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 잃어버린 이야기

  

                                                                                                      吳景子

열쇠꾸러미를 잃어버렸다. 열쇠꾸러미에는 대문 열쇠와 철제 현관문의 위아래 열쇠 두 개, 현관문 안쪽의 중간문 열쇠 외에 안방 열쇠와 소형 손금고 열쇠 또 차고 열쇠까지 달려 있다. 남이 이 열쇠꾸러미를 손에 넣으면 우리 집은 완전 개방 상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열쇠를 잃어버린 것을 안 것은 동생이 온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긴 여행에 지친 동생을 쉬게 한 후, 그날 함께 외출하려다가 열쇠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동생이 온 후 늘 열쇠를 걸어두던 열쇠 걸이에 열쇠가 없는 것을 본 적은 있으나 워낙 분주하기도 했고, 어디든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미처 챙기지 못했었다. 남편도 일찍 외출한 상태에서 현관문을 열어놓은 채 대문만 닫고 외출할 수도 없어서 동생만 내보내고 찬찬히 열쇠를 찾아보기로 했다. 자주 사용하는 손가방 두 개를 샅샅이 뒤지고, 시장에 메고 다니는 배낭도 칸마다 털어내고, 방구석에 놓인 옷걸이에 걸린 옷가지의 호주머니도 모두 만져보고, 온 집안을 다 휩쓸어 살펴도 열쇠는 나타나지 않았다.

열쇠를 마지막 사용한 것은 동생이 도착한 날 집에서 가까운 공항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나갔다가 집에 들어올 때였던 것 같다. 열쇠 걸이에 열쇠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곧 챙기지 않은 것은 그날 마당에 나와 있던 남편이 대문을 열어주어서 열쇠가 내 손가방 안에 그냥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으나, 대문에 열쇠를 꽂으면서 문창살 틈으로 뜰에 남편이 나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여보 우리 왔어요. 짐 들여가세요” 하고 외쳤던 게 생각났다. 그때 열쇠꾸러미를 대문에서 빼내지 않은 게 확실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드나든 사람도 없는데 열쇠가 없어질 리가 없었다. 동생을 만난 반가움에 혼란스러워져서 기본 요금만 주어도 되는 택시 기사에게 엄청나게 많은 팁을 준 사실을 생각하면, 그 순간의 나 자신의 행동을 믿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대문에 꽂혀 있던 열쇠꾸러미를 뽑아간 사람은 누굴까? 대문이 대문간 안쪽에 있어서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에게 발견될 확률은 적었다. 동생이 집에 온 지 한 시간쯤 지나서 목욕탕엘 갔고, 내가 문 밖까지 나가서 배웅하면서도 열쇠를 못 보았으니 집에 도착한 아홉 시에서 열 시 사이에 없어진 것이다. 학생들의 등교 시간이 지난 후이므로 어린 학생들의 짓은 아닐 듯했고, 집 앞의 두 채의 연립주택 식구들에게 의심이 갔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빼낼 때에는 골목이 좁아서 우리 대문간에 차 앞머리를 바짝 들이대곤 하므로 그들 운전자라면 열쇠꾸러미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카드 빚, 은행 빚으로 고통받는 이가 많다는데, 이십 여 세대나 되는 저들 식구 중 누군가가 그런 어려움에 처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앞의 연립 식구들이라면 우리 내외의 들고남을 파악하기 좋은 입장에 서 있었다.

나는 때없이 뜰에 나가 연립주택의 창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올려다보았다. 한밤중에도 어둠 속에 일어나 앉아 우리 집을 넘보는 눈길이 없나 그 창들을 살펴보곤 했다. 그러나 실제로 연립주택보다 나를 더 겁먹게 하는 것이 있었다. 뒷집이었다. 그 집은 개축중에 있었다. 수많은 분야의 업자와 일꾼들이 골목 안에 버글거렸고, 동이 트기도 전에 몰려온 그들은 연립주택의 주차장이 비는 족족 그들의 차를 잡담제하고 주차시켰다. 그들 중에는 용역업체에서 그날 그날 불러다 쓰는 신분을 알 수 없는 뜨내기도 있을 수 있었다. 만약 그들의 손에 열쇠꾸러미가 쥐어졌다면 남의 눈에 띄는 대문을 통과하지 않고도 뒷 담을 넘어 방안까지 들어오는 것은 누워서 팥죽 먹기였다. 더구나 열쇠가 꽂혀 있던 시간이 그들이 우리 대문 앞을 지나 새참을 먹으러 오간 그 무렵인 것이 더 께름칙했다.

열쇠를 모두 바꾸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딸이 추석 선물로 현관 열쇠를 숫자로 여닫는 키로 바꿔주겠다는 것을 거절한 일이 생각나서 을지로의 열쇠 전문점엘 찾아갔다. 주인 여자는 최저 가격이라며 이십일만 원을 찍은 전자수첩을 내밀어보였으나 뒷날로 미루고 돌아왔다. ‘조금만 더 견뎌보자, 내가 그런 실수를 했을 리 없다. 나를 믿어보자.’ 다부지게 마음 먹고 열쇠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외출할 때는 남편과 교대로 하고 문 건사도 더 철저히 했다. 뒷 담 밑에는 넘어오는 사람의 발자국이 잘 찍히도록 흙을 퍼다 뿌려놓았다. 추리 탐정소설에서 읽은 기억들을 살려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은 걷잡을 수 없어서 열쇠를 바꿔, 말어를 반복하는 나날이 지나갔다. 연립 주차장에 세우는 낯선 차 번호는 수첩에 모두 적어놓았고, 차에서 쉬느라 내리지 않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의 인상 착의를 살펴서 기록했다.

 

그런데 며칠 전 시장엘 가려고 옷장 문을 열고 윗도리를 고르다가 손길이 빨간색 사파리 점퍼에서 멈췄다. 이 점퍼는 여행갈 때 주로 애용하고 시내 외출 때는 입지 않는 옷인데 왠지 마음이 끌려 옷걸이에서 떼어내 몸에 걸쳤다. 그런데 뭐가 들었는지 호주머니가 묵직했다. 무심코 호주머니에 손을 넣던 나는 어머어,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내 손에 잡힌 것은 대문 열쇠꾸러미였다. 열흘 전, 사촌 여동생이 미국에서 오던 날 잃어버린 후 안절부절못하고 찾고 찾던 것을 드디어 찾아낸 것이다. 아이구 이 멍청이, 바보, 소리를 연발하며 열쇠꾸러미에 입맞추고 하늘에 감사드렸다. 그날 입었던 점퍼 생각이 이제 나다니.

그 동안의 모든 고통, 모든 의심이 순간에 사라지고 내 몸은 날아오르기라도 할 듯 가벼워졌다. 그러나 흥분이 가라앉자 깊은 자책감에 빠져버렸다. 그 동안 내가 의심하고 눈총을 주었던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죄스러움이 고개를 들었다.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들어왔던, 가져간 사람보다 잃어버린 사람이 더 죄가 많다는 그 말을 뼈아프게 되새겼다.

골목 안에서 목소리 큰 여자로 소문난 내가 그 후로 아주 다소곳한 여자가 되었다. 골목에서 이웃을 만나면 더 친절하게 대하고, 뒷집 공사장 앞을 지날 때는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