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평> 

이원수(李元壽)의

<나그네 수첩> 중

 ‘살구꽃 같은 동행’

 

일  시 : 2002년 12월 21일

장  소 : 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 인원 : 문우회 회원 36명

                계수회 회원 12명

사  회 : 유경환

정  리 : 최순희

 

 

사회 : 안녕하십니까? 예고대로 <계간 수필> 제31호, 2003년 봄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합평 작품은 아동문학가 이원수李元壽(1911~1981) 선생의 수필 ‘나그네 수첩’입니다. 원래 짧은 글 3편으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만, 오늘은 시간 제약으로 그 중 ‘살구꽃 같은 同行’만 살펴보고자 합니다. 6시간 동안 아무 말도 안 나누고 동행한 사람과 1시간 동안 동행했지만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간 사람을 대비시킨 구성입니다.

오늘 지정 토론자로는 김형진·유혜자·주연아 선생님, 이렇게 세 분을 모셨습니다. 사회자는 이 세 분에게 배심원의 자격을 드리겠습니다. 배심원들은 다른 회원들이 다 말씀하신 다음 각자 연구해 오신 내용으로 정리 발언을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이원수 선생은 첨부해 드린 연보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1911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15세가 되던 1925년에 방정환 선생이 주재하는 <어린이>지에 동요 ‘고향의 봄’을 발표하면서 등단, 윤석중 선생 등과 동인 활동을 하신 아동문학가입니다. 1927년에 마산 출신 작곡가 이일래 선생이 ‘고향의 봄’에 곡을 붙였는데, 이분은 우리가 다 잘 아는 ‘산토끼 토끼야 어디로 가느냐…’ 하는 그 곡도 작곡한 분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는 ‘고향의 봄’은 이일래 작곡이 아니라 홍난파 곡입니다. ‘고향의 봄’은 토론토나 뉴욕이나 중동이나 어디서나 한국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고국의 숨결이 그리울 때 다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이념이나 사상을 초월하여 남과 북에서도 함께 부르는, 민족의 동질성을 구심점으로 한 노래가 된 것입니다.

이렇듯 ‘고향의 봄’을 부를 때 떠올리는 이원수란 이름이 수필에서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에 초점을 두고 논의하고자 합평 작품으로 택했습니다.

이원수 선생은 작고하신 최태호 선생, 아직 생존해 계신 어효선 선생과 함께 1960년에 3인 수필집 『비·커피·운치』를 펴냈습니다. 1976년 범우사에서 다시 『영광스런 고독』을 펴냈는데, ‘나그네 수첩’은 그 이후에 쓰신 글로 보입니다. 이분은 상당히 많은 수필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동문학가라는 위상 때문에 수필을 썼다는 사실은 가려져 있어 합평 자료를 구하는데 힘이 들었습니다. 수필가로서의 위상은 자리매김이 되어 있지 않은 셈이지요.

사회자는 여러분께 다음 세 가지 문항에 대해 생각해 오시도록 미리 부탁드렸습니다. 첫째, ‘살구꽃 같은 동행’에 대해 느낀 소감이나 어떤 특별한 매력을 감지하셨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둘째, 이 수필을 읽고 나서 동요를 부를 때 이원수에 대해 지녔던 생각이 다소라도 바뀌게 되었습니까? 셋째, 아동문학가 이원수라는 전제를 잠시 덮어두고도 이 글을 수필다운 작품이라고 자리매김 하시겠습니까?

회원 여러분들께서는 위의 세 가지 가운데 한 가지만 말씀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다만 지정 토론자들께는 전체에 대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그런 중에 공통된 의견이 도출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정선모 선생님께 낭독을 부탁드립니다.

 

 <본문>

 

살구꽃 같은 同行

 

 

 아침 8시발 특급. 좌석을 찾아가니 옆자리의 손님은 이미 와 있었다. 삼십을 훨씬 넘은 공무원풍의 신사. 조간신문을 펴들고 있었다.

