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주사(將進酒辭)

 

 

                                                                                          민명자

 

새벽,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서울역 광장은 여느 때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쓸쓸한 느낌표를 남긴다. 여기저기 웅크리고 앉아 있거나 간혹 언성을 높이는 노숙자들, 널브러진 신문지 조각과 소주병, 그런 것들은 언제부터인가 광장과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은 비 탓에 역사 입구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광장의 빗줄기를 쳐다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더욱 처연해 보인다.

역사 안에서는 청원경찰들이 의자에 앉아 잠든 노숙자들을 일으켜 세우기에 바쁘다. 그녀는 오늘도 여전히 단정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다. 다소 마른 체구에 가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그녀는 역사 안의 화장실에서 곱게 화장을 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새벽 기차를 타는 내가 우연히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그녀와 여러 번 마주치고 나서 알게 된 일이다. 거울 앞에서 눈썹을 그리던 그녀가 긴 머리를 뒤로 틀어올리면서 무어라고 말을 할 때, 처음에는 내게 말을 거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곧 그것이 혼자만의 중얼거림이었고, 그녀는 늘 그렇게 누군가 자기 안의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꽤 나이가 들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큰 눈은 유난히 투명하고 빛이 났다. 어디서 잠을 자는지, 어디서 오는지 알 길 없지만 오늘은 베이지 색 점퍼, 바지에 검정색 티셔츠를 깨끗하게 차려 입고 있다.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여행을 떠날 사람처럼 차비差備를 하고 앉아 열심히 자신에게 말을 하고 있다. 그녀는 자기 안의 타인과 매일 환상 여행을 떠나는 듯하다.

개찰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개찰구를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나도 그녀의 모습을 뒤로 하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 앞으로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 하나가 비틀거리며 걸어 나간다. 새벽녘인데 그렇게 취해 있는 것을 보니 아마 밤새도록 술을 마신 모양이다. 저 사람 옆에 앉아서 갈 사람은 누구일지 몰라도 곤혹스럽겠다는 생각을 하며 부지런히 그 앞을 지나 열차에 올라 자리를 찾아 앉는다. 그런데 잠시 후 그 남자가 내가 앉아 있는 객차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는 힘들게 자리를 찾는다. 그의 지정좌석은 바로 내 옆자리였다.

열차가 플랫폼을 빠져나가기 시작하고, 잠시 후 그 남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줌마, 어디까지 가요?”

역한 술 냄새가 훅 끼쳐왔다.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밖에는 빗줄기가 제법 굵어지고 있었다. 유리창에는 동그란 물방울들이 긴 꼬리를 달고, 마치 정자가 유영遊泳을 하듯 잽싸게 몸을 흔들며 곤두박질 치듯 흘러내린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내 다른 물방울들과 만나면서 흔적도 없이 밑으로 사라지고 만다. 인간이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나 여러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고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 여름 환선굴에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동굴의 천장을 뚫고 쏟아지는 듯한 폭포의 기세에 압도되면서 조물주의 위대한 힘을 생각했었고, 그 힘에 의해 알 수 없이 먼 시공으로부터 와서 다시 어두운 암벽에서 새로운 생을 시작하는 물의 여정이 인간의 여정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인간은 맨 처음 한 방울의 물처럼 맑은 영혼으로 세상을 연다. 꿈길처럼 빠른 계곡을 지나, 마을과 마을을 돌면서 세상 사람들과 섞이고 강까지 이르는 동안 나무의 생명이 되기도 하고, 폭우에 떠밀려 흙탕물에 뒤집히면서 낯선 길을 가기도 한다. 그러나 물은 가야 할 길을 미리 알지 못한다. 다만 주어진 길을 따라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면서 굽이굽이 여울을 돌다가 침묵과 같은 심해의 바닥에 몸을 누일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어느 길로 왔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게 된다.

빗줄기를 가르며 새벽의 어둠 속을 달리는 기차는 마치 동굴 속을 가는 듯하고, 차창에 부딪치는 물방울들은 여전히 만나고 흩어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밑으로 흘러내린 물들은 제각기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때 갑자기 남자의 생경한 외침이 잠시 동안의 상념을 몰아내면서 객차 안의 정적을 깬다.  

“알 라 뷰(I love you).”

자신은 세상 사람들을 전부 사랑하는데 세상이 자신을 배신한다면서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연신 “알 라 뷰”라고 외친다.

“내가 바다 건너가서 돈도 많이 벌어 왔다구요.”

푸념의 맥락으로 봐서 남자는 근로자로 해외에 나가서 돈도 좀 벌었고, 아이들과 부인도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금은 모두가 떠나가버린 듯했다. 그는 스스로를 실패한 인생이라고 했다. 승객들은 눈을 감거나 혹은 신문을 펴든 채 무심한 듯 앉아 있다.

침묵하는 승객들과 나 그리고 이렇게 내 옆에 앉아서 세상에 대고 푸념을 하는 남자, 지금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역사 안의 그녀, 우리는 지금 어느 길목쯤에서 만나고 흩어지는 물방울들일까. 가는 길은 서로 달라도 종착지에 이르면 모두 이승의 저편에 올라 무념(無念)의 구름이 되었다가 살아 남은 자들의 머리 위에 다시 긴 윤회의 빗줄기로 내리게 될 것이다.

생각하면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여정은 길고도 힘든 것이라 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장춘몽(一場春夢)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일찍부터 그 무상함은 널리 풍류의 대상이 되어 왔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라는 속요(俗謠)가 있는가 하면, 정철은 『장진주사將進酒辭』에서 물의 여정과 같은 인간사의 고뇌를 술로 푼다.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을 꺾어 술잔의 수를 세어가면서 무진무진無盡無盡 술을 먹자고 한다. 죽은 다음에 거적에 덮여 지게 위에 묶여가거나, 곱게 꾸민 꽃상여(流蘇寶帳)에 실려 만인이 울며 따라가거나 간에 억새풀, 속새풀, 떡갈나무 숲에 가면 누구 하나 술 권할 이 없고, 무덤 속에서 뉘우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권주(勸酒)의 이면에는 세상사에 대한 짙은 페이소스와 흔들림에 대한 초탈의 철학이 숨어 있지만 세상의 잡다한 일은 그의 풍류에 묻혀버린다. 생각하면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으며 가는 이가 누가 있을까.

 

승무원에게 몇 번 주의를 들은 남자는 내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어디론가 자리를 뜨고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동안의 일이었지만 그의 기억은 오래도록 남는다. 그는 오늘도 팍팍한 세상사의 시름을 술로 달래고 있을까. 역사 안의 그녀와 남자. 내가 가는 세상의 여울목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땅을 힘껏 박차고 큰 물줄기로 솟구쳐 오를 수 있기를 바래본다.

 

민명자

<계간 수필>로 등단(2002년). 계수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