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연凡然의 집

 

 

                                                                                         김훈동

 

그와의 사이를 두고 십년지기라는 말을 쓸 수 있을까. 한 해에 한두 번 만나는 사이를 두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를 일러 십년지기라는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날 그의 집으로 향하는 전철 안에서 이번 해에는 그 한두 번의 만남이 병문안으로 채워진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잠깐 우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곁에 나 이상으로 그의 병환을 아파하는 또 하나의 지기가 없었더라면 걸음에 힘이 없어서라도 나서지 못하였을 길이다.

수원을 향하는 그 길 위에서 우리의 동행을 이야기했다. 글을 매개로 하여 벗이 되어 피붙이처럼 아파진 사람들. 범연과 들꽃 그리고 나 사이를 이루는 삼각 구도를 떠올리며 우리의 인연을 돌아본다.

범연(凡然)은 그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이름이다. 어느 해인가 그는 내게 부채 하나를 선물했다. 그것을 펼치니 그곳에 초록이 주조색을 이루는 산수화풍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그 끝에 작은 크기의 낙관이 찍혀 있었다. 하여 그의 호가 범연인 것을 알게 되어 어쩌다 한 번은 그 이름을 떠올린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을 부르는 이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는 자기 소임을 이날까지 충실히 수행해온 이 시대 직장인의 전형이기에 자기 내면의 정서를 다듬는 글이나 그림 세계로 하여 갖게 된 또 하나의 이름을 내세웠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워낙에 말수도 없는 조용한 성품에 행동 또한 크지 않으니 그의 행적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태어난 경기도 땅에서 지금 반세기 넘는 세월을 살고 있으며, 가까이 부모를 모시고 사는 장자(長子)의 삶을 그리고 한 직장에서의 삼십 년 세월을 보내고 주말이면 산사를 찾아 혼자 정심(精心)의 시간을 가지는 사람이다. 그리고 한 터에서 아이들이 자라 성년이 된 지금까지 22년을 살고 있다니 그의 곧고 바른 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예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에게 병마라니, 누구도 병(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을 그에게서 보았다. 참으로 맑은 물 같은 사람인데 그가 어떻게 병마와 싸워 이 고비를 넘겨줄까를 안타까이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하룻날 날을 잡아 범연을 향한 길을 나선 것이다.

잔서(殘暑)의 끝무렵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연락도 없이 출발하여 전철 안에서 그에게 방문을 알렸다. 환자가 있는 집에 무례인 줄 알면서 미리 연락하면 거절이 필시인데 우리의 간절함만 믿고 떠난 걸음이었다. 수원 역에 내린 우리는 두리번거리며 차를 잡았고, 물어 물어 그가 이십 년을 넘게 살고 있다는 그 골목에 이르렀다. 이제는 세상 사람 모두가 어쩌면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아닌가 할 만큼 아파트 삶이 떠오르는 일상에서 그의 집은 주택이 밀집한 골목 어귀에 있었다.

우리 연락을 받은 내외분이 대문 앞에 나와 있었다. 두 분의 환한 표정 때문이었을까. 그곳을 방문한 두 친구는 순간 목적을 잊어버리고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이미 떠들썩하니 말문을 열고 있었다.

“아, 집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환호와 더불어 탄성이 나왔을 동시에 내외분 뒤편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범연이 “어, 어. 그만. 순돌아, 손님들이셔” 하며 집아이를 부르듯 순돌이를 들어 안는다. 그제서야 나는 그가 환자임이 떠올라 “이 선생님, 힘드시지 않으세요” 하고 여쭈니 괜찮다고 말한다.

겉으로 봐선 그저 보통의 이층 양옥(洋屋)이었다. 그러나 현관을 향한 계단을 올라 문을 들어서면서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의 집은 산사의 아늑한 선방(禪房) 같았다. 크게 구획지어진 두 개의 큰 방이 있을 뿐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가구가 하나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방안이 오히려 가득 차 보이는 정경은 조금 전까지 만났던 세상의 잡다한 풍경들을 잠재우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대문을 들어설 때 짖어대던 순돌이 때문에 미처 살피지 못했던 앞마당 풍경이 커다란 창을 통해 한눈에 들어왔다. 작은 마당에는 정갈하게 물이 담겨진 돌확에 애기 수련과 바위취의 둥그런 어린 잎들이 귀엽게 옹기종기 물을 머금고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 선 이층 집들 틈에서 하늘을 좀더 많이 차지하려고 기를 쓰고 자라 올라간 왜목련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그 형상이 한 뿌리에서 두 가지가 자라 포옹하듯 서로 얼싸안고 있어서 가족들의 삶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나무 뒷켠으로 일 자로 이어진 담벼락에는 담쟁이덩굴이 초록 무늬를 이루고 있고, 다시 그 한 옆으로 작은 대숲을 볼 수 있는 그곳은, 한 아름드리를 보이는 목련나무에서부터 가녀린 한 줄기로의 식생을 보여주는 식물까지 공존하고 있는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여염(閭閻)집에도 솟대를 세우던가. 그곳에는 그가 직접 나무를 깎아 새 모양을 만들어 대나무 대 위에 세운 서넛의 솟대가 희망처럼 솟아 있었다.

