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자동판매기

 

 

                                                                                              윤소영

 

커피 자동판매기를 보면 자동으로 버튼을 누르고 싶어진다. 지하철에서, 은행에서, 혹은 병원이나 강의실 복도에서 습관적으로 동전을 넣어 한 잔의 커피를 빼내곤 한다.

100원짜리 동전 3개면 ‘톡’ 하고 떨어지는 종이컵. 이어 조르륵 흘러내리는 갈색의 액체. 몇 모금 홀짝이면 이내 바닥이 드러나고 말지만 양이 적어 별 부담은 없다. 적당히 달고 적당히 쓴 자판기 커피 특유의 맛을 잠시 즐기다 다 마시면 주저 없이 컵을 구겨 버린다. 기계 옆에는 언제나 커다란 통이 있어 몇십 초 쓰이다 버려지는 종이컵들을 하루 종일 무심히 담고 있다.

내가 커피 자동판매기를 처음 본 것은 대학교 때였다. 학관 2층인가에 이 낯선 기계가 최초로 들어서자 곧 소문이 나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기계에서 나오는 ‘특별한’ 커피를 맛보기 위해서였다. 나 또한 친구들과 함께 긴 줄 끝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다 수업에 늦기도 하였다. 신기해서 가끔 빼 마시던 것이 하루에 두어 잔으로 늘고, 얼마 되지 않아 강의시간 전후의 필수 코스로 굳어졌다. 어쩌다 커피를 거르면 손과 입이 심심하고 뭔가 허전했다. 금단현상을 일으킨다는 카페인의 영향 때문이었을 테지만, 즉석에서 척척 음료를 뽑아내는 ‘자동 기계’의 요술 같은 동작 또한 카페인 못지않은 중독성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 같았다.

캠퍼스 안에서 자동판매기는 재빠르게 번식해 나갔다. 몇 건물에 하나씩 띄엄띄엄 있던 것이 건물마다 설치되고, 다시 한 층에 하나씩, 서너 개씩으로 불어나는 데엔 불과 몇 달이 걸리지 않았다. 학교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나라에 이것이 들어온 것은 1978년. 종각과 시청 앞, 서울역 단 3곳으로부터 출발하였으나, 20여 년 넘게 줄곧 세포분열을 거듭하며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핸드폰의 보급으로 흔하던 공중전화기마저 사라지고 있건만, 자판기의 수는 아직도 늘어만 간다.

얼마 전 자동차를 타고 가다 보니 외진 벽촌의 정류장에도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차들이 뜸하고 인적도 드문 길가, 허름한 구멍가게 옆에서 반듯하게 가슴을 펴고 있는 자동판매기! 이런 곳까지 파고들다니. 이제 시골에서도 느티나무 아래 모여 앉아 시루떡과 물김치를 먹기보다는 저마다 커피를 한 잔씩 빼내어 목을 축이는가 보다, 생각하며 혼자 씁쓸히 웃었다.

사실 나는 기계 문명은 도회지의 삶에나 어울린다고 생각해 왔다. 길가에 서 있는 커피 자동판매기는 ‘길을 가며 차를 마시는 생활’을 위한 것이지 한적한 촌리에 걸맞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차를 마시는 일이란 본래 ‘한유閑裕와 청담淸談’을 즐기는 일이어서 홀로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을, 사람을 만나서 마주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생활이 바쁘고 번잡해질수록 그런 정신의 여백을 찾기는 힘들어진다.

사무실에서 업무에 시달리다 복도로 나가 선 채로 커피를 마신다거나, 은행에서 번호표를 받아들고 차례를 기다리면서, 혹은 혼잡한 지하철역을 종종걸음으로 오가며 커피 한 잔으로 누적된 피로를 달래는 모습을 볼 때면 생존경쟁의 긴장 속에 늘 무엇인가에 쫓기듯 살아가는 도시인의 생활을 실감하게 된다.

머물 여유 없이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 인스턴트처럼 쉽게 시작되고 끝나는 인간관계, 기계처럼 반복되는 일상……. 자동판매기는 이러한 장면에 어울리는 소품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나는 왜 아직도 커피 자동판매기만 보면 버튼을 누르고 싶어지는 것일까. 처음 보았을 때 지나치게 매료되었던 것이 원인인가. 그때만 해도 나는 ‘자동화’의 문화가 아주 참신하고 멋지고 근사한 무엇인가를 내게 선사해 줄 것이라 믿었다. 커피 머신과 함께 온 현대 문명이 세상을 훨씬 편하고 세련되게 바꾸어 놓을 수 있으리라고.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버튼을 누르고 커피 맛을 확인하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동판매기 커피의 맛은 예나 지금이나 대단치 않다. 미적지근하고 달착지근한 것이 어디서나 비슷하다. 싼값에 즉석에서 제공되는 대신 차를 직접 끓여 마실 때의 특별하고도 그윽한 정취는 증발하고 말았다. 자동판매기 앞을 지날 때마다 습관적으로 커피를 빼어 맛을 보지만 늘 뭔가 미진한 듯한 기분으로 종이컵을 구겨 휴지통에 넣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