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연습

 

 

                                                                                          金鎭植

 

두루 가족을 갖추고 있는 가장으로서 혼자 사는 연습을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아귀가 맞지 않은 말이지만 사실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아내가 바다 건너 딸네집으로 나들이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옛날 같으면 집안 살림을 맡고 있는 주부가 남편을 버려두고 출가한 딸의 공부를 위해 외손(外孫)을 봐주러 바다를 건너간다는 것은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고, 이런 기미를 보인다 하더라도 가장의 말 한 마디면 쉽게 가라앉힐 수 있는 것이었다. 그때는 이것이 아내의 도리였고 가장의 권위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세상은 너무나 변해 있었다. 이런 엄두를 내는 아내도 그렇거니와 집안 일과는 거리가 먼 학생 신분의 아이들도 엄마의 용기를 지원하고 나섰다. 그러하니 나 또한 옛날 사람이란 핀잔으로 더 소외될 수 없는지라 안으로 삭이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흐름을 도외시하고 내 의견을 그대로 드러내었다면 아마 나는 시쳇말로 우리 가정의 ‘수구파’로 낙인이 찍혔으리라.

악처가 효자보다 낫다는 속담이 있듯이 아내가 없는 집안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때마다 끼니를 때우는 일도 그렇거니와 빨래와 집안 청소 등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달라진 환경은 생활의 변화를 가져왔는데 거추장스럽고 귀찮은 일들은 저만큼 제쳐놓고 간편한 것으로 대체하거나 일상의 목록에서 생략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하니 평소에 좋아하지도 않던 라면 등 인스턴트 식품과 친하게 되었고, 빵 한 조각 물 한 잔으로 끼니를 대신하기 일쑤였다. 뿐만 아니라 속옷을 빨기도 하고 세탁기를 돌리면서 아내의 빈자리와 그 역할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돕는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그들은 집안 일을 나름대로 분담하고 노력하는 듯이 보였으나 오래 가지 못하였고, 아비의 주문은 별로 효험을 나타내지 못하였다. 학생 신분의 구실도 그렇거니와 언니 동생이 서로 미루다 사라지면 그만이었다. ‘가정 교육이 잘못 되었을까’ 하고 살펴보게 되지만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 거짓이 아니라면 이 또한 헷갈리는 일이다.

어쨌든 아버지의 존재는 보잘 것 없이 되었고 그 권위는 세월 저 편의 무덤이 되어버렸다. 이를 세태로 돌려버리거나 부모의 업보로 치부해 버린다면 편한 일이지만 그러기엔 어쩐지 아쉽고 허전함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전연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평소 담을 쌓다시피 한 아이들과 대화가 이뤄지면서 서로의 의견 차를 확인하였고, 아버지의 자리와 길을 새롭게 그려보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생각은 세상의 공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대간의 격차가 있었다. 내가 아이들의 힙합 패션을 이해 못하듯이 아이들 눈에는 낡은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는 아비가 답답한 것이리라. 이런 일은 되풀이되는 것이었고, 그래서 이 나이에 새삼스럽게 불효를 뉘우치고 있다. 내가 그처럼 벗어나려 했던 인습을 오히려 답습하면서 그때의 아버지처럼 아이들에게 물리려 하지 않는가.

그러나 세상은 너무 변해 있었고 경험 많은 연륜을 존경하고 두려워하던 시대는 끝난 듯이 보인다. 아이들이 아니면 생활용품이 된 첨단 기기 앞에서 속수무책이고, 좁은 논밭을 대하던 눈으로는 안팎의 일에 참견할 수도 없게 되었다.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름대로의 길을 찾지 않고는 안분(安分)은커녕 어디 설자리를 찾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전통의 유산일 수 있는 가부장적 사고를 빨리 청산하고, 무슨 책임이나 기대감 따위는 아예 벗어버리고 내 처지와 분수에 맞는 새로운 길을 찾기로 한 것이다.

내가 집안의 짐이 되어서도 안 되겠고, 그렇다고 아내를 믿을 수도 없게 되었다. 아이들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아내의 변화는 뜻밖이었다. 이전에 하던 말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시집보낸 다음에는 외손들 치다꺼리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는데 바다 건너 딸아이의 전화 한 통화에 그 다짐은 봄눈 녹듯 하고 말았다.

나는 생각 끝에 아버지의 입지를 생각하면서 ‘혼자 사는 길’을 다짐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가족이 없는 것도, 특이한 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이 다섯을 가르치고 키워냈으니 남이 보기엔 불편하거나 딱한 모습보다 다복해 보일 것이고, 사실 그렇다고 할 것이다. 아이들이 나라 안팎으로 흩어지면서 제 갈 길을 닦기에 바쁘다. 그런데 이와 비례해서 아내의 역할이 많아지면서 남편인 내 자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내와 아이들은 다른 좋은 말을 준비하고 있겠지만 나로선 나이답지 않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어렵다. 그래서 아무도 기대하거나 믿지 않고 ‘혼자 사는 법’을 익히며 낙도(樂道)를 찾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입고 먹는 일, 어느 것 하나도 자연스러운 것이 없다. 그렇다고 변하지 않는다면 더욱 처지가 난감해질 것이 뻔하니 내키지 않더라도 더 처량해지기 전에 채비를 하자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말로는 나이 들수록 외로움을 견뎌내기가 어렵다고 하나 이 점만은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다. 내 사주에 삼천고(三天孤)가 들었다고 하더니만 그래서일까. 나로선 혼자 있는 것이 그렇게 싫지 않다. 단지 의식(衣食)이 불편하여 먹고 입는 것이 들쑥날쑥이지만 괴로워해야 할 그런 정도가 아니다. 오히려 지족(知足)을 안겨주는 듯이 느낄 때도 있다. 단지 때맞춰 먹고 입는 것이 잘 안 되고 그 뒷처리가 깨끗하지 못하지만 이쯤이야 각오한 것이다. 말같이 쉽지 않겠지만 마음을 다잡아 때를 맞추고 유가(儒家)의 전통에 얽매이지 않으면 된다.

천리 길도 첫 걸음부터라고 하지 않았던가. 원인을 알면 길이 있게 마련이다. 욕심내지 않고 소박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내가 어디를 가든, 아이들이 가사나 효제(孝悌)에 따르지 않더라도 마음 쓸 것이 못 된다. 오히려 가족 공동체의 사슬을 벗어나 자적의 한가함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오늘은 토요일이다. 땀받이 옷 몇 벌을 챙겨 근교의 농막(農幕)으로 떠나는데 하늘 저편에서 한 조각 흰구름이 다가온다. 혼자 산다는 것은 결국 내 인생을 사는 것이지만 아직은 얽히고 설킨 끈끈한 집착이 마음을 산란하게 한다. 삶의 길에 연습은 없는 것이라지만 어차피 미완의 인생일진대 연습 또한 틀린 말이 아닐 성싶다. 집안에서 쓸모를 잃어가는 아버지와 남편의 길이 산전(山田)이 있는 그곳에 열려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