묵중한 태도에 나는 우선 같은 자리에 앉은 동행으로서 다행을 느꼈다. 적어도 여러 시간 같이 가는 동행이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일 때는 정신적 불행을 맛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는 말 없이 신문을 보다가는 접어놓고 머리를 뒤로 기대고 눈을 감는다. 남에게는 일체 무관심하는 것은 어쩌면 예의일 수도 있다. 귀찮은 이야기를 걸어오는 사람으로 해서 내 사색이나 내 아름다운 공상을 방해 당하는 일이 없으니 또한 좋지 않은가. 나는 집에서는 잘 읽지도 않는 신문을 보다가, 책을 꺼내 보다가, 담배를 피우다가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디까지 가시나요?” 이런 인사쯤 있어도 좋겠지만, 서로가 다 그다지 그런 얘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였다.

내가 창쪽 자리라 식당엘 갈 때 또는 화장실에 갈 때, 말도 아닌 소리─  “조금 실례…” 하는 소리를 내는 둥 마는 둥 하면 그는 다리를 움츠려 길을 비켜주고… 두 시간, 세 시간, 다섯 시간, 우리는 말 없이 그러면서도 아무런 불편이나 불쾌감 없이 같이 앉아 있었다.

삼랑진에서 나는 차를 내렸다. 진주행 차로 옮겨 탔다. 2등엔 빈자리가 많기에 좋은 데로 골라 앉았다. 내 옆자리에 한 젊은 여성이 와 앉는다. 얼핏 보니 얼굴이 환한 색이다. 연분홍 블라우스가 한결 그 얼굴을 밝게 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또 다행을 느꼈다. 이런 아름다운 사람과 한자리에 앉아 여행을 한다는 것은 추한 손님과 같이 한 것보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의 코, 그의 눈, 그의 얼굴 전체가 하나의 예술품인 것 같았다. 나는 민망한 듯 그 여자의 얼굴을 훔쳐보고 있었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한 지 한 10분, 그는 나의 가는 곳을 물었고, 갈아 타야 하는 곳에서는 한참 기다려야 할 것을 걱정해 주었다. 다행스런 그의 말, 그의 인정은 환한 살구꽃 같은 그의 얼굴과 잘도 조화되는 듯했다.

서로의 출발지와 목적지를 얘기했고, 봄이 다 왔다는 얘기, 어디서는 꽃이 피었더라는 얘기, 도무지 기차가 심심치 않고 유쾌했다.

내가 내리는 곳까지 약 한 시간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도 나는 그 여자에게 한 마디 더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꼭 환하게 핀 살구꽃 같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좀처럼 입에서 나오지가 않았다. 잘못하면 과장된 찬사로 들릴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4월 초순 경부선 어디서는 마을의 살구꽃을 보았는데 여기도 그런 것이 보이면 창 밖으로 그 꽃을 가리키며 “꼭 당신이 저 꽃 같은 생각이 듭니다”고 한 마디 해 주려고 아무리 살펴도 살구꽃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꽃나무를 심지 않는 농촌의 사정이 딱하기도 했지만 심심한 나는 하고 싶던 그 말 한 마디를 못한 채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차를 내렸다.

여섯 시간 가까이 같이 가도 말 없는 동행과 한 시간을 가도 더없이 정다워지는 동행. 나그네길은 역시 생각할 일, 즐거운 일들이 많은 것인가 보다.

 

 

 

사회 : 감사합니다. 최 선생님부터 시작해 주시겠습니까?

최병호 : ‘살구꽃 같은 동행’은 얘기가 둘인데, 제목과 일치된 내용은 뒤의 얘기가 아닌가 합니다. 그 얘기만 떼어놓고 보면 깔끔한 소품으로 읽힙니다. 허구의 냄새가 조금 나지만, 그만하면 수필다운 수필로 자리매김 해도 좋을 듯싶습니다.

송규호 : 좋은 수필이라고 생각됩니다. 은은한 가운데 주제가 잘 살아 있다고 봅니다.

박재식 : 저는 선인들의 수필을 평가하는 마당에서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나라에서 수필이 독자적인 문학 장르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70년대에 접어들어서였고, 그 이전에 생산된 수필은 거의가 다른 장르를 전공하는 분들의 여기餘技로 빚어진 비전문성 글들입니다. 따라서 내용도 신변잡화가 주를 이루고, 작가 스스로도 잡문으로 치부한 글들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수필 문단의 흐름을 보면 안타깝게도 이들의 잡문성 수필에 맥을 잇고 있는 경향이 주종을 이루어 수필 문학의 독자적인 위상 정립을 위해 깊이 반성할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이상의 ‘권태’나 이태준의 ‘만주기행’과 같이 현대 수필의 고전으로 삼을 만한 작품이 없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한국 수필의 미래 지향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이런 선인들의 문학다운 수필을 정선하여 그 맥을 이어 발전시킬 수 있는 정통의 수필 문학사를 정비해 나갈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원수 선생의 수필은 그 반열에 들기에는 미급한 작품입니다. 수수한 내용에 호감은 갑니다만, 구성이나 문장이 조잡하여 그저 그런 수준의 수필에 불과한 글로 여겨집니다.

