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행복하기

 

                                                                                                   金男順

얼마 전에 앞을 못보는 아버지가 두세 살쯤 된 아들을 혼자서 키우는 모습을 TV에서 봤다. 어린 아기도 앞을 볼 수 없다고 했다. 앞 못보는 아버지는 아들의 시력을 찾아줄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하루에 한끼는 굶는다고 했다. 빙판길을 수없이 넘어지고 부딪치며 익힌 자전거를 끌고가는 그의 모습은 눈덮인 들판에 홀로 선 외로운 겨울나무처럼 보였다. 오로지 아들을 위해 험한 일을 가리지 않는 한 아버지의 삶은 눈물겹고도 아름다웠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아들을 껴안고 어르는 것을 보며 누가 모성(母性)만 강하다고 하겠는가. 모성보다 더한 부정(父情)을 느끼는지 아기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작은 방안에 가득했다. 인간 승리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장면이었다. 그들 부자父子를 보며 행복은 스스로 만드는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행복한 조건을 갖추었어도 스스로 행복을 느끼지 않으면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별다른 취미도 없이 날마다 같은 반복되는 무미건조한 삶에 회의가 들던 참이었다. 가라앉은 기분을 바꿔볼 의욕도 없이 시간만 나면 TV 앞에 멀거니 앉아 있기 일쑤였다. 노년에 접어들면서 생기는 우울증인 모양이었다.

이런 밋밋한 생활을 언제까지 이어갈까 하는 자조적인 마음으로 지냈기에 시력을 잃은 부자父子의 눈물겨운 생활을 보면서 안이한 감상에 빠져 잠시 거들먹거렸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육신이 멀쩡하면서 멍하니 보내는 인간치고 잘된 사람 못 봤다던 어머니의 질책이 들리는 듯했다.

소시민의 일상에 어떻게 감격과 흥분이 있는 사건이 날마다 벌어지겠는가. 그래도 하루를 보내며 기분 좋은 일, 즐거운 일 한두 가지 정도는 생기게 마련이다. 새벽에 현관 앞에 신문이 가지런히 놓였을 때는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바람에 날려 아파트 복도에 흩어져 있는 광고지들이나 신문 낱장을 일일이 주워본 사람이라면 이해하리라.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목이 말라서 냉장고 문을 열고 보리차가 가득 든 물병을 꺼낼 때의 기쁨. 외출할 때 갈아 신은 구두가 발에 맞아 편하다든지, 안면 있는 이웃과 반가운 인사를 나눌 때 한없이 즐거워진다. 이런 소소한 일상의 일들이 하루를 행복하게 한다.

공기나 물처럼 늘 존재하기 때문에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일들`--`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두 발로 다닐 수 있고, 안내 표지를 읽고 어디든 찾아갈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일상의 일을 어느 날 불현듯 할 수 없게 된다면 참으로 난감하리라. 마치 운동화 끈을 맬 때는 손과 발의 쓰임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가 손발을 쓸 수 없을 때야 비로소 그 작은 행동이 주는 기쁨을 알게 되는 것처럼.

지하철 승강장에 도착하자마자 전동차가 달려와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탔을 때, 정액권의 잔액이 조금 부족한데도 개찰구를 통과해 나올 때의 유쾌한 기분. 책꽂이에서 불쑥 뽑아든 책갈피에서 몇 장의 고액 지폐가 나왔을 때 큰 횡재라도 한 기쁨에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행복하기로 마음먹으면 이렇듯 행복할 일이 사방에 깔려 있는 셈이다.

예전에 좌골신경통을 앓았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고마움을 느낀다.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고통스러웠을 때 엘리베이터가 있는 고층 아파트로 이사하기를 얼마나 바랐었던가. 지금은 완행이지만 변함없이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를 매일 몇 번씩이라도 타고 드나드니 행복한 일 아니랴. 그런데도 삶이 무미하다느니, 살맛이 어떠니 하는 자체가 행복에 겨운 푸념임에 틀림없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유명한 성경 구절이 있다. 일상생활 모두가 행복한 일이니 하나부터 열까지 감사하라는 말이리라. 작은 일에 고마워하는 마음이 곧 행복임을 어찌 모르랴만, 소유한 행복을 자꾸만 하찮게 여기는 것이 문제인 듯하다. 현재를 만족하며 살려면 어느 정도나 수양을 쌓아야 할지 내게는 여전히 수련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스스로 행복하려면 운동처럼 습관을 들여야만 될 것 같다. 행복한 나를 만드는 일은 내가 직접 해야 할 몫일 뿐 누가 대신 해주기를 바라서는 안 됨을 늘 스스로 되새겨야겠다.

자잘한 일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하면서도 종종 나의 삶이 보잘것 없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조용히 자연의 언어를 몸으로 표현하는 겨울나무를 생각한다. 가진 것을 다 떨구고 매서운 추위를 견딜 만큼 견뎌내며 서 있는 나무. 따스한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안으로는 희망과 행복을 품고 있을 겨울나무의 의지를 생각해 본다. 봄이 되면 지난 겨울의 혹한을 이겨낸 기쁨을 새싹으로 틔워내지 않으리.

아들을 위해 온몸에 피멍이 들어가면서도 즐거이 노력하는 눈먼 아버지의 정성으로 봄이 되면 아기도 시력을 되찾기를 바란다. 나 또한 유치한 감상에서 벗어나 겸손한 마음으로 연록의 옷을 입은 나무들 속에서 내게 주어진 행복을 감사하리라.

 

 

 

한국문인협회, 이대 동창문인회. 수필산책문학회 회원.

<수필공원>으로 등단(89년). 수필집 『백번의 효력』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