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

 

 

                                                                                             한혜경

 

몇 달 전, 한 친척 할머니가 이 생을 마감했다. 그분이 살아온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삶이 참 쓸쓸하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 한켠이 아릿해졌다. 남편도 일찍 죽고 자식도 없이 평생 형님댁 허드렛일 하면서 살았는데 모자란다는 소리나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 할머니의 남편은 삼형제 중 막내였는데 일찌감치 도회로, 일본으로 유학간 형들과 달리 가업인 과수원을 지키느라 시골에 남았다고 한다. 공부 많이 한 형을 어려워하면서 형님댁 일이라면 열 일을 제치고 달려가는 남편을 따라 할머니도 늘 형님네 일을 도와주곤 했다. 자식은 없어도 남편이 착했고, 둘이 부지런히 일한 덕분에 논도 사고 한때는 정미소도 운영할 정도로 돈을 모은 적도 있다고 한다.

불공평하게도 형에겐 아들만 3형제가 있었는데 그 중 막내아들을 이 집에 양자로 주었다. 자신들이 애를 낳았다면 이만큼 잘난 아들을 낳을 수 있었겠냐고 감지덕지하던 할머니는 남편이 죽어 혼자가 된 뒤에도 아들 뒷바라지만큼은 빚을 얻어서라도 할 정도로 지극했다. 그렇게 귀한 아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잘 사는 것이 너무 기뻤다는데 그만 그 아들네가 이혼을 했다.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이 사라지자 할머니는 마음의 안정을 잃고 상심한 끝에 지병인 당뇨가 심해져 결국 돌아가신 것이다. 마지막엔 아들이 자기 형편도 어렵다고 할머니를 모시지 않는 바람에 불편한 몸으로 친정 언니집에서 더부살이하다가 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어른들은 그러게 예전부터 양자는 들이지 않는다고 했다며 아들 노릇 못한 양자를 욕하면서 참 복도 없고 바보 같은 양반이라고 혀를 찼다. 허풍이 있고 객관적 기준 없이 자기 가족이면 무조건 편들곤 해서 평소 난 그 할머니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삭막한 일생을 듣고 보니 그 정도는 그리 큰 흠이 아닌 것 같다. 남편과 다정한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고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의 흠모나 사랑을 받은 것도 아닌데, 그 정도 허풍이라도 떨어야 사는 재미가 있지 않았겠나 싶은 거다.

몇 년 전인가 보았을 때, 한때 육중하던 몸피가 줄어 홀쭉했다. 아무렇게나 빗은 하얗게 센 머리, 주름지고 수심이 가득한 얼굴, 구부러진 등은 살아온 70여 년의 세월이 허망하다고 말하는 듯했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았을 텐데 이 세상에 와서 일궈놓은 것 하나 없이 말년에 괴로움만 남은 삶.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이름을 남긴다고 해서 덜 쓸쓸할진 잘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 왔다간 흔적 하나 없이 간 할머니의 삶이 슬프다.

 

지난 주엔 대학원 선배의 부음을 들었다. 11년 선배라서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선배이다. 모교 강사로 재직하던 중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아 10여 년 전 캐나다로 이민을 갔는데 작년 중반부터 몸 상태가 안 좋았다고 한다. 한국에 와서 진찰해 보니 하필 폐암이었던 것이다. 수락산 아래 집 하나 얻어 요양중이라는 소식 듣고 찾아가 보지도 못했는데 덜컥 가셨다니 망연하기만 하다. 영안실 영정 사진을 보니 환하게 웃고 있는 예전 모습이어서 울컥 눈물이 솟는다. 마지막 가기 전 만나보았다는 한 선배는 “나 같으면 너무나 억울하고 화가 나서 아우성을 쳤을 텐데, 걔는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더라. 그게 참 놀랍더라”고 전한다.

사실 난 그 선배에게 빚이 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구조교가 됐을 때니 벌써 19년 전 일이다. 당시 조교들은 교양국어 리포트 체크하는 게 주된 일이었는데, 난 ‘문학의 이해’란 과목도 맡아 그 과제도 체크해야 했었다. 다른 조교에 비해 내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담당교수님께 가서 ‘문학의 이해’ 일을 줄여달라고 말씀드렸다. 교수님께서 별 다른 말씀 없이 그러마고 하셔서 난 다 된 걸로 알았는데… 교수님은 그 일을 이 선배님께 시키신 것이었다. 일 년 여 후에(그땐 나도 세상 돌아가는 것과 서열 개념을 좀 안 뒤였다) 이 사실을 알곤 어찌나 그 선배님께 죄송하던지. 갓 들어온 까마득한 후배 때문에 그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괘씸했을까. 그래도 조용히 처리했던 속 깊은 분이었다. 죄송하다는 말도 변변히 못했는데 훌쩍 캐나다로 떠나고 또다시 이 세상마저 떠났으니…….

곱고 부드러운 외모와 성격, 잘생긴 두 아들과 자상한 남편, 경제적으로도 여유 있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삶인데 낯선 이국에서의 삶이 편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모든 면에 섬세한 성격이 병을 불렀을까. 생을 접기에는 이르다는 안타까움을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느끼고 있는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 역시 이처럼 갑작스런 떠남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이루어놓은 것도 변변히 없는데 이제 그만 가야 한다는 선고를 듣는다면 그야말로 벼랑 앞에 선 느낌이지 않을까? 온갖 일들이 떠오르리라. 잘한 일보단 잘못 한 일이나 아쉬운 일이 더 많이 생각날 것 같고, 이젠 사랑하는 가족과 친우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겠지.

문상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강에 들렀다. 무심히 흐르는 강물을 보니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다’고 한 시구가 떠오른다.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삶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겠거니 하면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혜경

<계간 수필>로 등단(98년).

현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