구석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내가 이 자리를 좋아한다고 여기 앉아 있구나.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하고 궁금해 했는데, 어느 날 남편이 조금 쑥스러워하며 자기는 이상하게 구석자리가 편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뜻밖의 ‘동질적인 음침함’이 너무나 반갑고 재미있어서 나는 웃음을 터뜨렸는데, 한참을 웃고 나서 남편을 쳐다보니 거기에는 훨씬 더 가깝고 친밀한 얼굴을 한 또 하나의 내가 앉아 있었다. 도서관에서 선호하는 자리도 똑같고, 별로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자란 것도 똑같고… 그날 우리는 ‘주목받지 않는 인생의 편안함’에 대한 예찬으로 시간을 보냈다.

결혼식 날, 그 동안 별로 주인공 역할을 못해 보았던 내가 갑자기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된 적이 있다. 그런데 중요한 인물이 되어 모든 사람의 관심을 받아보니 생각보다는 참 좋았다. 관심을 받는 것도 좋았고, 나의 의견이 전적으로 수용되어 금세 실행에 옮겨지는 것도 신기하고 좋았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서로 주목받는 자리에 가려고 애를 쓰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남편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결혼식 한 번 더 했으면 좋겠다고 하며 즐거워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도 우리는 가끔 결혼식 이야기를 하며, 추억으로 남은 ‘주목받은 인생의 화려함’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러나 구석자리는 편하다.

좋은 자리에 있다가 밑으로 떨어질까 봐 걱정할 일이 없으니 편하고 실수를 해도 남들은 잘 모르니 편하다.

이 글을 쓰고 있으려니 어렸을 때 읽었던 "곷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동화가 생각난다. 애벌레들이 둥지를 틀고 서로 더 높이 올라가려고 서로가 서로를 밟고 제일 높은 곳까지 올라갔는데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한 애벌레가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하고 소리치자, 다른 애벌레가 황급히 대답했다. “쉿, 조용히 해. 저 밑에서는 여기가 굉장히 좋은 줄 알고 있단 말이야.”

모두가 선망하는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고 있는 걸까. 누구 하나는 한 구석을 굳건히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알고 보면 구석에 있는 게 얼마나 편한데.

 

 

 

최소원

<수필문학>으로 등단(97년).

‘수필뜨락’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