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추천>

 상실과 일상

 

                                                                                                     전윤미

 가을 빛이 창문으로 쏟아져 내리던 어느 날, 분주한 아침 일과를 마치고 한 편의 영화를 봤다. 폭풍우치는 바다를 배경으로 수채화처럼 이야기가 펼쳐진 ‘병 속에 담긴 편지(message in bottle)’였다.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고 모든 이에게 메시지를 담아 바다로 던진 여자. 그 아내를 못 잊어 병 속에 편지를 넣고 바다로 띄워 보낸 한 남자. 그들의 편지가 발견되면서 시작되는 영화는 깊이와 넓이를 가늠하기 힘든 명화였다. 영화의 막바지, 새 삶의 시작을 앞둔 남자가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쓴 편지를 가지고 바다로 나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남자는 풍랑으로 위험에 처한 한 가족을 구하고 자신은 목숨을 잃는다. 그 바다 물결 위로 주인공들의 독백처럼 자막이 흘렀다.

‘완벽한 원처럼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상도 이해도 안 되는 모양을 만들며 사는 이도 있습니다. 내 여정에는 상실도 있었지만, 그것으로 인해 무엇이 소중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화면으로 떠오르는 글귀를 읽다가 원이라는 구절에 크게 동감이 되었다.

완벽한 원… 누구인들 둥글게 살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삶의 여정은 예상도 이해도 안 되는 일그러진 모양을 만들 때도 있고, 상실이라는 복병을 만날 때도 있다. 내가 예상도 이해도 안 되는 상실과 가장 가깝게 마주친 것은 어머니와의 사별이었다.

삼우제를 치른 다음 날 아침, 식사 준비를 하려다 보니 찬거리가 없었다. 슈퍼에 가서 순두부를 사 들고 나오는데 나도 모르게 오열이 터졌다. 내 어머니는 차가운 땅에 묻고 난 이렇게 먹는구나, 먹고 사는 것이 무엇이며, 완벽한 차단이 되어버린 죽음은 또 무엇인가.

소리내어 “엄마” 하고 부르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기에 어머니가 사무치게 보고 싶을 때면 털썩 주저앉아 목을 놓았다. 그렇게 울고 나면 벌겋게 쓰라리던 응어리가 눈물로 발산되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 후에야 비로소 나는 일상 속에서 덤덤히 묻혀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작년에 또 하나의 상실을 만났다. 마흔여섯의 시누이를 잃은 것이다. 묘하게도 시누이의 일주기가 양력으로 추모 예배를 드리는 어머니의 8주기와 겹쳐 한 날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남편만 시누이의 제사에 참석하고 돌아온 밤이었다. 씻지도 않고 누워버린 남편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깨어 있지도 자고 있지도 않은 남편은 내내 침묵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남편의 어깨가 심하게 들썩였다. 결혼 후에도 자주 찾아가 마음을 나눌 정도로 유난히 누나를 따랐던 남편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의연하게 버티어 온 남편의 인내가 한계에 부딪친 것이었을까. 남자라는 자존심에 매어 표출하지 못 한 응어리가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다.

누나를 보낸 상실, 부모를 잃은 절망, 병 속에 담긴 편지에서처럼 배우자를 잃은 슬픔, 어떤 슬픔이 크다고 헤아릴 수 있으랴. 삶의 여정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의 빈자리는 무엇으로도 견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병 속에 그리움의 편지를 넣어 바다로 띄워 보낼 수밖에 없었나 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볼을 적셨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내버려두고 생각에 잠겼다. 눈물은 산소를 공급하고 감염을 방지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눈물로 풀어내는 자리엔 회복이 있고, 위로의 메시지가 있다. 그리고 어쩌다 원에서 벗어나는 삶의 여정에서의 상실마저 다스려주는 위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울고 싶을 땐 실컷 울어야 하리라.

과연 삶이란 무엇이고, 상실과 일상의 차이는 또한 얼마만큼의 거리인가. 반듯한 원을 그리고 싶은 의지와 옆 길로 가려는 감정이 교차되면서 원은커녕 자꾸 모서리가 드러나는 내 모양을 본다. 하지만 좀 기울면 어떠랴. 조금 일그러지면 또 어떠랴. 완벽한 원은 아니어도 그것과 가까워지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하련다.

귀가하는 아이들의 벨 소리가 들려온다. 어느 계절과도 비할 수 없는 청명하고 상쾌한 이 가을. 깊숙이 빠졌던 한 편의 영화 감상이 정지되면서 나는 몽환(夢幻) 같은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온다. 영화를 더 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아이들을 맞으며, 허기진 아이들을 위해 얼른 앞치마를 둘렀다. 간식을 먹으며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가 새의 지저귐처럼 들리는 듯하다.

이 삶 어디쯤에서 다시 상실과 마주칠지 예상할 수 없기에 지금의 순간이 내겐 가장 소중하다. 영화의 주인공은 포말(泡沫) 속으로 편지를 던졌지만, 나는 눈물로 녹인 일상 속에서 마음의 무릎을 꿇고 메시지를 줍는다.

가을 빛이 들어왔던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분다. 그 바람결에 젖은 얼굴을 말리며 나는 다시 영화의 장면에 잠겨들기도 하면서, 내가 현실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