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적 관조(觀照)

 

 

                                                                                   南基樹

 

1.

‘이렇게 써도 되는 것인가?’ 하면서 조심스레 써보았던 글들을 살펴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혼자 짚어 본 적이 있다. 그 중에는 ‘왜 지금 와서야 이런 것이 보이는 것인가?’라는 물음도 있었다. 시간의 경과라는 포괄적인 ‘거리두기’가 있으므로 너더댓 해 전의 글들을 볼 수 있는 자세가 가능해진 것이라는 게 그때의 생각이었다. 시간도 거리임에는 분명하다.

일전에 받은 카드의 소식 가운데서도 이와 유사한 점을 느꼈다.

‘… 학원에서 MCAT.를 가르치고 있는데 그냥 그렇습니다. 복습을 시키는 과정이라 제가 밥을 먹여주는 것 같은데, 나중에 의대생들을 가르칠 때에는 먹여주지 않고 그냥 음식을 던져줄 거예요. 먹든지 말든지……. 그게 제 스타일입니다. …….’

겉 표지에 이르기까지 적어 보내온 그 글에서 받은 첫인상은 거리를 두는 자세 같은 것이었다. 읽는 사람이 겅중겅중 요점만 짚어나가라는 듯한 그 글의 자세가 읽고 난 뒤에는 앙금 없이 개운했다. 필요한 정도 이상의 개입을 요구하지 않고 바라보는 그 글의 거리두기에서 온 여운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물을 대할 수 있는 심적 자세는 일상에서도 요구되는 덕목일 것이다. 마음에는 대상과의 사이에 적당히 두면 언제나 좋은 거리가 있는 것이고, 이런 거리가 지켜지고 있는 글은 마음으로 쉽게 수용이 되는 모양이다.

 

2.

거리두기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라면, 작품을 두고 참석자들이 평자評者가 되어 각기 의견을 개진하는 ‘합평회合評會’ 같은 모임도 그 하나가 될 것이다. 합평의 대상이 되는 작품은 내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모임에서는 합평의 대상 작품에 대해 평자의 견해나 관점이 자연 드러난다. 사람마다 다른 거리에서 형성되는 이런 드러남이 하나의 대상 작품 주위에 여럿 모이게 된다.

한 편의 작품을 합평할 때 무엇보다도 의미 있는 것은 거리두기의 결과로 저자 자신도 자기의 작품에 관련지어 스스로를 바라보게 되는 현상일 것이다. 작품에 포함되어 있는 관점의 주체로서의 자신, 평자의 관점으로 서 있는 자신, 여러 합평자의 세계를 바라보는 자신으로 자기 자신이 나뉘어지고 합평의 결과로서 다시 종합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을 통하여 작품을 대하는 자신에게 새로운 시야가 전개될 수 있는 것이다.

합평회에서는 일종의 대비와 종합의 과정이 진행된다. 작품을 포괄하는 작가의 의식과 관점이 평자들의 의식과 관점에 비추어지고 이로부터 작품의 내용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동안 보다 다양한 관점의 세계가 새로이 형성된다. 이러한 과정을 밟는 동안 눈앞의 대상을 돌려가며 거리를 두고 시야를 조정해 본다는 것은 합평회에서나 맛볼 수 있는 흔하지 않은 유희이기도 하다.

 

3.

작품의 합평에서 대체로 관심을 두는 작품의 요소라면 주제, 구성, 문장, 표현, 문법, 낱말의 선택과 활용 등이 있다. 때때로 시대적 배경 같은 요소가 추가되기도 한다. 이런 방식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작품을 요소적으로 바라보는 자세는 자칫 요소 위주의 규정적인 관점으로 흐르기 쉽다. 작품에 적용할 기준을 택하는 것도 용이하지 않다. 독자 고유의 시선이 흐려질 수도 있다.

한 작품과 그 독자 안에 형성되는 어떤 것을 포괄적인 관계 하에 새로운 조망眺望의 전개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이 질문이 의도하는 것은, 한 작품과 그 작품을 대하는 나 자신과의 관계를 ‘지향적으로 볼 수 있는 어떤 시각’ 즉, 한 작품과 그 작품이 나에게 수용된 바와 내가 원해 온 수필의 어떤 게슈탈트적 모델이 함께 작용하여 새로운 내용(모습)으로 나 자신을 이끌어나가는 일종의 지양적 방식 같은 것이다.

일단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작품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필요한 거리를 두고 작품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려는 자세를 염두에 두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란 어휘, 문장, 표현, 구성, 주제, 통일성 등의 개별적 요소들이 작품의 ‘격’을 위해 내적으로 종합되어 있는 모습을 대상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개별적인 요소들만의 평가를 벗어나서, 궁극적으로 이 요소들의 융합인 작품 전체를 일정한 내용을 갖춘 사물로서 대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향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도 일종의 ‘바라보기’라 할 수 있다.

 

4.

