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평(季評)>

 

꽃은 꽃을 버리고

 

                                                                                                 박장원

 “요게 언제 자란담…….”

거실 앞 손바닥만한 빈 터에 새끼 파초를 심어 놓고 아침마다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널따란 잎이 퍼런 공중에 드리우고, 비가 오면 잎을 두드리는 소리가 가슴을 적시는 서늘함을 바라는 윤모촌의 이야기에는, 싱그런 상허尙虛의 멋에다 근원近園의 탈속脫俗의 경지를 추가시키니, 비록 모방이요 답습이라 할지라도, 소란스럽고 알량한 글줄에 대한 경고이자 일침이며, 사라져가는 사람과 글의 멋을 상기시키는 눈맞춤이다.

손바닥만한 공터는 양적으로만 방대하고 질적으로는 표류하는 현대 수필의 협소한 공간이겠지만, 오도카니 쪼그리고 앉아 새끼 파초를 요리조리 살피는 눈길은 시야를 시원케 해 줄 수필가의 출현을 우러러봄이다.

시간도 거리임에 분명하다며, 마음에는 대상과 사이에 적당히 두면 언제나 좋은 거리가 있는 것이고, 이런 거리가 지켜지는 ‘수필적 관조’를 강조한 남기수도 결국 탈속의 경지에 이른 멋을 추구한 것이다.

아무튼 월드컵 4강과 대선의 열기가 뜨거운 2002년을 마무리하는 겨울호에는 달관을 통한 관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태동은 ‘램프 수집의 변’에서 ‘비오는 날 어두운 길을 걷다가 기중忌中이라고 쓴 등불을 만날 때도 반갑고 경이롭다며 남아 있는 자들의 슬픔을 함께 하려고 망자의 집 앞에 걸려 있는 호젓한 등불에 끌려 연고도 없는 상가에서 곡을 하고 싶은 마음이 바람처럼 스쳐간다’고 하였고, 최병호는 ‘철새’에서 ‘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푸른 숲을 조용히 두들겼다. 뒤에서 미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앞에서 끄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 변주를 무엇이라 하랴. 신중이 아재는 내내 너만 따라다닐 것이다 하고 웃었다’고 하였다.

은은한 불빛을 찾아 누군가에 의해 버려진 불이 꺼져 있는 램프를 밝히려는 마음은 정녕 영혼의 심지를 돋우는 구도자의 성찰이고, 산자락을 감고 도는 두렁길을 추상하게 하는 뻐꾸기의 울음을 통한 온갖 이미지의 시적 정서는 삶의 정적을 깨우는 이속離俗의 귀 열림이다.

 

어느덧 한 해가 저문다.

상념의 계절에 쓴 수필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진한 사색의 기쁨을 맘껏 누린다.

 

나무 잎새가 무성한 초여름 밤, 그날 따라 보름달은 순금으로 된 징처럼 커다랗게 중천에 달려 있었다. 소쩍새는 연신 쏟아지는 금빛 가루를 사방으로 흩이며 애타는 울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어찌된 일일까. 그날 밤은 소쩍새 우는 소리가 가슴을 쓸어내리기는커녕 도리어 슬픔, 고독, 좌절, 소외, 분노… 이런 것들로 창자를 뜯어내듯 가슴을 아프게 했다. 잠이 올 리가 없다. 이 밤을 어떻게 지새울까. 뜨락에 나와 서성거리다가 툇마루에 걸터앉아 본다.

 ─ 김규련의 ‘보름달이 유죄, 소쩍새는 공범’ 중에서

소쩍이는 가슴을 아프게 하고, 청탁을 불문한 폭음은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내로라하는 낭만주의 시인의 붓 끝에서도 흔치 않은 금빛 가루가 사방으로 흩어지니, 통금의 살벌한 거리를 활보하며 고성 방가한 통쾌한 에피소드의 여운은 은은한 달밤처럼 오히려 잔잔하다.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갖고 싶은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키가 큰 나무 그 꺼벙한 말초에 더덩실 지어 있는 까치집이요, 또 하나는 봄날 배고픈 산골짜기를 서럽게 한풀이 하는 뻐꾸기 울음이다. 하나는 그림으로 서 있고, 하나는 소리로 일렁이었다. 하나는 반공에 걸려 있고, 하나는 숲 속에 숨어 있다. 그 중에도 까치집만은 언젠가 거짓말처럼 내 집 뜨락에 휘영청 들어설 것 같은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 허세욱의 ‘까치집’ 중에서

 

까치집을 우러러보며 짐짓 하늘을 더듬는다.

숲 속에 숨어 있는 뻐꾸기 울음소리는 날마다 듣는 바람이니 섧은 울음은 늘 따라다닌다. 꺼벙한 말초에 더덩실 지어 있는 까치집이 언젠가 거짓말처럼 내 집 뜰에 휘영청 들어선다 하였는데, 그 갖고 싶은 것은 다름 아닌 하늘의 가상자리이다.

 

다시 잠자리의 춤을 봅니다. 투명한 날개를 우주에 가득 뻗고 유유히 노니는 저 자유로움. 그것을 위하여 숱한 탈피를 꿈꾸어 온 것을 나는 지금 인정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더 나은 영혼으로 진화하기 위한 도정으로 이승의 삶이 허락된 것이라면 모든 것을 접어놓고 허락된 오늘만이라도 기쁨의 씨를 뿌려야 하겠지요. 비록 우리의 삶이 이슬로 지은 집이라 할지라도 힘껏 끌어안고 뜨겁게 사랑하리라 마음 다져 봅니다. 지금 나는 소독약을 저으며 또 한눈을 팔았습니다.