김수봉 : 저는 이원수 선생의 수필이 처음인데 그 동안 그분의 동요에 대해 가졌던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수필다운 수필에 접근한 글을 썼구나 싶습니다. 물론 어휘 선택이 적절치 못하다거나 문장이 다소 지루한 부분도 있긴 합니다만 꽤 다듬어진 글로 보였고, ‘나그네 수첩’의 세 작품을 다 읽었을 때 상당히 신감각파에 기울어진 분이로구나 싶었습니다.

강호형 : 아동문학계에서 차지하는 명성에 비하면 상당히 떨어지는 글이라고 봤습니다. 박재식 선생님 말씀처럼 문장이 너무 주관적인데다가 서술 일변도고, 공감대가 잘 형성이 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교훈적·계몽적인 부분도 있어서 역시 수필가라기보다는 아동문학가로 여겨졌습니다.

구양근 : 3번째 항목에 대해서만 언급하자면 저는 문학 정신이나 심각성이 결여된 작품으로 읽었습니다. 한국 문학사에서 수필이 왜 당당한 문학 장르로 자리매김되기 어려웠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런 작품으론 좀 곤란하다고 봅니다. 역시 수필다운 수필은 70년대 이후라고나 할까, 구체적으론 피천득 선생 혹은 공덕룡 선생 그 이후부터 본격적인 수필이 되었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김시헌 : 사회자의 질문은 아동문학을 하는 분이 쓴 수필과 우리가 쓰는 수필의 차이를 규명하는데 초점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무뚝뚝한 남자 동행을 만나 성가신 대화 없이 가는 것도 편하고 다행이다, 반면 상냥한 여자 동행을 만나 즐겁게 담소하며 가는 것도 다행이다 라는 대조법을 사용하고 있지요. 이분이 동시·동요를 쓸 때의 작법을 수필에도 적용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따라서 동시·동화를 쓸 때의 소박성·순진성·순수성 혹은 문학적 향기가 여기서도 느껴지지요. 우리가 쓰는 수필과 비교하면 소녀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사회 : 소녀적이다, 네, 알겠습니다.(웃음)

엄정식 : 저는 다소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맛보았습니다. 너무 대비되기 때문이겠지요. 저 같으면 또 하나의 예를 넣어서 다양성을 보이든지, 아니면 첫번째 남자 동행의 경우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고 자기 혼자 곰곰 상상해 보는 내용을 깔았으면 상당히 구성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미연 : 저는 동행을 말 그대로 같은 기차를 타고 가는 옆자리 동행이기보다는 살아가면서 동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반되는 두 가지 유형으로 대조한 게 아닐까 상상하면서 읽었습니다. 삼십을 훨씬 넘은 공무원 풍의 동행은 일상을 잘 꾸려가는 사람이리라고 생각했고, 살구꽃 같은 여성은 마음 혹은 감정적 교류를 갖는 사람으로 생각해 봤어요. 그런 두 가지 마음 상태를 가진 사람들과 동행하면서 이를 설명 대신 다소 피상적이긴하나마 사색적으로 표현하여 가벼우면서도 여운이 남았어요. 동시에, 스쳐가는 인연이지만 나 자신은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고요. 어쨌든 동화작가 이원수 선생님 특유의 냄새가 풍기는 수필로서 퍽 만족스러웠고, 독자에게 이만큼의 여운을 준다면 문학적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박장원 : 저는 제목부터 좀 걸렸고, 살이 좀더 덮여야 하는건데 전체적으로 너무 뼈가 드러나지 않았는가 싶었습니다. 또한 중간에 ‘나는 또 다행을 느꼈다……. 추한 손님과 같이 한 것보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하는 부분은 글쎄요, 어떤 상징성이 담겨 있는 건지는 몰라도 너무 노골적인 표현이어서 수필 문학 정서로는 효과가 좀 반감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봉진 : 아주 좋은 수필 하나 읽었다, 하는 느낌을 맛보았습니다.

