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의 태양 아래서

 

                                                                                                      이오라

야간 열차가 오슬로에 들어설 무렵 차창 밖에는 자잘한 눈이 내리고 있었다. 희붐하게 밝아오는 바깥 풍경이 온통 설경이어서 거센 눈바람이라도 만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도 오슬로 역에 도착하자 눈은 곧 멎었다. 생각보다 아침 일찍 해가 밝아 여기가 정말 북유럽의 겨울인가 싶을 정도였다. 나는 역사 안에서 몸을 더 녹인 다음 햇빛이 거리에 제법 환하게 깔리기 시작하는 9시가 다 되어서야 밖으로 나섰다.

곧게 뻗은 카를요한스 거리에 서니 맨 먼저 언덕 위에 가로놓인 노란색의 궁정 건물이 올려다보였다. 거리 양쪽에 있는 이곳의 명소들`─`국회의사당과 대성당, 학생 숲 등을 둘러보며 길 끝에 이르자 궁정 공원 바로 아래에 오슬로의 상징이랄 수 있는 두 개의 큰 건물이 양쪽에 나타났다.

왼편, 입센의 동상이 서 있는 돔 형식 지붕의 건물이 국립극장이고, 그 맞은편에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이 바로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오슬로 대학 건물이었다. 길 좌우의 그 두 건물이 모두 언덕 위 궁정의 색깔과 같은 연노랑색을 하고 있었다. 그 빛깔 때문인가, 오슬로의 겨울 풍경이 꽤나 다사롭게 느껴졌다.

오슬로 대학의 아울라(대강당)는 우리 나라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은 곳이어서 더욱 가보고 싶었다. 가운데 긴 원주가 있는 건물의 2층이 아울라인데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커피 냄새를 따라가 옆방 관리실 문을 살짝 밀었다. 커피를 마시던 사람들 중 하나가 아직 개방 시간이 안 됐다고 하면서도 나를 그 옆방을 통해 위층으로 안내했다. 그 친절이 고마워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것, 바로 이 아울라에서 우리 나라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지 않았느냔 등 수다를 늘어놓자 안내인도 놀란 얼굴을 하며 더욱 친절히 대해 주었다.

아울라 입구에 들어서자 정면에 뭉크의 태양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연단 위에 있는 그 벽화의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혀 나는 잠시 그 자리에 붙박인 듯 서 있었다. 가운데 불그레한 태양의 기운이 양 측면 벽의 다른 그림들 속으로 띠처럼 길게 퍼져나갔다.

내가 알고 있는 뭉크 그림의 이미지와는 아주 달랐다. 우울한 분위기도 아니었고 왜곡된 형상도 아니었다. 물론 아울라라는 특정 건물의 이미지에 맞춰 그린 그림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그림을 보는 순간왠지 뭉크가 젊은날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와 마침내 그의 이상을 이곳에 벽화로 구현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뭉크의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안내인은 매우 흐뭇해 하며 내게 팸플릿을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뭉크의 벽화 그림과 그것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에르바르트 뭉크는 말년에 이 아울라의 벽화를 무려 17년이나 걸려서 그렸다고 한다. 가운데 ‘태양’을 중심으로 그 양쪽으로 ‘빛의 흐름 속에 있는 정령들’, ‘태양을 향한 여인들’ 그리고 ‘태양을 향한 남자들’이 모두 가운데 태양을 숭배하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이 그림의 끝에는 생식력 모티브를 강조한 ‘추수하는 여인들’과 ‘샘’이 ‘알마 마타(Alma Matar`:`라틴어로는 ‘젖 먹이는 어머니’에 해당되는데, 고대 이래로 이 말은 대학을 가리키기도 한다)’를 감싸고 있고, 그 반대편 끝은 자연과학인 화학과 물리학을 상징하는 ‘화학’, ‘이야기’, ‘새로운 빛’이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 모든 그림들은 지식의 나무와 지혜의 샘을 가리킨다고 쓰여 있었다. 오슬로 대학 정신과 그림이 잘 맞는다는 생각이었다.

