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장이 되면

 

                                                                                                  오덕렬

 새 학년도를 설계하는 2월이다. 나는 지금 임지가 결정되기 전에 학교장의 입장이 되어 본다. 한 학교의 경영을 책임지고 부임하면 어떻게 할까 하고.

교직 생활 30여 년, 실로 짧은 기간이 아니다. 그 동안에 있었던 이런저런 상념들이 ‘학교 경영에 참고하시오!’ 하면서 호수에 물안개 일듯 피어난다. 오랜 학교 생활에서 터득한 것, 교육청과의 관계에서 느낀 것, 선임 학교장의 모습에서 보고 들은 것, 길 가다가 문득 생각난 것, 편한 마음으로 있을 때 스쳐간 것…….

의젓한 학생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기초 생활 질서가 몸에 배고 고운 품성을 가진 학생. 잠재능력이 계발되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고, 자기의 생각을 소박하게 글로 표현할 수 있는 학생. 그러면서 어떤 의제로도 회의 진행을 잘할 수 있는 학생들이다.

이런 학생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며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 주려 애를 쓰는 교사. 잘한 점을 찾아내어 칭찬하며, 미숙하고 뒤지는 학생의 손을 잡아주는 교사. 성실을 몸소 실천으로 가르치며, 생활에서 학생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교사의 모습을 그려본다.

학생상과 교사상을 떠올리다 보니 학생들에게 큰 꿈을 심어주고, 생활의 지혜를 열어주며, 선생님들의 능력과 인격을 믿고 존중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우리의 장래를 보장할 학생이요, 학교 교육의 성패는 교사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서 삐삐가 사라진 지 오래다. 핸드폰도 성능과 디자인 따라 몇 차례 바뀌었다. 그런데 학교는 종전의 전화기를 그때 그 자리에 놓아두고 있지나 않은지 모를 일이다. 그러다 보니 빠른 변화를 좋아하는 학생들은 학교 생활에 흥미를 잃었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고, 머리 아프게 학습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조차 싫어졌다. 공부를 굳이 해야 할 목적도 뚜렷하지 않다. 구속을 싫어하고, 체벌에는 민감하여 자칫하면 경찰에 신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터넷 사이버 세상이다. 클릭 한 번이면 세상이 곧 바뀐다. 그러니 교실이 예전 같지 않아 ‘교실 붕괴’라고 걱정들이다.

붕괴되어 가는 교실의 모습을 우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한 점 바람의 방향을 읽어내면 합리적인 치유책은 거기에서 싹틀 것이 아닌가. 교실 붕괴의 기미는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데서 감지되었다. 교육이 본질을 살리지 못하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이런 모습이 교육의 위기로 비쳐져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밑에서보다 위에서, 안에서보다 밖에서 시작된 교육 개혁은 지금도 삐걱빼각 소리를 내면서 진행중이다.

교육 개혁은 ‘교육 제자리 찾기 운동’이 아닐까. 교육이 제자리를 찾으려면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요, 신뢰 회복은 교사들의 마음씀이 그 요체가 아니겠는가? 솔직하고 뜨거운 가슴으로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자존심이 보호받으면 교육의 병을 치유하는 약이 될 것이다.

교육 없이는 우리의 장래도 없음을 우리는 잘 안다. 교육이 걷는 길은 좀더 나은 길, 좀더 값진 길이어야 하겠다. 이런 길은 먼 곳에 있지 않을 것이다. 성현들은 생활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도道가 아니라고 가르쳤다. 항상 귀를 열고, 눈을 크게 뜨고, 그 길에 묻혀 있는 보석을 발견하려 힘써야 하겠다. 가다가 길을 잃거나 길이 막히면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하는 여유를 가질 일이다. 그리고 고독하게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는 어느 쪽이 더 교육적인가, 어느 쪽이 더 인간적인가, 이렇게 두 잣대로 재볼 것이다.

학교는 학교장을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교육 환경의 변화를 주도하고, 교직원의 인화 단결을 통한 합의된 비전을 창출하는 학교 경영을 생각해 본다. 그러면서 지역 사회와 교육 가족이 함께 일구어가는 투명하고 특색 있는 학교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선인들은 관리가 되면 청렴(淸), 신중(愼), 근면(勤), 이 세 가지 덕목을 마음에 새겼다. 이제는 그 교훈을 잊었는가. 커 보이던 분들이 자칫하면 어느 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부자유스런 몸으로 뉴스의 주인공이 되어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다. 실망이 큰 것은 일상 생활에서 신뢰가 무너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진정한 지도자, 작은 영웅을 바라는 마음에서다. 일생 쌓은 명예의 탑이 한순간 기우뚱 넘어지는 모습이 남의 일이 아닌 것만 같다.

학교장은 교수·학습의 지도자, 교육 개혁의 선도자, 학교 경영의 전문가여야 한다고들 말한다. 나는 그렇게 거창한 이야기에는 벌써 기가 죽는 편이다. 그러나 학교장이 되면 작은 일도 큰 일로 알고, 내가 바르게 가야 할 길(道) 속에 묻혀 있는 보석을 캐내면서 담담히 걷겠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길의 본질을 벗어나지 않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