하나의 작품을 대하면 제일 먼저 작품이 몇 개의 맛 혹은 느낌의 그룹으로 나뉘어진다. 맛 혹은 느낌의 그룹이란 맑음, 간결함, 심성의 높낮이 혹은 격, 강인함, 굵음, 섬세함, 내용의 폭과 깊이, 관계의 다양성, 통일성 등과 같이 문장이나 글에 맛을 주는 특성을 말한다. 내가 대하고 있는 작품에서 이런 맛의 위치란 작품의 합평에서 관심을 두는 낱말, 문장… 등 각 요소들의 역할에 비견될 수 있다. 다른 점은 낱말, 문장… 등 각 요소들의 개별적인 완성도를 보는 대신에, ‘작품에서 각 요소들이 전체로 어떻게 어우러져서 글의 맛을 내고 있는가?’ 하고 종합적인 시각으로 보는 데에 있다.

작품 전편의 대략적인 훑음에서 드러나는 문단 간의 균형과 문장에 유지되고 있는 한결 같은 밀도의 느낌이 첫 단계에서 관심을 유지시켜 나가는 역할을 맡는다. 더 읽어나가게 되는 것은 심상(心像)을 펼쳐놓는 어떤    공간이 여기서 스스로 구성되는 경우이다. 이때 공간은 내용들 간의 관계의 깊이와 폭에서 유래한다. 작품이 전체로서 펼쳐지는 이 공간에서 시간은 내용의 공간적 질서나 심리적 흐름이 자연스럽도록 종심(縱深)을 이룬다. 문장들 간의 순서나 연관된 문단들의 내용이 시간적인 균형을 이루며 종심의 형성을 돕기도 하고 변형시키기도 한다. 종심을 형성하는 시간과 사물들을 연결해 나가는 심리적인 흐름이 원근의 요소가 되어 작품의 배경으로 깔리면 작품 전체는 정적인 화폭처럼 고정된다.

작품을 바라보는 자신을 예민하게 의식하게 되는 곳은 이 정적인 화폭 위이다. 이 화폭에서 낱말의 활용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물감을 묻힌 붓 끝처럼 화폭을 채워나간다. 다듬어진 정도, 색깔, 크기, 외연의 폭, 일관성 있는 분위기, 내포의 밀도 등이 분류의 기준을 이루고 그룹을 형성한다.

작품을 대하고 있는 의식은 비로소 이 화폭 위에서 작품의 개별적 평가 요소에 대응하여 의미 그룹을 하나씩 형성해 나간다. 각 의미 그룹마다 가치매김이 따르고 이를 반영하는 가치의 축·기둥이 마련된다. 한 작품에 대한 가치기둥의 수효는 독자가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의 수만큼 많다. 무수히 많은 관점에서 작품을 보려는 독자에게는 무수히 많은 가치기둥들이 그 작품을 대하는 자기 의식의 화폭에 들어차고 가치기둥의 숲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 가치기둥의 숲은 작품을 대하는 독자의 미적 향수의 능력 ─ 이해의 깊이와 폭, 민감성, 관점의 다양성, 미적 자세 등 ─ 에 맞춰서 그 전모가 풍부하거나 빈약하게 드러날 것이다.

개별적 요소에 대한 평가의 최고치와 최저치가 각 가치기둥에서 가치의 상하 폭을 결정한다. 예컨대 낱말이라는 의미 그룹의 가치기둥에서는 낱말들의 활용이 최상일 때와 최하일 경우에 상응하는 가치매김이 활용에 대한 가치의 상하 폭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낱말의 활용 수준이 한결같다면 최상의 활용과 최하의 활용에 대한 가치매김의 차이는 크지 않을 것이다. 요소들마다 의미 그룹에서 이렇게 매김한 가치의 폭으로 가치기둥을 만들고 서로 연결해 나가면 작품 전체에 대해서 하나의 가치용적을 얻는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이런 가치용적은 여러 개의 기둥들로 이루어진 물체의 용적과 같다.

이런 가치용적에서 그 두께가 얇은가 즉 가치의 상하 폭이 작은가, 경사가 수평에 가까운가, 즉 각 의미 그룹마다 완성의 정도가 한결 같은가, 그리고 각 기둥에서 가치매김 한 높이는 높은가, 즉 각 의미 그룹의 수준이 높은가, 이렇게 가치용적의 두께, 수평 정도, 높이 등을 살펴보면 한 작품의 격이나 완성도를 헤아려볼 수 있는 것이다.

가치용적이 두꺼우면 해당 요소의 활용 능력이 한결 같지 못하고 취향도 일정하지 못해서 조잡한 느낌을 줄 것이다. 가치용적의 경사가 심하면 작품에서 드러난 의미 그룹들 간의 완성도가 층져서 균형 잡힌 작품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치용적의 높이가 낮으면 작품의 전반적인 수준이 낮을 것이다. 이 가치평가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숲에서는 좋은 작품일수록 가치용적이 수평을 이루고 두께가 얇고 위치가 높다. 여기서 수필의 문격(文格)은 가치용적의 높이와 그 수평적 상태에 함축되어 있다. 그러므로 가치평가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숲에서, 가능한 한 높은 위치에서 두께가 없는 수평의 면을 얻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수필에 이르는 길이다. 이러한 상태가 ‘수필적 관조(觀照)’의 상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