 

사회 : 다 말씀하신 겁니까?

고봉진 : 네.(웃음)

김소경 : 저는 이런 남자분과 동행이 되면 귀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어떻게 초면에 ‘당신이 저 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런 말을 하려는 생각을 할까, 참 곤란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단어나 문장도 ‘다행을 느꼈다’, ‘민망한 듯 그 여자의 얼굴을 훔쳐보고 있었다’ 이런 표현은 좀 뭣하지 않은가 싶었습니다.

정목일 : 저는 평소 이원수 선생님을 여러 번 뵈었고 대화도 나눈 사이입니다. 마산에 이분의 도서관이 있어 쭉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이 작품은 제가 처음 대하는 선생의 수필인데, 치열한 작가의식이나 주제의식보다는 여행중의 스케치 정도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런데 주제도 선명성이 부족하고 구성도 너무 평면적이며 묘사 부분도 다소 치밀치 못합니다. 앞서 작위적이고 허구적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하신 것도 자기 생각에 대한 서술만으로 넘어가고 뚜렷한 묘사, 어떤 동적인 표현이 없기 때문이지요. 의미 부여나 자기 개성이 뚜렷하지 못하여 별로 성공적인 수필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회 : 여기서 사회자가 잠깐 개입하도록 하겠습니다. 아까 엄정식 교수께서 다소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하셨기에 한 말씀 거들자면, 이 글의 전반부는 사실 같고 후반부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저도 들었습니다. 2등칸엔 빈자리가 많다고 했는데 복사꽃 같은 얼굴의 여인이 왜 하필 선생의 옆에 와서 앉았을까요? 이 글이 씌여졌을 당시의 우리 나라 형편에서 빈자리 다 놔두고 모르는 사람 옆에 여자가 가서 앉을 수 있다고 보겠어요? 글을 만들기 위해 지어 넣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는 것이지요.

박현정 : 저는 얼마 전에 이분의 칼럼집을 읽었는데 아동문학은 어떠 해야 한다든지, 아동문학인들에게도 작가정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글들로, 마치 재야 인사처럼 저항정신이 강하다는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처음 읽게 된 이 수필은 내면적 정서가 다소 감상적이어서 이원수 선생의 두 가지 면을 본 듯한 느낌이 듭니다.

김진식 : 저는 수필로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술이란 무슨 메시지 전달을 위한 것도 아니고, 철학적 논쟁 개진을 위한 것도 아니며, 순간적으로 느끼는 순수한 유미적 인상이나 감성을 관념화하는 작업에 다름 아니라고 볼 때, 이 작품도 주정적인 정서를 관념화하는 과정의 작품으로 읽었습니다. 문학이 예술이기 위해서는 이런 감성적인 작품을 폭넓게 받아들여야 정서적으로 더 순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백임현 : 언뜻 보기엔 단순한 기차 여행 얘기이지만 그래도 아무 메시지 없이 쓰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맨 끝 문장을 보면 역시 두 가지 인간 유형을 간접적으로 대비시켜 보여준 의미 있는 글로 읽혔습니다.

이응백 : 아름답다는 것을 추상적으로 말하지 않고 꼭 살구꽃에 비유하려고 망설였다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허세욱 : 아동문학가라는 선입견이 작용하여 자꾸 연결시키려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서술적 구조보다는 심상적 구조가 더욱 논리 정연한 동시적 수필로 읽었습니다. 고향을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꽃이다. 꽃 중에서도 살구꽃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꽃이다. 꽃 중에서도 살구꽃이다……. 저는 굳이 논리성을 따질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생각입니다.

 

사회 : 기차를 바꿔 탄 후 여자와 앉아 가게 되면서, 만일 살구꽃이 핀 것을 보면 저만큼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못 봤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분의 고향은 꽃이 없는 고향인 거죠.

허세욱 : 그분에겐 살구꽃=제일 아름다운 꽃, 고향인 것, 이런 등식이 늘 마음 속에 잠겨 있는 것이지요.

 

사회 : 혹시 이 말씀에 대해 반론 있으십니까? 없으시면 지정 토론자들께 발표 부탁드리겠습니다. 좌중의 토론과 준비해 오신 내용을 종합하여 말씀해 주시지요.

