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이야기

 

                                                                                               강호형

일껏 반가워할 주인 얼굴을 떠올리며 어느 집을 방문해 대문을 두드렸다가, 개가 먼저 뛰어나와 영악스럽게 짖어 대기라도 하고 보면 기분을 잡치기 십상이다. 개의 처지로서야 그것이 주인에 대한 충성이요 본연의 임무이기도 할 터이니, 정체가 불분명한 방문객에게 무턱대고 꼬리를 흔들어 보이며 환영의 뜻을 표할 수는 없는 노릇일 터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의 사정이지 방문객으로서는 결코 기분 좋은 영접이 아니다. 그나마 개가 끈에 매어 있거나, 주인의 태도로 보아 침입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적의敵意를 쉽게 거두어주기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들개처럼 놓여 있는데다가 눈치마저 없어 거도鋸刀 날 같은 이를 드러내보이며 날뛰기라도 하면 난처하기 이를 데 없다. 주인으로서야 유붕이자원방래有朋而自遠方來 했으니 즐거울지 모르지만, 마음먹고 원방거遠方去 한 손님으로서는 성난 짐승이 언제 장딴지를 물어뜯을지 모르는 마당에 즐거울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사정이 이러한데도 주인은 함박꽃처럼 웃으면서, 여전히 적개심에 불타는 개는 건성건성 나무라면서, 오금이 저려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손님에게는 “괜찮아, 괜찮아”만 되뇌인다. 주인의 입이 함박꽃 같은데 벌레 씹은 얼굴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손님으로서는 이중고二重苦를 치러야 한다.

그럭저럭 곤경에서 벗어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원방래의 즐거움에 동조하면서도 돌아갈 때 또 치러야 할 견공犬公의 그 살벌한 환송 절차를 생각하면 잘못 왔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 분별 없이 영악하기만 한 견격犬格으로 보건대, 주인을 잘못 만났다면 보신탕 재료나 되기 십상일 그놈에게 당할 인격적인 수모를 생각하면 좋던 술맛이 가실 지경인 것이다.

이런 집이라면 그 주인과의 친분이 아무리 두터워도 다시 가기가 꺼려지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안 가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할 리도 없다. 차라리 그놈이 오물이기라도 했더라면 더러워서 피한다는 핑계라도 대련만, 개가 더러워서 피한다면 개가 웃을 노릇이고, 솔직하게 무서워서 피한다고 자백하려니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용납치 않아 기분마저 개 같아지는 것이다.

이상은 수십 년 전에 있었던 내 경험에 근거한 이야기인데, 며칠 전에 비슷한 꼴을 또 당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버스 정류장에 나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차도를 따라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논 틈을 가로질러 가는 뚝방길이다. 실속으로 따지자면 차도 쪽이 조금 가깝기는 하지만, 나는 시골 냄새 물씬한 뚝방길이 좋다. 여름이면 양 옆에 도열한 싱그러운 벼포기들이 좋고, 겨울에는 흘린 낱알을 찾아 떼지어 내려앉는 참새 떼, 까치 떼들의 모듬살이가 정겨운데다가 살벌하기 짝이 없는 철마의 위협이 없어 좋다.

그날도 버스를 타러 그 뚝방길을 가고 있는데 왼편으로 논배미 하나를 사이에 둔 저편 인가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개 짖는 소리에 민감한 편이지만 설마 그 개가 나를 보고 짖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낯선 사람 경계하는 것이 개의 본성이라지만, 워낙 거리가 100m 가까이나 떨어졌으니 나를 공격해 올 리는 없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미심쩍어 소리나는 쪽을 돌아보니 털이 푸스스한 누런 개 한 마리가 사냥감을 발견한 사냥개처럼 맹렬하게 논바닥을 가로질러 달려오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미처 방어할 방법을 궁리할 겨를도 없이 놈은 이미 두어 발짝 뒤까지 다가와 목털을 세우고 누런 이빨까지 드러내 보이며 곧 물어뜯을 태세로 으르렁거리는 것이었다. 위기를 모면하려면 주인을 부르는 것이 상책이겠지만 주인집이 어느 집인지도 모를 뿐더러, 논배미 저편에 보이는 집은 차도 쪽으로 돌아앉아 있어 절벽 같은 뒷면에 대고 아무리 고함을 질러봤자 알아들을 것 같지도 않았다.

도망치자니 주력에서 당할 수 없고, 정면 대결을 감행하려니 놈의 기세가 너무나도 등등했다. 그렇다고 무릎을 꿇고 항복한들 놈이 순순히 받아 줄 리도 없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에게 덤빈다던데 ‘영장’을 자처하는 인간으로서 그대로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와중에도 다행인 것은 놈의 몸집이 내 체격의 반에도 못 미친다는 점이었다. 그러고 보니 마침 튼튼한 캐주얼화도 신었겠다, 앞차기 일격이면 제 놈도 턱이 깨지든지 갈비뼈가 몇 대 부러져서 비명을 지르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개는 역시 개라 개답게 민첩했다. 달려들면 걷어차고, 걷어차면 피하고… 번번이 헛발질이 되기는 했지만 놈도 사태가 여의치 않다는 판단이 섰던지 슬금슬금 물러서더니 달려올 때의 기세와는 딴판으로 어슬렁거리며 왔던 길을 되짚어가면서도 가끔 한 번씩 돌아다보면 컹컹 짖는 품이 애써 거둔 전과戰果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분풀이인지, 다시 얼씬거리면 다음 번에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경고인지 알 수 없었다.

위기를 모면한 것이 다행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별로 좋아진 것도 아니었다. 제 놈으로서야 그것이 주인에 대한 의무요 충성심의 발로이겠지만, 제 영역 밖에 있는 행인까지 공격하는 것은, 그것을 의무로 여겼다면 그릇된 판단이요, 충성심의 발로라며 과잉 충성임이 분명했다.

제 집 개가 이 지경인데도 주인마저 방관만 한다면 견격과 인격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진다. 하기야 인간 중에도 그런 자가 허다한 세상에 개를 나무라 무엇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