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윤모촌

 

 실없은 소리가 되지만, 흉내 잘 내는 원숭이 놈들이 글자를 알고 문장을 쓴다면, 그놈들도 필연코 문학상을 만들어 저희끼리 주고받으면서 희희낙락(喜喜樂樂)할 것이다. 사람보다도 더한 꾀로 잡지도 만들고, 상의 종류도 가지가지일 듯한데, 사람들은 고작 작고 문인이나 시상 주관자를 내세워 이름을 붙이고, 본상이니 대상이니 하고 나서 두서너 개의 상을 더 나누어주지만, 이놈들은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수준미달 상’이라든가, 아예 상 이름에 제 이름을 따붙이고 잇속을 차려, 받아야 할 자를 제쳐놓고 제 아비나 할아비에게 주되 감지덕지(感之德之)해서 받는다 하여 ‘감지덕지 상’을 만들 것도 같다. 이 중의 수준미달 상 제정은 미상불 비상한 놈들인데, 구름같이 모여들 응모작에 응모료를 붙일 것이 뻔하고, 그렇게 되면 저절로 돈도 벌 것이니, 과연 놈들의 꾀가 비상하다 하지 않겠는가. 2백 여 개가 된다는 오늘의 백가쟁명(百家爭鳴) 격인 문학상에 나의 한 토막 허튼 공상이지만, 문자를 안다고 한다면 원숭이 놈들이라 해서 그런 짓 말라는 법도 없다.

몇 사람이 다방의 자리에서 한담을 하다가 문학상 얘기가 나왔다. 지금은 작고했지만, 그때 말을 꺼낸 소설가 H 씨의 얘기인즉, 수상자가 상금봉투를 뜯고 보니 종이때기에 금액만 적혀 있더라는 것, 좋게 말하면 어음이라 할 수 있다. 이 얘기는 꽤 오래 전 얘기이지만, 그때 옆에서 듣고있던 내가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 했더니 H 씨는 펄쩍 뛰며, 얘기는 점입가경(漸入佳境)이었다. 협잡이라고까지 서슴지 않는 그의 말인즉, 이번에 받은 사람은 시인인데, 봉투를 뜯어보고 어이가 없어 지난 해에 받은 소설가에게 물었더니 ‘나도’ 하더라는 것이었다.

H 씨는 덧붙여 말하기를, 먼저 친구는 소설가 기질답게 입을 다물고 있다가 시인의 말에 입을 열었고, 나중 친구는 시인의 감정대로 털어놓았다고 하였다.

이 문학상은 그 후에도 지속이 되고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그때 말하기를 그런 상이나마 그것은 문인으로서 경력란에 장식이 되고, 신문의 문화 단신에 오르기도 할 테니, 어찌 지속이 되지 않겠느냐며 한마디씩 하였다. 빈 봉투는 고사하고 그런 것이라도 받기를 바라 기웃거린다니 한심한 일이라며 좌중은 한탄들을 하였다. 이래서 그 상이 매명(賣名)하는 행사임을 알았는데, 몇 해가 지나 시인 친구 하나가 이 상을 받게 되어 사뭇 감개가 무량하다면서 내게 전화로 알려왔다. 나는 그 친구의 말에 내가 황당해지면서, 그런 상은 사양함이 어떻겠느냐 하려다가, 남의 잔치에 재 뿌리는 격이어서 그저 건성으로 축하한다고만 하였다.

문학상은 나부터가 싫지 않은 상이다. 그래서 사양할 줄도 모르고 나도 두어 개를 받았다. 그때 축사를 하던 동리(東里) 선생이, 앞에서와 같이 우리 나라에 문학상이 2백 여 개가 넘는다며, 진심인지 빈정거림인지 문학상은 많을수록 좋다고 하였다. ‘빈정거림’이란, 그분의 생각이 지금의 내 생각과 별 다를 게 없었을 것이라는 데서 하는 소리이다.

20여 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나는 그때 뒤늦게 수필계에 나와 문단 상황에 어두웠고, 더구나 문학상 같은 것은 생각지도 못하던 때였다. 상을 타고난 후부터서야 사정을 알기 시작하였는데, 그때 내 심정이 지금과 같았더라면 상을 열망하는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사양할 만한 일이었다. 사실을 말한다면 그때 나는 자식놈들 등록금에 한창 궁색하던 때여서 정작 마음을 둔 것은 상금 쪽이었다.

상은 많을수록 좋다고 한 동리 선생 말대로, 해마다 연말 연초의 문학지 소식란을 보면, 시상 수상 소식으로 자못 풍성하다. 희한한 이름의 상이 있는가 하면, 수효도 많아 가지가지의 상이 생소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소식이 나와는 관련이 없어서인지 아쉽게도 별로 와 닿질 않는다. 한약재 중에는 묵을수록 좋다는 것이 있는데, 흔한 소식들이어서 인지, 묵어서 값이 있는 한약재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무엇이든 흔하면 가치가 없다. 여하간 내 성격이 편벽스러운 까닭이겠지만, 문학상 소식은 분명 축하받을 선망의 행사이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은 그렇지가 않아, 이것이 체통상 사람들이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는 부분이다. 여하간 저간에 문학상에 따른 얘기는 정평이 나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 아는 얘기라 하지 않는가. 무명용사의 가슴에 달려 빛나는 훈장처럼, 그렇게 자랑스러운 문학상이 있었으면 해보는 것인데, 글 쓰는 자에게 주는 상은 분명 영예의 보상이다. 그것이 아니라고 할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오늘의 수없이 흔한 상을 놓고, 과연 그렇게 볼 자신이 누구에게도 있을 것인가.

상에는 시상의 목적과 심사의 엄정성이 따른다. 그것의 잣대와 공정성이 흔들리면 그 상은 그 시각부터 빛을 잃는다. 권위가 설 리 없고, 사명감이 따를 리 없다. 매명하는 허상일 뿐이고, 문학을 업은 사술(詐術)일 뿐이다. 누가 이런 행사를 묻는다면 나는 쉽게 대답할 수가 없다. 저마다 상을 주겠다는 사유가 있을 터이고, 내가 받지 않은 것도 아니니 그러하다. 그렇긴 하면서도 상패를 받아 든 명사名士(?)가 주최자의 이름을 연발하면서, ‘감은(感恩)이 망극하오이다’로 머리를 조아리며 체통을 벗어던지는 것을 보고, 문학상은 과연 있고 볼 일이로구나 하였다.

속(俗)말로, 남이 장에 간다니까 나도 간다며 따라나서는 격의 행사로 득의연(得意然)하는 허상의 허울. 이같은 굿판에 명실상부한 문학상 묘목이 몇 그루쯤은 있기를 바래본다. 아는 얘기가 되지만, 이웃 나라의 아쿠타가와 문학상 같은 풍토를 샘내 본다. 신인과 무명 작가만이 선정 대상이 되는 발표장에서, 땀을 쥔 보도진이 일제히 보도하는 순간, 무명 작가는 일약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그것은 곧이어 돈방석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이런 상 하나쯤 우리에게도 있었으면 해보는 것인데, 그렇게 된다면야 문학을 업은 허울 좋은 마당이 몇 개가 된들 무슨 대수인가.

농담이긴 하지만 누군가의 말 ─ 경력에 문학상 받은 일 없음 해야겠다는 말이 허튼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하는 일을 놓고, 내가 이렇듯 망령되이 말하는 것은, 자신을 모르는 자의 편벽증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