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화

 

  

                                                                                            나영균

  

“있지, 나 지금 종로야. 응, 그거 증말 웃기더라. 근데 그게 지것두 아니래.”

북적대는 길을 걸으면서 어떤 아가씨가 전화기에다 대고 큰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 까닭은 모르겠으나 결코 그것이 필요한 이야기이거나 다급한 이야기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게 하나마나 한 소리를 길거리를 걸으면서까지 해야 하는 심정을 모르겠다. 누구하고 노상 말을 하고 있어야만 견디는 현대인의 허전함을 나타내는 증상인지, 비싼 전화기를 자랑하자는 허영심인지, 길을 걸어도 걷기만 해서는 부족하게 느끼는 초조감焦燥感인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화기가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발달했다는 점이다.

해방 직후 우리 집에는 허름한 전화기 한 대가 있었다. 허름하다지만 그때는 모든 집에 전화기가 다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화가 걸려올 때 그것은 지금의 화재 경보기만큼 요란한 소릴 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일은 전화를 걸 때였다. 우선 수화기를 들고 전화기 옆에 달린 손잡이를 드르륵 드르륵 돌려 교환수를 불러내야 한다. 교환수는 웬만해서 나오지 않는다. 손잡이를 돌리고 수화기 걸이를 수없이 덜컹거려야 겨우 나오는데, 나와도 이쪽에서 대는 번호를 잘 듣지 못한다. 서너 번 목청껏 고함을 질러야 겨우 통한다. 교환수는 대개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다. 천신만고 끝에 번호를 대도 알아들었는지 말았는지 대답도 안 한다. 초조하게 벨소리가 울리는가 귀를 기울인다. 그런 다음에도 저쪽 사람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한참 걸린다. 불기도 없는 현관 마루에 걸려 있던 우리 집 전화는 겨울에 통화 한 번 하려면 온몸이 얼고 발이 시려 동동 구르며 이야기해야 했다. 이런 전화통에다 대고는 할말 하기가 무섭게 끊어버리는 것이 수였다.

교환수를 안 거쳐도 되는 전화기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홀가분하고 편하다며 기뻐했다. 그러나 해외 전화를 걸 때에는 여전히 교환수를 거치거나 전화국에 가서 걸어야 했다. 신혼 시절에 남편은 정부의 일로 일본에 가는 일이 잦았다. 가면 대개 한 달씩 머무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아무리 체제 기간이 길어져도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개인 집에 해외 전화가 걸려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서로 편지를 썼으나 그것이 배달되는 시간이 오래 걸려 때로는 사람이 돌아온 다음에 편지가 오는 수도 허다했다.

결혼을 하고 애를 둘 낳은 다음 미국 유학을 간 나는 언제나 집안 일이 궁금했다. 우선 두고 온 애들이 보고 싶어 견디기 어려웠다. 큰애는 세 살, 작은애는 6개월이었다. 아이들의 비단같이 보드라운 살결의 감촉, 안으면 묵직하게 팔을 누르는 어린애의 무게, 코에 맡히는 향긋한 머리 냄새가 그립기 시작하면 눈을 감고 사다 놓은 인형을 안고 만져보아야 했다. 그것이 실물인 애와 비교될 수는 결코 없었으나 그래도 허공을 안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렇게 절박한 심정으로 있을 때 남편에게서 전보가 왔다. 아무 날 아무 시 외국인 학생처장실로 전화를 걸 테니 받으라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미국으로 전화를 걸려면 국제전화국으로 가서 걸어야 하고, 제한 시간이 3분, 통화료는 1분에 20불이었다. 그나마 며칠씩 대기해야 겨우 차례가 돌아왔다. 20불은 당시 화폐가치로 보면 엄청난 값이었고, 가난한 우리로서는 호주머니 부담도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학생처장의 양해를 구하고 그날 그 시간에 나는 처장실로 가서 대기했다. 약속시간보다 5분쯤 늦게 전화 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으니 남편의 목소리가 ‘여보세요’ 한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하려고 마음먹었던 말은 하나도 없이 머리에서 사라지고 입에서는 울음이 터져나왔다. 아까운 3분 동안을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요새 휴대전화를 보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있다. 남녀노소 심지어는 유치원 아이들까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 사무실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걷노라면 골목을 빠져나가기 전에 전화기를 귀에다 대고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을 다섯은 족히 만난다. 참 편리한 세상이 되었구나 하면서 어쩐지 길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이쪽이 약간 민망하다.

그러는 나도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이 다 가졌는데” 하며 사위가 사준 것이다. 남은 휴대전화로 글자 메시지니 음성 메시지를 보낼 뿐 아니라 전화번호를 기록도 하고 주소록도 만들고 영상도 보고 음악도 듣고 간단한 인터넷처럼 이용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나는 다양한 기능을 일체 무시하고 재래식 전화처럼 쓰고 있다. 그나마 평상시는 꺼놓고 이쪽에서 걸 때만 살짝 사용하면서 공중전화를 안 찾아다녀도 되니 얼마나 편해 하고 혼자 만족해 하는 것이다.

어디를 가나 휴대전화가 걸려오는 사람을 보면 학자들이 그 행방을 알기 위해 발광체를 몸에 발라주고 심해에 놓아주는 열대어가 생각난다. 왜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저렇게 자기 자신에게 끈을 달고 다니나 싶은 것이다.

편리와 불편은 한 동전의 앞 뒤 면인가 보다. 그리고 아무리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말이라지만 그렇게 아무 때, 아무데서나 되는 대로 해도 되는 것일까 의심스러워진다.

 

 

 

이화여대 영문학 명예교수.

저서 『콘라드 연구』, 『전후 영미 소설의 이해』 등.