 ─ 반숙자의 ‘이슬의 집’ 중에서

이슬의 집에는 이야기와 가락 그리고 성찰이 있다.

하늘이 다가오는 과수원에서 방심한 듯 가볍게 떼를 지어 춤추는 고추잠자리의 율동을 봄바람에 나부끼는 꽃잎과 모닥불에 타오르는 불똥으로 표현한 시어가 니힐(nihil : 허무)한데, 살충제를 뿜어대는 소독 줄이 터지거나 말거나 투명한 날개를 우주에 가득 뻗고 유유히 노니는 자유로움에 덩그러니 한눈만 팔고 있다.

 

바닷속으로 걸으면서 하늘을 보았지.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어. 나는 아직도 길을 몰라 헤매고 있어. 인생이 ‘뜬구름’에 비유되곤 하지만, 차라리 나는 구름이면 좋겠어. 어디든 두둥실 떠올라 정처 없이 흘러가는 구름 말이야. 하늘에 맡긴 채 바람 따라 흐르면 길을 잃을 리 없지. 어떤 형상으로 변해도 좋고, 어디든지 가는 거야. 구름에겐 애당초 길이란 게 없었던 거지. 사라지는 것조차 관심을 갖지 않아. 존재라는 무게를 버려야 한없이 가벼워져 하늘에 떠 흐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이제 길조차 버리고 자유로운 구름이었으면 해.

 ─ 정목일의 ‘바다 속으로의 산책’ 중에서

 

방파제를 잃어버린 소년은 등대를 찾아 나선다.

세찬 바람과 성난 파도가 거세게 몰아쳐도, 한 줄기 빛이 있기에 담담히 바다 속으로 길을 잡는다. 마치 래퍼처럼 존재의 무게를 버리고, 길조차 외면하며 하늘을 바라보며 자유로운 구름 따라 거친 바다를 산책하는 삶이 조촐하다.

 

주위에 거목들이 있어 묘목이 훤칠한 키로 자라는 것일까.

어둡도록 푸른 그늘을 제치고 임관林冠을 향한 새 얼굴의 필세 또한 이채롭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 주위를 정리한다. 나는 여름내 햇볕에 시달린 커튼을 바꿔 달면서 커다란 보자기를 연상하고, 유행이 지난 한복 치마의 치마허리를 튿어내니 또한 보자기가 된다. 어디에 이용할까 궁리를 하다가 창 밖을 본다. 하늘이 창문만한 보자기가 되어 가슴으로 밀려온다. 보자기가 된 하늘에 편지를 쓴다.             ─ 최영자의 ‘보자기와 쇼핑백’ 중에서

 

대담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거실 창문에 하늘을 끌어 대서는 커튼으로 매달고, 그 하늘에다가 편지를 쓴다. 친구의 오랜 세월 곰삭은 옛 멋에 대한 답장으로 거대한 하늘이 너울대는 운치를 보낼 줄 아니, 치마허리를 뜯어 낸 보자기에는 소품의 멋이 가지런할 것이다.

 

빗줄기를 가르며 새벽의 어둠 속을 달리는 기차는 마치 동굴 속을 가는 듯하고, 차창에 부딪치는 물방울들은 여전히 만나고 흩어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밑으로 흘러내린 물들은 제각기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때 갑자기 남자의 생경한 외침이 잠시 동안의 상념을 몰아내면서 객차 안의 정적을 깬다. “알 라 뷰.(I love you.)”

 ─ 민명자의 ‘장진주사’ 중에서

 

무리 없는 구성과 차분한 멋이 호흡을 잃지 않는다.

달리는 기차 유리창에는 둥그런 물방울들이 긴 꼬리를 달고, 마치 정자가 유영을 하듯 잽싸게 몸을 흔들며 곤두박질치듯 흘러내리지만, 종내 세상의 여울목에서 만나 큰 물줄기로 솟구쳐 오르니 그러한 생명의 힘으로 무관심의 적막은 깨질 것이다.

 

수필의 또 다른 정의 ‘시로 쓴 철학’의 종착역은 여백의 체관諦觀에 이르는 일탈의 지혜이다. 물론 무턱대고 속기俗氣를 방기放棄한다면 수필은 한낱 옹색한 도학선생의 골방에나 머무르겠지만, 산문의 품격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이속離俗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시야를 확 트이게 할 것이다.

 

꽃은 꽃을 버려야 열매를 열고,

강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꽃을 떨구고서 열매를 맺고 강은 흐르면서 바다로 남는 것은 자연의 또 다른 위대한 공백이며, 열매와 바다로 탈바꿈하기 위해 꽃과 강을 떨쳤지만 그들은 존재한다. 때문에 버리는 것은 무한한 공간의 확보이며, 자유로운 여유의 암시이며, 자연을 관통하는 철학에의 의지이다.

파초에 꽃이 피면 열매를 맺고 죽는다지만, 새 순이 수북히 솟아올라 싱싱한 그늘을 만들어 줄 것이고, 너울대는 커다란 파초 잎 사이에 드리운 하늘은 퍼런 허공虛空이며 문학의 멋일진대.

 

 

<수필문학>과 <계간 수필>로 등단(2001년). 수필평론가.

수필집 『양수리』, 수필평론집 『코끼리 이야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