천장에 샹들리에가 하나 빛나고 있고, 바닥은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을 뿐, 뭉크의 태양 그림만 없었더라면 아울라의 내부는 지극히 소박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엔 이곳에 있는 뭉크의 벽화가 노벨 평화상 시상만큼이나 큰 빛을 발하는 것만 같았다.

아울라를 나와서 뭉크를 더 자세히 만날 수 있는 국립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박물관은 오슬로 대학 건물 바로 뒤에 있었는데 고맙게도 입장료는 무료였다. 주로 노르웨이 출신 화가들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뭉크의 작품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뭉크의 초창기, 터치와 굵은 선을 사용한 단순화 기법의 그림을 우선 차례 차례로 만나 본 후 그가 절정기에 그린 그림들이 있는 전시실로 들어섰다. 거기에는 ‘절규’, ‘사춘기’, ‘병실에서의 죽음’, ‘마돈나’, ‘불안’, ‘다리 위의 소녀들`2’ 등 유명한 그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초기의 그의 그림보다 색깔은 더 강렬해진 반면 형태는 비교적 단순하게 보였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나를 사로잡은 것은 뭉크의 ‘절규’였다. 화보에서 보던 그림보다는 색상이 덜 선명했지만 원작 ‘절규’를 대하는 감동은 컸다.

아울라에서 본 뭉크의 벽화에서처럼 뭉크의 ‘절규’에서도 마찬가지로 머리 위로 태양 빛이 줄무늬를 이루며 일렁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울라의 태양 빛이 태동하는 듯 생명감이 넘치고 따뜻한 빛이라고 한다면, ‘절규’의 병약해 보이는 한 남자의 일그러진 얼굴 위로 펼쳐진 빛은 우울하고 불안한 그런 느낌을 주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 그 남자의 절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박물관을 나와 시내를 가로질러 해안 쪽을 향해 걸어갔다. 뭉크의 그림에 사로잡혀서인지 처음 한동안은 도시 풍경이 희미하게 윤곽만 보이더니 차츰 햇살 속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오슬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 얼굴 표정은 매우 평온해 보였다. 뭉크가 주로 살았던 오슬로 거리 어디에도 어쩌면 자화상일지도 모르는 그의 절규하는 남자와 같은 외롭고 지친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거대하지만 외관은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시청을 바라보면서 해변의 벤치에 앉았다. 관광선 부두는 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했고 어부들 몇몇이 배를 대고 오가는 관광객들에게 새우를 팔고 있었다. 어부들의 머리 위로는 햇빛이 눈부시게 내리쬐었다.

눈을 감고 햇볕을 즐기고 있으려니 갑자기 겨울날 담벼락에 기대어 해바라기를 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추운 어깨를 따뜻이 감싸주던 햇볕, 집안 어른들의 뒤숭숭하고 불안한 그 시절의 정서가 전염되어 자주 아프고 불안하던 내 마음을 따스하게 녹여주던 바로 그 겨울 햇볕이었다.

그때 한 줄기 찬바람에 나는 벤치에서 몸을 떨면서 눈을 떴다. 거리에서나 해안에서나 강인한 생명력과 원초적인 모태의 포근함을 주는 그런 ‘태양’ 즉, 아울라의 ‘태양’이 환히 비치고 있었다. 병과 고독으로 힘들게 살았던 뭉크에게도 오슬로의 이 햇볕은 일말의 희망이요 생명의 빛이 아니었을까. ‘절규’의 빛에 질려 어둡게 젊은 시절을 방황하였던 뭉크가 중년엔 어쩌면 그의 밝은 빛을 찾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아울라에 그린 그 태양처럼.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아울라의 ‘태양’은 그처럼 내 객수를 달래주고 있었다.

오슬로에서 만난 뭉크, 어쩌면 나 역시 그때 내 어둡고 힘든 시간을 모두 지운 뒤 그 자리를 맑고 밝은 원시의 태양 빛으로 채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계간수필>로 등단(97년).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