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回歸)

 

 

                                                                                           柳仁惠

 

 

산으로 올라가는 마을 입구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정자나무다. 사람들이 그늘 밑에 모여 앉은 한가로운 풍경 앞에서 장례 차가 멈추었다. 그들의 시선을 피해 가자 바로 곁에 작은 못이 있어 눈길을 잡는다. 물 위를 더듬으며 밭둑을 걸었다. 행렬은 길게 이어지지만 조용하다. 아무도 말을 하는 사람이 없다. 산 밑에 이르니 굴착기로 올라가는 길을 열어놓았다. 비가 내려 질척한 땅이다. 고무신에 달라붙은 흙을 아랑곳 않고 힘을 내어 오른다. 이 길을 올라가야 며칠 동안의 불안감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이별의 마지막 의식이 치뤄진다. 군데군데 널브러진 나뭇가지가 허둥거리는 발에 걸린다.

땅에 대한 향수는 흙으로 사람으로 만드셨다는 말씀을 이해하고 나서다. 내가 땅으로부터 왔다니 몸 안에서 습기가 사라지면 살점이 부슬부슬 허물어질 것 같았다. 밀가루에 물을 넣고 반죽할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서울의 시멘트 바닥을 오래 딛고 지내자 흙에 대한 갈증이 목에까지 차 올라 있었다. 마침 남쪽 지방으로 갈 일이 생겨 그곳의 땅을 처음 밟았을 때 묘한 흥분은 이상한 징조였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고조시킨 것은 산등성이를 깎아서 길을 내는 광경이었다. 그 길은 황토였다. 황토라기보다는 적토였다. 죽어가는 바다도 살려낸다는 생명의 흙이다. 심장의 붉은 기운이 뭉쳐서 터져나오는 기세를 느꼈다. 흡사 백년지기를 만난 듯 뛰는 가슴은 황홀한 충격이었다.

그때의 두근거림이 전해 왔다. 산 중턱으로 올라가자 아버지를 모실 땅이 이미 깊게 패어져 있었다. 반갑게도 주변에 널려져 있는 흙이 황토인 것이다. 이생의 것은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는 것인지, 마지막 쉴 곳인 양 여겼던 나무 관마저 벗어버리고 얇은 헝겊에 쌓인 작은 몸이 그 속에 넣어진다. 흙으로 온 육신이 흙에 다시 심기는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한 삽씩 흙을 떠서 그 위에 뿌렸다. 이별의 슬픔으로 떨리는 손길이 오히려 매몰차게 보인다. 죄송하고 민망해서 시선을 돌려 먼 산을 보았다. 흙과 함께 꼬꾸라져 묻혀버리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제하며 건너편 산등성이에 맥없이 던져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버지…….

그분은 할아버지의 땅이 키웠다. 잘 다듬어 기름진 땅에 심겨져, 눈부신 햇살과 알맞은 물기를 머금고 곱게 자랐다. 다른 땅에는 적응하지 못했다. 더구나 세상의 척박한 곳으로 옮겨질 수 없어, 우리가 지니고 있던 땅의 기운이 다해진 후에도 시름시름 그 자리에서만 맴돌았다. 다른 세상을 몰랐기에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땅을 지니지 못했기에 결실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땅으로 가시게 되었다니 이런 복이 드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께서 소천하셨다는 전화를 받고 서러움의 한 고비가 지나자 갑자기 ‘어디에 모시나…’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할아버지께서는 막내딸을 출가시킨 후 소유하고 계시던 산에 당신이 묻히실 곳을 미리 마련하셨다. 시멘트로 가묘의 틀을 만들어서 마당 한쪽에서 말려, 소달구지로 싣고 가시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일은 시일이 오래 걸렸기에 그때의 어린 마음에도 깊은 인상으로 심어져 있었다. 친정에 도착할 때까지 산소에 대한 걱정이 슬픔보다 더 답답한 문제로 크게 여겨졌다.

그런데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께서는 아들이 편히 잠들 수 있는 땅을 마지막으로 남겨놓았다. 아버지께서 소천하시기 얼마 전, 아무도 그 존재를 모르던 산이 오래 체납된 세금으로 하여금 가족들에게 나타났다. 세금 통지서는 비장의 카드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하늘로 돌아가서도 아끼던 자식에게 돌아갈 땅을 선물로 불쑥 내밀어 가족들을 놀라게 하고 깊이 감동을 시켰다. 당신이 뿌리신 씨앗을 거두어가신 것이다. 내 뜻은 이것이 아닌데… 라고 후회할 틈도 없이 몰락한 가족들의 자존심을 세우셨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아버지가 누울 땅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적 같은 선물이었다. 그것도 질퍽한 땅 기운이 붉은 색으로 번지는 황토의 넉넉한 자리를 어찌 남겨두었을까.

아버지가 당신이 원하던 길로 힘차게 달려가지 못하고 기운을 꺾어 방구석으로 숨어들었을 때, 할아버지께서는 자식의 얇은 옷가지를 걱정했다. 우선 급한 대로 당신의 옷을 벗어 손자들을 덮으면서, 아들의 추위를 더 가슴 아파했다. 이제는 당신의 땅으로 길러낸 자식을 마지막 남은 땅으로 데리고 가신다. 더 이상 추운 세상에서 고생하지 말라고 따뜻한 황토 이불로 덮으셨다.

땅에 대한 애착은 살아가는 법을 그곳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그것은 농경시대를 지나오면서 우리 민족의 심성에 잠재되어진 땅과의 친화력이다. 땅이 주는 열매에 대한 희열 같은 사랑을 알았다. 우리의 종족 본능을 본질적으로 충족시켜주는 수확의 기쁨을 알았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인하여 키워지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섭리를 순응하는데, 차마 봉분이 만들어지는 광경을 바라보지 못한다. 서둘러 소지품을 챙겨 산에서 내려왔다. 허겁지겁 내려와 다시 정자나무 곁에서 잠긴 물을 바라보며 정신이 든다. 마을 사람들은 집으로 가고 아무도 그곳에 없다.

흰 고무신에 무겁게 달라붙어 있는 흙을 떨어내며 멀리 산등성이를 본다. 이제 아버지의 땅이 된 산을 가슴에 담는다. 그곳의 황토가 주는 따뜻함으로 펄떡거리던 심장이 평안을 얻는다.

아버지 柳敬淳 님의 10주기를 맞이하여.

 

 

 

 

 

류인혜

<한국수필>로 등단(84년). 한국수필문학상 수상(18회).

수필집 『움직이는 미술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