주연아 : 먼저 1항에 대한 답이 되겠습니다. 저는 이 작품에 상당히 매력을 느꼈습니다. 순전히 개인적 취향이지만 수필에서 센스와 고급스런 유머, 즉 골개미를 중요시하는데, 이 글엔 그것이 있습니다. ‘꼭 당신이 저 꽃 같은 생각이 듭니다’는 말을 해주려고 아무리 살펴도 살구꽃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는 말에 매력이 있습니다. 둘째로는 이원수 선생의 다른 동요·동시들을 볼 때, 일제에 저항하는 작품을 쓰면서도 허무주의나 자포자기적인 감상에 빠지지 않고 상당히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지녔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글에서도 작가의 긍정적인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말이 없는 동행은 각자의 사색을 방해하지 않아서 좋고, 말이 통하는 동행은 인정이 오가서 좋다는 말에서 선생의 열린 시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셋째, 이 글에는 천진스런 소망 같은 동심이 느껴집니다. 우리 내면에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영원히 자라지 않는 동심이 있습니다. 저는 동심을 간직한 사람이 좋게 보이고, 동심이 느껴지는 글에 호감이 갑니다.

김형진 : 저도 이원수 수필은 처음인데, 아동문학가의 수필이니 별거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평소 시인의 수필을 읽었을 때의 불만 때문에 기대를 별로 안 했는데, 읽고 나니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운문을 쓰는 분이 산문으로 풀어쓰면 다소 정확치 않은 문장이 되기 쉬운데 여기서도 그런 흔적이 좀 엿보입니다. 또 문장은 조금 구태가 나기도 합니다. 그렇다 해도 전체적으론 상당히 수준 있는 작품으로 보았습니다. 다만 불만이 있다면 수필을 대하는 진지함이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점인데, 이는 대개 타 장르 문인들이 수필에 대해 갖고 있는 느슨함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작품은 옆자리 동행에 대한 여행자들의 공통된 기대와 두 가지 상반된 인간 유형을 보여주고 있지요. 이미 언급된 것처럼 저도 과연 실제 그대로일까, 후반부는 상상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이 글은 동행에 대한 두 가지 유형뿐만 아니라 여행에서 맛볼 수 있는 재미의 두 가지 유형 얘기이기도 합니다. 하나는 혼자 사색하며 가는 재미와 장점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들과의 대화를 통한 재미가 되는 것이지요. 구성 면에서는 마무리 두 줄은 아주 훌륭했다고 봅니다.

유혜자 : 시인들이 수필을 쓸 때 시적이고 모호한 점이 있는 편인데, 여기서는 솔직 담백한 문장이 좋았어요. 읽는 이의 감수성과 감각, 상상력을 자극시키고 감동을 불러일으켜서 시같이 느껴졌어요. 문학은 일차적으로 독자에게 감동을 줘야 하는데 여기에도 감동이 있었습니다. 6시간 대 1시간의 동행은 나그네길로 확대 해석하면 인생 길을 말한 게 아닐까, 또한 동행이란 인생의 동행 얘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고, 그런 의미에서 여운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산문과 동화·소년 소설을 많이 썼고 그 속에 현실 인식을 많이 담았다고 하는데, 이 작품도 소박한 여행길의 얘기로 치열한 주제의식을 보이는 건 아니지만, 인생 혹은 삶의 형태를 주제로 은근히 표현한 게 아닌가 하고 좋은 작품이라 느꼈습니다.

 

