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뒷모습

                                                                                                                 

                                                                                                    김의숙

  한여름의 수해 이야기는 이미 지난 일인 양 하늘은 맑고 높기만 하다. 모든 것이 바쁘게 가을을 향해 가고 있다. 매미가 울던 포도나무 가지도 곁에 함께 자라던 수세미 넝쿨도 기력을 다한 듯 영 맥이 없어 보인다.

여름내 즐거움을 준 수세미 넝쿨을 어루만져 본다. 친정어머니의 천식이 심해져 대학병원엘 다니게 되면서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민간요법을 떠올리게 되었다. 어린 수세미를 꿀에 재어두었다 한 숟갈씩 먹으면 천식에 좋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른 아침이면 오이 자라듯 밤새 자란 수세미를 찾아내는 일은 퍽 신선한 일이 되었다. 수세미를 썰어 꿀 병을 채워드리는 재미로 지냈다. 그리고 어머니도 정성껏 드시는 재미로 한여름을 지냈다고 하셨다. 여기에는 매일 아침 물을 주고 비료를 준 남편 덕이 숨어 있기도 하다.

 

한가위를 지낸 뒤끝이라 높은 하늘만큼이나 마음이 한가롭다.

병원엘 다녀오는 길이라며 어머니가 오셨다. 상태가 아주 좋아졌으니 무슨 일이냐고 오히려 의사선생님이 물으셨단다. 어머니는 상기된 모습으로 우선 옥상부터 가보자 하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얼마 지나지 않았건만, 새로 달린 수세미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잎 사이로 숨어 있는 꼬부라진 것을 두어 개 찾을 수 있을 뿐이다. 비료를 주고 물도 열심히 주었건만,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 탓인가 보다.

“이제 그만인 모양이다.” 어머닌 못내 아쉬워하시는 눈치다. 따사로운 가을 햇볕은 집안 가득하거만, 어머니의 얼굴에는 그늘이 어린다. 베개 둘을 마주하고 어머니와 눕는다. 금세 어머니는 가물거리는 눈을 애써 뜨신다. 그 모습이 어린아이 같다.

“엄마, 자장가 들려줄까?”

어머닌 빙그레 웃으신다. 늘 즐겨 듣는 노래를 틀어드린다.

‘제비꽃이 핀 언덕에 햇빛 따스히 비칠 때 / ```제비꽃 맑은 이슬에 어머니 눈빛이 맴도네…` / 제비꽃이 핀 언덕에 바람 얌전히 모일 때 / 제비꽃 가는 손목에 어머니 목소리 감기네…….’

 

노래는 끝났다. 한참 만에야 살포시 눈을 뜨신다. 눈물이 살짝 고인 듯한 눈으로 웃으신다.

“나, 우리 어머니 만났다! 하얗게 눈이 내린 겨울날인데, 가마솥에 세숫물 데워놓고, 그 솥뚜껑 위에 옷을 얹어 데워가지구, 얘야! 식기 전에 입어라 하시며 나를 깨우시는 거야.”

단잠을 자고 난 아이처럼 어머닌 편안하고 만족스러워 보인다. 베개를 당겨 눈을 마주한다. 당신의 어머니와의 옛 이야기를 길게 길게 이으신다. 나도 덩달아 외할머니와의 어릴 적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해가 지면 서글프다며 어머니는 가방을 챙겨 나서신다. 당신 자리가 편하다고 한사코 가신단다. 팔십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처지가 같은 여학교 동창생과 자그마한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고 계신다. 가끔 내 친구들과 노후생활을 이야기하게 될 때면, 그런 생활도 괜찮다고들 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정말 좋으신지 그건 모를 일이다.

“얘야, 니 모습이 편안해 보이는 구나.” 어머닌 못내 자식 걱정이시다.

배웅을 하려는 나를 대문 안으로 밀어넣으며 끝내 마다하신다. 당신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는 것 같아 싫다는 것이다. 구부러진 어머니의 뒷모습이 희미해질 때까지 문 밖을 내다보며 서성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