가족의 수가 분명 넷이라는데 그 어디에서도 살림의 냄새가 묻어나지 않았다. 창 마다에는 모시로 된 천으로 그저 가리개 정도의 모양으로 드리워져 있고, 특징이라면 고운 빛으로 날염이 되어 있거나 조각이 이어져 있거나 가는 실로 천 한 구석에 수가 놓여져 있는 정도였다. 이제 둘러보는 것을 멈추고 눈높이를 내려 자리를 정하니 바닥에 붙은 듯이 뉘여져 있는 다탁茶卓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 떡판으로 쓰였음직한 그 위에 역시 하얀 모시가 깔려져 있고 부채가 놓여져 있었다. 보이는 것마다에 우리 두 사람은 감탄했다. 모시 천 한 켠에 수놓인 나팔꽃 무늬를 이쁘다 말했더니, 대학에 다니는 따님이 손 선생 수필집에 나오는 그림을 보고 놓은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집을 찾을 때처럼 이번에도 두 사람은 두리번 두리번 사방을 돌아보았다. 작은 액자들, 창가에 놓인 촛대들, 다탁 옆에 놓인 종이 상자 ……. 이번에는 마실 것이 담긴 찻잔을 보며, 과일이 담겨져 나오는 과반을 대하며 연신 탄성을 지었다.

본말本末이 전도된 셈이었다. 우리는 병문안을 간 것이 아니라 집구경을 간 사람들 같았다. 그만했으면 됐을 것을 본격적으로 살폈다. 큰 구획으로 둘로 보이던 공간 옆으로 작은 방이 있었다. 문은 처음부터 모두 열려 있었다. 고개를 빼고 들여다보니 이번엔 선방이 아니라 수사들의 침묵의 집을 연상시키듯 철제 침대 하나, 작은 크기의 티브이가 있고, 나무 안락의자 하나 그리고 아무런 꾸밈없이 세로로 정리된 책들이 있을 뿐이었다.

이층은 또한 어떠하던가. 크게 구획하자면 책과 음악과 그림이 있었다. 그 자신이 수묵을 추구했지만 따님이 그림을 전공하는 터라 곳곳에 작품의 흔적이 놓여 있고, 피아노와 음향기기가 놓여 있고, 책들이 빼곡히 꽂혀진 서재가 있는 열린 공간이었다. 서재에 들어서서 창 쪽을 살피니 그 너머에 찻상이 놓여져 있어 언제라도 찻물을 다릴 수 있는 다예(茶禮)의 공간이 자연스럽게 마련되어 있었다. 또 그 너머엔 아래층에서 연결되는 정원의 풍경이 이어져 유리창엔 저절로 한 폭의 그림이 따랐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세상에 그의 집보다 크고 화려한 집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처해진 환경에서 그렇게나 고졸(古拙)한 품위를 갖추고 사는 이는 흔치 않으리란 생각이 스쳤다.

‘범연! 이렇게 살았군요. 늘 평화로이 보이더니…….’

건공중에 그렇게 말을 던졌을까. 작은 소리로 우리를 안내하는 그와 남편의 생각을 맞추고 살았다는 ‘안해’가 얼마나 크게 보이고 미덥던지 모른다. 하여 우리의 병문안이라는 허울은 끝내 구호에 그쳤고 그날은 내내 주인 내외와 객이 흔연히 어우러졌던 하루였다.

온통 사위가 푸르름으로 둘러쳐진 범연의 집에서.

범연, 그에게서는 언제나 선비의 체취가 묻어났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피상일 뿐 그의 집에 발을 들여놓고 나서야 자연스런 발로임을 알 수 있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의 이상(理想)을 그저 이상으로 가지고 살 뿐 그것을 실천적 삶으로까지 행동하는 사람을 내 주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범연(凡然-보통사람), 그는 거기에서 그렇게 살고 있었다.

 

 

김훈동

<수필공원>으로 등단(91년).

수필집 『사람과 사람 사이』, 공저 『지금은 부재중』, 『숲을 바라보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