사회 : 한번 더 개입하겠습니다. 혹 작품 평가에 어떤 선입견으로 작용할까봐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만 이원수 선생은 1935년에, 일제 때지요, 문학 클럽 사건(당시 신문 보도에는 독서 그룹 사건)으로 일경에 잡혀서 영어囹圄 생활을 했습니다. 아까 저항정신·저항적 기질이라는 표현이 나왔는데 이유가 있는 거지요. 요즘 이원수 문학 연구자들이 1930년대 신문에서 찾아낸 당시 재판 판결문도 최근 조선일보 제1면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죠? 일제 때 재판 기록인데, 판결은 이원수를 ‘좌경’이라 했습니다. 또 1950년 6·25 전쟁 때 북한군의 서울 점령 기간 중의 행동 때문에 이원수 선생은 9·28 서울 수복과 동시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린이 문학> 2002년 10월호엔, 또 다른 이원수 연구자가 ‘리어카에 몸을 숨겨 의정부·동두천 지역으로 피신, 외인부대 노무자 천막에서 1·4 후퇴 때까지 반공청년단의 추적을 피할 수 있었다’는 내용을 상술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적잖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우리는 이분의 노래를 밝고 명랑하고 마치 꽃 대궐에 초대되어 가는 느낌으로 부르지만 선생의 실제 생애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분의 작품 세계로 볼 때, 일제가 ‘좌경’이라고 규정한 것은, 1930년대 이 땅의 지식인들이 지녔던 좌파적 사상 경향, 곧 ‘모든 사람들이 억압받지 않고 한결같이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구현하고자 했던’ 그런 정도의 소박한 이상주의가 아니었는가 싶습니다. 그가 ‘북으로 가다가 발길을 되돌려 내려온’ 사실은 이원수 전집에 밝혀져 있습니다. 이상과 현실에 엄청난 괴리와 차이가 있음을 알고 나서 ‘북이 아닌 남’을 택한 회의가 있었습니다. 1976년에 발간된 『꼬마 옥이』라는 소년 소설에 그분의 사상이 잘 투영되어 있습니다. 다만 다른 분들은 자신의 한때의 행적에 대해 고백하면서 심적 세탁 과정을 거쳤는데, 선생은 끝내 침묵함으로써 후유증을 남겨준 점이 아쉽습니다. 밝고 발랄하고 민족의 동질성을 찾는 노래를 쓴 실제 인물의 사생활은 불행했다는 점을 이분의 묘지 앞에서 느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김태길 : 앞서 김시헌, 허세욱 두 분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을 느끼면서 약간 주석을 붙이자면, 아동문학가다운 천진난만함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라 보았습니다. 좀더 욕심을 부리자면 아쉬움이 없지도 않은데, 예를 들자면 정말 그대로 있었던 일일까, 꾸며낸 건 아닐까, 꾸며도 되는 건가 등등의 의문이 있긴 하나 그런대로 괜찮은 수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의 6·25 전후 이력에 대한 사회자의 말씀을 듣고 보니 아동문학가다운 천진난만함과 모순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냉철한 사람보다는 천진한 사람이 좌경 이념에 감상적으로 이끌려 가는 경향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지요.

 

사회 : 앞서 나온 장르 문제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갈까 합니다.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들의 약력을 보면 어떤 한 사람도 단 한 우물만 판 사람은 없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를테면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희곡도 쓰고 하는 작가이지만, 시에서 그의 작가정신이 가장 잘 표출되어 그것으로 상을 받게 되었다는 식이지요. 한 장르에 대한 독점 의식을 갖고 타 장르에 대해 배타적인 의식을 갖는 것은 유독 우리 문인들에게만 있는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형진 : 여러 장르를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못 하니까 하는 얘기지요.

 

사회 : 아까 문법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본문 중 ‘그는 나의 가는 곳을 물었고’라고 한 부분은 틀린 어법입니다. ‘내가 가는 곳을 물었고’ 해야 하는데 이는 일본식 어법이 그대로 묻어난 경상도식 어법으로 보입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이 부분도 ‘내가 살던…’이라고 해야 맞는 것이지요.

김시헌 : 우리 경상도식 아닌데요.(웃음)

이응백 : 이건 경상도식 어법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청년이 갈 길’과 ‘청년의 갈 길’은 다른 뜻입니다. ‘청년이 갈’ 길은 ‘길’에 대한 수식절이 됩니다. 그런데 ‘청년의’ 갈 길이라고 할 때는 ‘갈 길’에 대한 수식어가 되어 복합 구조로서 의미가 더 강하지요. ‘나의 살던 고향’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 : 우리가 텍스트로 사용한 모든 작가들에게는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이원수 선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격동시대에 태어나 인간적으로는 자신이 남긴 노래만큼 아름답지는 못한 삶을 살고 갔는데, 이는 비단 그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전체의 슬픔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림자는 어차피 소멸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급적 빛 쪽에 초점을 맞추어 이 같은 작가들에게서 어떤 의의와 의미를 찾아서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으로 오늘의 합평회를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바로잡음>

2002년 겨울호 합평 기록에서 42쪽의 구양근 선생님의 발언 내용 중 “굳이 문학 작품이냐 아니냐를 놓고 택일한다면 ‘아니다’라고 대답해야겠지요”는 “‘이다’라고 대답해야겠지요”의 오기이므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