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金素耕

 음악을 들으면서 자라는 식물은 성장이 빠르다고 한다. 클래식이나 재즈에 대한 반응도 다르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상상으로나 짐작이 되는 일이다. 그 반응이 고전이나 탐정소설을 읽고 난 후에 받는 감동의 차이쯤 될까.

꽃 중에서도 제비꽃은 모차르트의 곡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잠재력을 일깨워주는 효과가 있어서 요즘은 미학적으로 뿐 아니라 유기 농법에도 이용이 된다고 한다. 음악을 들으면서 자라는 제비꽃은 엄마 품에서 잠든 아기의 모습을 연상시켜 준다. 이런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사람과 식물의 성장 과정이 별로 다를 바 없다고 여겨진다.

대중매체를 통해 알게 된 엔도르핀이라는 호르몬 외에도 신체는 우리가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때 몸에 유익한 특정 성분들의 분비를 증가시킨다고 한다. 의사인 아들이 늘 즐거운 마음을 가지라며 내게 들려준 말인데, 이 중에는 유전자 치료에 사용되는 성분도 있다고 한다.

의료진이 환자에게 약물 치료를 하고 마지막으로 거는 것이 정신적인 치료라고 한다. 환자의 긍정적인 마음이, 이런 성분들의 분비를 유도할 수 있기에 희망을 가져본다는 얘기다. 참으로 오묘한 것이 신체의 기능인데, 오랫동안 생존의 조건을 위해 균형을 이루면서 진화되어 온 것이 오늘의 우리라면 수긍이 간다.

오래 전 남편이 병상 생활을 할 때 같은 병실에 대장암 수술을 받은 환자가 있었다. 남편은 사십대 초반이었고, 그 사람은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였는데 늘 웃는 얼굴이었다. 그 표정이 수술을 받은 환자가 아니라 잠시 요양을 온 사람처럼 보였다.

그 사람은 수술 날짜도 종친들과의 야유회를 마친 다음 날로 잡았다. 수술이 더 급하지 않느냐는 내 말에, 손을 저어 웃음으로 대답을 한다. 상식상 좀 이해가 되지 않아서 통증이 견딜 만하냐고 물었더니, 참아야 한다면서 또 웃는다. 한번은 아들을 시켜 뭔가 음식을 사 오게 하는데, 그것이 자기의 입맛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병 시중을 들고 있는 아내를 위한 배려였다.

그림자처럼 남편 곁에 앉아 있는 그의 아내도 온화한 모습이다. 말수가 적으면서 수더분한 인상에 나와 눈길이 마주치면 그때마다 미소를 짓는다. 어느 때는 내가 당황해서 시선을 피할 정도다. 평소에 편안한 모습으로 있다가 서로 보게 되면 어김없이 웃어주는 것이다. 한여름이라 남편의 수술 자리에 연신 부채 바람을 해야 했던 나는 도저히 웃을 형편이 아니였지만, 그들 내외를 따라 나도 웃는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일단 한 고비를 넘기고 우리보다 먼저 퇴원을 하게 되었다. 퇴원을 하면서 병실에서 쓰던 부채를 내게 주면서 덕담을 한다. 집안 어른처럼 대해 주는 모습이, 재발의 가능성을 알고 있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 세상을 순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라 자신에게 온 병마도 그렇게 받아들인 것일까.

그때 받은 부채는 없어졌지만 그들의 웃어주던 모습은 아직도 내 인상에 남아 있다. 이십 여 년 전의 일이라 지금은 어디서 만나도 무심코 지나칠지도 모른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가끔, 나는 지금 어떤 표정으로 살고 있는가 하는 자성을 하게 해주는 사람들이다.

1957년에 발표된 솔제니친의 소설 『암병동』에는 같은 약물 치료를 해도 환자의 회복이 동일하지 않다는 내용이 있다. 환자의 마음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긴데, 솔제니친은 이미 호르몬의 종류와 효능에 관한 학설을 언급한 것이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또 다른 유익한 성분이 세포에서 만들어진다는 연구가 활발하다. 그런데 이런 것이 이론으로는 수긍이 가면서도 막상 내게 적용해서 생활화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 전에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보자고 했을 때 만약의 경우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다행히 별 이상은 없었지만 나이가 들면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투병 생활을 오래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누구나의 소망이지만, 그것은 소망일 뿐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외에 방도가 없는 일이다. 그러다 투병 생활을 하게 된다면 같은 병실에서 웃어주던 내외의 편안함을 닮고 싶다. 쉽지 않은 일이겠으나 그것이 본인의 고통도 덜고, 주위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누구와도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에서는 비켜섰으면 한다. 한겨울 손안에 모아지는 찻잔의 온기처럼 그런 마음만 나누고 싶다. 살아오면서 나로 해서 행복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면 조심스럽기만 하다. 편안한 마음으로 나의 하루를 원만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이제 내가 가져야 할 소망 중에 소망이 아닐까 한다.

제비꽃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좋아하고, 식물도 클래식이나 재즈를 들을 때 반응이 다르다고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