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정낭

 

 

                                                                                강인희

 

정낭은 제주도의 옛날 대문이다.

아이의 교과서에서, 각 고장의 향토성이 배인 옛 것을 알리는 프로에서 제주도 정낭이 소개되면 무척 반갑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정낭이 그리움으로 가슴 가득 몰려오기 때문이다.

노란 유채꽃과 오염되지 않은 푸르른 바다가 장관인 제주 해안 일주도로 변을 지나다 보면 정낭을 볼 수 있다. 제주 특유의 검은 돌들이 밭과 도로 경계선으로 쌓여 있고, 이 돌담 따라 드문드문 나무 막대가 가로로 걸쳐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정낭이다.

제주 토박이인 내가 정낭을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초등학교 때 새어머니께서 오신 후였다. 친가나 외가 모두 제주시여서 시골에 갈 기회가 없었는데, 새어머니의 고향이 토끼섬이 있는 시골이라 새 외가 마을에서 정낭을 볼 수 있었다.

단명하신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두 분의 모습을 뵌 적이 없는 우리에게 새어머니께서는 “쯧쯧, 에미 복이 없으면 할아버지 복이라도 있든지……” 혀를 차시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그리고는 여름방학 때, 우리 형제들의 옷을 말끔히 입혀 시외버스를 태우고 시골 외가로 데려가셨다. 모든 게 생경해서 쭈삣거리는 우리를 무척 반기며 다정다감하게 대해 주셨던 새 외갓집 식구들.

삼십육 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지금도 옛날 서당 선생님들이 쓰셨던 모자에 곰방대를 문 외할아버지의 인자한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다. 새어머니가 자식을 낳지 못하는 분이라 엄밀히 따지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손자, 손녀인데도 “어서 오너라. 수선이 새끼들” 하시며 우리 손을 꼭 잡아주셨던 외할아버지. 수선이는 새어머니의 이름이다.

생모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한 나는 새 외갓집에서 말이 없고 고집이 센 아이로 통하였다. 누가 말을 붙여도 상대방이 무안할 정도로 빤히 쳐다보며 눈을 흘기곤 했었다. 오죽 했으면 반벙어리 아니냐고 수군거릴 정도였으니. 이런 나를 말없이 지켜보시던 외할아버지께서 어느 날 외양간에 가서 여물을 주자고 하셨다. 나에게 소와 말의 등을 어루만져보게 하시며 말씀하셨다.

“말 못하는 가축들도 저 귀여워하면 꼬리를 치며 감사할 줄 아는구나.”

한 번, 두 번, 세 번 외양간에 가는 횟수가 늘수록, 등을 어루만질 때마다 좋아하는 소와 말의 눈을 보았다.

여름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 연장 상자를 외양간에서 들고 오신 할아버지께서 우리를 정낭 앞으로 부르셨다. 그리고 나무 막대를 다듬으시며 제주의 옛날 대문에 대해 소상히 말씀해 주셨다.

나무 막대가 몇 개 걸쳐졌느냐에 따라 방문객이 집주인의 귀가를 알 수 있는 정낭은 기둥과 막대로 이루어졌다. 집 입구 양쪽에 기둥을 세우는데 제주의 돌이라고 불리는 현무암 바위나 굵은 나무를 다듬어서 사용한다. 이 기둥에 세 개의 구멍을 뚫는다. 구멍에 나무 막대가 한 개 걸쳐져 있으면 집주인이 가까이 있어 금방 온다는 뜻이고, 두 개이면 조금 먼 곳에 있어 얼마 뒤에 오고, 세 개이면 아주 먼 곳에 있어 시간이 꽤 지나야 집에 온다는 표시다. 안에 사람이 있으면 나무 막대가 한 개도 걸쳐져 있지 않아 들어와도 좋다는 뜻이다.

집과 주인을 대신하는 대문처럼 사람에게도 대문과 같이 열린 사람, 닫힌 사람이 있는데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하셨다. 열린 사람이 되려면 눈, 입, 귀, 마음을 활짝 열어야지 고집을 피워 입주둥이가 오리처럼 튀어나오면 짐승만도 못하다고 하셨다. 우리에게 주인 입장이 되어 구멍에 나무 막대를 끼워보게 하시며 정낭처럼 열린 대문, 열린 사람, 열린 마음으로 무럭무럭 크라고 하셨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간곡히 말씀하시는 할아버지께 고개를 한참 끄떡거렸다.

그 뒤, 수업 시간에 정낭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기가 죽어 교실에 있는지조차 모르던 내가 번쩍 손을 들어 자신 있게 발표해서 친구들의 우레 같은 박수와 선생님의 칭찬을 한몸에 받았다. 수업 내내 얼마나 우쭐댔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최초의 어린이 여자 회장이 되어 폼을 잡고 다녔다.

적개심과 고집으로 굳게 닫혀진 손녀의 마음을 자연의 문 정낭과 외할아버지의 정으로 열어주신 분. 삭막한 아파트 숲에서 동, 호수만 다른 꼭 같은 색의 현관문들을 볼 때면 나는 외할아버지의 따뜻한 마음과 제주의 정낭을 생각한다. 그리고 저 현관문들을 부수고 정낭처럼 자연의 대문을 달면 도시인들의 각박한 마음이 순수해질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물론 밤도둑들은 쌍수를 들어 환호하겠지만.

갈매기처럼 나에게도 꿈이 있다. 지금은 정낭이 내 안에 마음의 대문인 채로 있지만, 고향인 제주에서 노후를 보내게 되면 귤밭 한쪽에 집을 지어 대문은 정낭으로 하리라. 그리고 손자, 손녀 모아놓고 제주 옛 대문의 역사와 사람이 사람으로 인해 얻는 자신감과 따뜻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까지도 이야기해 주리라. 외할아버지께서 내게 그랬듯이.

 

 

 

강인희

<계간 수필>로 등단(20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