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는 사람들

 

                                                                                                  백임현

올해 여덟 살이 된 우리 손녀의 희망은 미술가와 이-마트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의 첫번째 꿈은 훌륭한 미술가가 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까 이-마트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꿈은 어른스럽게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다.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소개할 때면 당당하게 자기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어디에서나 종이만 보면 그림을 그리는데 그것은 미술가가 되기 위한 연습이라는 것이다.

그가 두 번째로 꼽고 있는 소망은 이-마트 주인이 된다는 것인데, 이 엉뚱한 발상이 아이의 말이라고 가볍게 웃어 넘기기에는 그의 자세가 너무도 야무지고 진지하다. 어른들이 돈을 주면 쓰는 법 없이 알뜰하게 모아서 저금을 하며, 그 돈으로 이-마트를 하겠다고 절대 자기 돈을 건드리지 않는다. 소지품을 사 준다고 해도 돈으로 달라고 해서 저금을 한다. 가족들에게 줄 선물도 자기가 이 다음에 이-마트를 하게 되면 걱정이 없다면서 꼽아놓고 있다.

세상 이치를 다 알고 있는 어른처럼 미술가가 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으며,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장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어찌 알았단 말인가. 세상이 복잡해지고 보는 것, 듣는 것이 다양해지니 아이들의 꿈꾸는 세계도 풍부해진 것 같다.

나는 야무진 우리 손녀를 보면 유달리 영악했던 한 친구를 떠올리게 된다. 전쟁 직후였던 50년대 초,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서울에 교통시설이 제대로 없어 웬만한 거리는 그냥 걸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용산에서 광화문, 신촌에서 홍제동, 불광동에서 서대문, 이 정도는 당연히 걷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 먼 길을 혼자 걷기는 지루하여 대개 같은 방향의 친구들과 삼삼오오 동행을 하면서 학교길을 오고 갔다.

우리의 등교길은 신촌에서 아현동을 거쳐 서대문을 지나 홍제동에 이르는 꽤 떨어진 길이었다. 겨울에는 무악제 고개의 찬바람이 서릿발 같이 매서웠고, 여름에는 뜨거운 햇빛에 달구어진 아스팔트 도로가 숨이 막힐 듯 무더워 집에 가기도 전에 지칠 때가 많았다.

그 시절, 우리가 다니던 길목인 서대문과 아현동 사이에 도요다 아파트라고 불리는 외국인 전용 아파트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서양 사람들이 우리보다 앞선 문화생활을 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그 앞을 지날 때면 늘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드나드는 외국인들을 구경삼아 바라보았다. 그들의 모습은 모두가 우리에게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을 더 끌고 있는 것은 그 아파트 뒷편, 아름다운 숲 속에 서양 사람이 살고 있는 그림 같은 양옥집이었다. 그 집은 우리 친구들의 지대한 관심거리이자 부러움이었다. 저런 집에서는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러다가 어느 때, 운 좋게도 멋진 차림의 서양 여자가 눈에 띄이기라도 하면 우리는 너무도 황홀하여 발을 멈추고 서 있곤 하였다.

서양이란 나라, 그리고 그들의 세련된 문화, 우리는 그 집을 보면서 앞선 나라 서양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우리 가슴에 그것은 분명 아름다운 동경이었고 꿈의 세계였다.

그것은 일종의 문화 체험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것이 좋아서 언제나 그쪽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 어느 봄날, 그 집 앞에 그 시절에는 정말 보기 힘든 승용차가 서 있고, 근사한 파티에라도 다녀오는지 멀리서 보아도 눈부시게 성장한 여자가 서양 신사와 같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때맞추어 영화 같은 광경을 보게 된 것이 너무도 행운 같아서 설레이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우리가 넋나간 사람처럼 도취되어 있을 때,

“두고 봐라! 나 이 다음에 꼭 저런 집에서 저렇게 멋있게 살꺼다.”

느닷없이 한 친구가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면서 분위기를 깨뜨렸다. 그것은 너무도 갑작스럽고 엉뚱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누가 들어도 가당치 않은 말이었다. 그 당시 친구는 아주 불우한 처지에서 살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고 사나운 계모 밑에서 온갖 설움을 겪으며 학교에 다니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는 같은 또래의 우리보다 어른스럽게 철이 들어 있었는지 모른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어떤 친구도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그의 어조가 너무도 단호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의 세월 뒤, 우리네가 아직도 셋방을 전전할 무렵, 그 친구는 정말 서양 사람의 집 같은 문화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이카 시대가 되자 제일 먼저 승용차를 몰고 다녔다. 그는 어린 시절, 그날의 꿈을 실현한 것이었다. 그때는 정말 여덟 살짜리 우리 손녀가 이-마트의 주인이 되겠다는 발상과 비슷하게 터무니없는 말로 들렸었다. 그러나 그는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았던 꿈을 현실로 바꾸어놓았다. 그렇다면 누가 알겠는가. 먼 훗날, 우리 아이가 정말 이-마트의 여주인으로 당당하게 서 있을 날이 있을런지……. 다소 엉뚱하기는 해도 확실하게 자기의 꿈을 가지고 사는 손녀가 대견하고 그의 꿈이 소중하다. 그 아이는 항상 미술가로서, 이-마트의 여주인으로 살며 행복한 꿈을 꿀 것이다.

‘인생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라고 한 어떤 방송의 선전 문구가 생각난다. 철 없는 어린아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작건 크건 그 나름대로의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꿈을 상실한 사람이며, 꿈을 포기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어두운 터널 속에서도 끝이 있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있겠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중간에서 포기하면 그 어둠에 갇히고 말 것이다.

그러나 세상 일이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인생이 과연 꿈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 회의하게 될 때가 많다. 꿈이란 정말 환상일 수밖에 없는 것임을 뼈저리게 통감할 때도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좌절하지 않고 오늘도 등불을 켜듯이 가슴 가슴에 꿈을 간직하고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지향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여덟 살짜리 아이의 꿈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노인의 허망한 꿈도 모두가 귀중하다고 생각한다.

새해가 되었다. 봄을 잉태한 겨울 나무들, 그 메마른 가지 끝에서 푸르른 신록의 꿈을 본다. 겨울이 가면 반드시 봄이 온다. 꽃피는 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